[리뷰] 자주 만나고 싶은 도둑 - 유홍영 고재경의 「두 도둑 이야기」

 자주 만나고 싶은 도둑
- 유홍영 고재경의 「두 도둑 이야기」

 
  • 김해진
  • 조회수 211 / 2009.01.10

유홍영, 고재경의 <두 도둑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이다. ‘2007한국마임’에서 유홍영을 보았을 때, 아르코예술극장 기획공연 ‘몸짓콘서트’에서 고재경을 보았을 때, 그들은 명랑하면서도 슬펐다. 엉거주춤한 뒷모습을 보이고 서서 기다란 휴지를 슬슬 꺼내놓던 유홍영과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 들리던 가운데 내리 달리던 고재경의 모습이 퍼뜩 떠오른다. 아, 지워지지 않았구나.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겨울 관객의 어느 구석으로부터 그 몸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몸들은 부스럭부스럭 검은 옷으로 갈아입더니 금고가 있는 집을 털러 나선다. 경기가 너무 안 좋은 이 때, 저런 사람 많겠지. 괜스레 극장 밖 생각에 발동이 걸리려는 찰나, 사람들이 일제히 무대에 집중했다.


흑백 가로 줄무늬의 티셔츠와 목이 긴 양말, 멜빵바지를 입은 고재경은 양치질을 하다가 어이없이 양치한 물을 삼켜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휴지가 없어 난감해한다. 직장상사들을 위해 연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대접하지만 정작 자신이 마시려고 할 때는 커피가 떨어졌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펼친 손과 눈으로 깜빡깜빡하는 몸짓을 선보인다. ‘약속’된 이 동작이 음악의 리듬에 맞춰 깜빡일 때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고재경은 이내 하늘의 한 점을 가리킨 후 다시 걷기 시작한다. 두 팔을 몸의 뒤쪽에서 파닥이면서. 해와 달, 별을 향해 가는 것일까.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알기 어려워도, 배우가 ‘그것’을 향해 가리키는 손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슬펐다면, 슬펐어도, 배우가 애잔하기만 한 존재가 아닌 이유는 단호하게 가리키며 걸어가는 노마드의 기질 때문이다. 그는 어딘가를 향해 가지만, 동시에 어딘가로부터 떠난다. 수행자처럼 말도 없이 조용히 길을 가는 유홍영, 고재경은 <두 도둑 이야기>에서 극 중 현실과 전혀 다른 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떠나간다. 보는 이도 순간 빨려들어가 ‘이 곳을’ 함께 떠나간다. 이리가고 저리가는 배우들과 한 운명이다. 두 도둑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따라간 곳에는 피자를 굽는 훈훈한 화덕이 있고, 탁 트인 탁구장, 펜싱장이 있고, 풀밭 위 백조들이 있다. 담 하나만 지나면 추운 거리에서 부잣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벽 하나만 지나면 어두컴컴한 교도소에서 환한 풀밭으로 나가게 된다. 소품 하나 없이 만들어지는 풍경이다.


 



재빠르게 긴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유홍영과 고재경이 등장한다. 방금까지 교도소 안에서 의기소침해 있던, 간수들의 폭력적인 놀이에 이용되던 두 도둑은 평화롭고 해사한 표정의 백조로 바뀌어 있다. 발끝으로 걸으며 춤도 추고, 암컷 수컷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유머러스한 몸짓의 유홍영과 단호한 몸짓의 고재경은 서로 참 다르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배인 근육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요새 티비 예능계의 주역 식스팩 복근보다 감동적이다. 말 그대로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더니 화살촉에 꽂아 유 백조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는 고 백조. 간단하면서도 뚜렷한 몸짓으로 공간을 만들어내고 이심전심으로 그 공간을 알아채는 관계가 즐겁다.


지난 21일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막을 내린 <두 도둑 이야기>. 20일 토요일 오후 공연에는 중년의 관객들이 많았다. 드문 풍경이었다. 좌석은 꽉 찼다. 몇몇 꼬마 관객들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판타지 안팎을 넘나들었다. 배우들의 얼굴 주름에 고인 그림자와 거기서 뚝뚝 흐르던 땀방울이 값지게 느껴졌다. 배우들의 재주를 돋보이게 하는 연출력이 반가웠다. 솔직한 몸들이 만든 공연, 나는 길게 박수를 쳤다. 인트로의 역할을 했던 고재경의 솔로 에피소드의 가짓수가 줄고,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공간이 좀 더 다양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일로 창고극장에는 갤러리가 있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참에 테라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단정하고 아늑했다. 공연이 끝나고 게으르게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었더니, 이내 동그란 안경을 쓴 고재경이 나와 기획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시 게으르고 어정쩡히 빠져나왔다. 두 도둑이 만든 세계에서 빠져나왔다는 게 괜스레 헛헛했다. 더욱 다양한 마임 공연을 찾아보고, 마임 신작을 만나고 싶어졌다. 
         
 

보충설명

<두 도둑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

주최 마임공작소 판, 삼일로 창고극장
주관 빵과물고기 프로덕션
후원 서울문화재단 (주)선비코리아
출연 유홍영 고재경
구성연출 유홍영
협력연출 백원길
음악 강병권
조명 이나구 박석광 유한경 윤정주

마임공작소 판
2003년 창단, <진화> 한국마임 참가
2005년 <김영감>, <담배가게 아가씨> 한국마임 참가
2006년 <우산>, <신문> 서울숲, 마로니에공원, 여의도 등 야외공연
2007년 <꿈에> 춘천마임축제 참가/ <두 도둑 이야기> 일본 요코하마 공연

* 이상 리플렛 참고
* 사진제공 - 마임공작소 판


                     

필자소개

글쓴이 김해진은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단원.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er를 한다.
gripp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