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패를 빙자한 모험의 기록 : 구루부 구루마의 집 가는 길

 

 

실패를 빙자한 모험의 기록 : 구루부 구루마의 집 가는 길

 

 

<구심력 행진> @ 경의선공유지-만유인력

 

 

김민수

 

퇴근 시간의 아현동,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이도 지나가고 있다. 국제주의 양식의 묵직한 빌딩들 사이로 교통체증이 막 시작되는 저녁이었다. 어디선가 쿵짝거리는 음악이 나오고, 총천연색의 페인트가 오히려 남루한 느낌을 주는 수레를 발견한다. 수레에는 장국영 배우의 얼굴이 나온 포스터가 바람에 반쯤 접힌 채 붙어있다. 수레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란 헬멧에 빨간 바지를 입은 남자가 혼자 춤을 춘다. 이내 수레를 끌고 그는 행진을 이어간다. 팔을 들어 앞뒤로 흔든다. 그것은 춤 같기도, 어떤 투쟁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던지는 주먹 같기도 하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익명의 짧은 시선들만이 그를 지나친다. 이것을 우리는 어떤 공연이라 할 수 있을까.

 

사진_<구심력 행진> 현장 사진

 

 거짓말 같던 날들을 돌아보며

 

지난 4월 1일, 아마추어 증폭기와 야마가타 트윅스터같은 이름으로 더욱 알려진 자립음악가 한받의 행진이 있었다. 1년여 동안 경의선 공유지에 주차되어있던 구루부 구루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구심력 행진>이라고 이름 짓고 진행한 것이었다. SNS를 통해 알리긴 했지만, 사진과 영상을 기록을 남기는 정용택 감독을 제외하고 연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무관심한 군중 사이를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아주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직전에 기획되었던 <경의선공유지 최후의 168시간 릴레이 공연>은 연대할 예술가들을 모으지 못해 시작하지 못했으며, 그 대신 열린 공자라이브에서의 공연에도 참여한 예술가 세 팀과 활동가를 포함하여 열 명 남짓한 이들이 함께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구루부 구루마가 집으로 돌아가듯, 경의선 공유지의 시민들도 각자의 새로운 터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경의선공유지는 경의선 철도의 지하화로 생긴 공간을 시민들이 점유하면서 만든 공간이었다. 철도시설공단의 소유지인 이 땅은 이랜드 그룹이 20년간 사용하는 조건의 대규모 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1년간 개발에 진척이 없어 우범지대화되자 마포구의 시민들은 ‘늘장’이라는 이름의 시민장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목받던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비롯한 시민들이 모였다.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늘장이 자리를 잡아가던 겨울, 마포구와 철도시설공단 측의 일방적인 계약 만료에 따라 활동은 중단되었다. 이랜드의 주차타워를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시민과 활동가들은 그때부터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을 만들고 26번째 자치구를 선언한다. 시민들이 함께 소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밀려난 포차와 청년 주거권 활동가, 예술가 등이 그곳에 남았다.

 

사진_26번째 자치구 선언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문에 26번째 자치구 선언이 적혀있고, 우장창창의 간판이 누워있는 경의선공유지에 민중 엔터테이너를 표방하는 한받이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음악가이자 거리예술가로서 기륭전자 불법 파견 투쟁 현장에서 연대 공연을 시작했다. 홍대 ‘두리반’ 철거 현장에서 연대하면서 51+와 같은 축제를 만들고 예술가들을 모았던 그는 ‘돈만 아는 저질’, ‘이단옆차기’, ‘자본의 개, 자본에게’같은 노래들을 만들어 불러왔다. 2019년부터 파견예술인 사업을 통해 공자라이브를 운영하며, 공자구구(공유와 자립의 구루부 구루마)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단히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2012년부터 홍대를 누비던 그의 음악 수레 구루부 구루마를 경의선 공유지에 정차하여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었다. 구심력 행진은 그 마지막 길이었다.

 

사진_포스터

 

예술이 할 수 있던 것

 

경의선공유지에서의 예술 활동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만남가게에선 <퇴근길 라이브>가 매주 진행됐으며, 용산참사 10주기 도시영화제를 비롯해 변두리상영회, 경의선공유지CGV(Commons Gentrification Variation)같은 상영회가 꾸준히 진행되었다. 두리반에서 많은 예술가가 연대하며 시작된 축제 <뉴타운컬쳐파티51+>는 <51++>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다시 시작되었고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경의선공유지 미술관 MoRA 혹은 공자라이브와 같은 공간에서 전시와 공연이 꾸준히 진행되었으며, ‘연극연구소 명랑거울’이나 ‘서울괴담’같은 거리예술 극단의 공연공간이나 전진경 작가, 박노주 작가 등 시각예술가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미어캣, 달라이라마의 딜레마, 황푸하, 예람, 호와호같은 음악가들은 꾸준히 경의선공유지를 찾았다. 크로키 모임이나 보드게임 대회, 시민작당 워크숍들은 그들과 활동가, 시민들을 엮어주었다. 아니 사실, 예술가들은 곧 시민으로서 그곳에서 활동했고, 그렇게 활동가가 되었다.

 

<경의선공유지 최후의 168시간 릴레이 공연>를 대신해 주말에 진행된 작은 공연에선 재밌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이 진행되는 코앞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라면을 끓여 먹은 것이다. 공자라이브 맞은 편 거인이모네 포차에서 끓여준 라면이었다. 라면을 다 먹을 때쯤 냄비를 가지러 온 거인이모는 빨간 행주를 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공연하느라 못 먹은 한받을 위해 다시 라면을 들고 오며, 얼른 마치고 먹으라고 채근하기도 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둘러앉은 자리, 거인이모는 새로 옮길 가게 위치를 알려주고, 한탄 같기도 한 얘기를 풀다가 불쑥 오래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무용담처럼 용역 철수업체와 싸운 얘기를 털며 웃고, 새로 여는 가게에 안 오기만 해보라며 욕을 하고, 연대해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반응이 크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30여 분을 얘기하는 거인이모를 보며 그들이 쌓아온 시간을 상상해보았다. 들어줄 이가 필요한 누군가와, 각자의 방식으로 그 곁에 있던 이들을 보며 미학이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한다. 그런 공감이 곧 예술의 힘이 아니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사진_현장 사진

 

예술이 할 수 없던 것

 

행진에 앞서 가볍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받은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공감했는가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경의선공유지의 시민·활동가들과 연대한 것과는 달리, 주변 고급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 예술가들은 대치해왔다. 소음으로 인한 민원은 반복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지난해 그곳에서 진행된 축제<51++>은 경찰을 사이에 두고 예술가와 주민들이 대치하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민원이 심각했다. 민원 앞에서 공권력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근시안적인 공리주의처럼 보였다. 높디높은 아파트엔 아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경의선공유지의 마지막은 조금 쓸쓸한 모양새였다. 완전히 정리되진 않았지만, 자진 퇴거를 전제로 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누군가는 그사이 돌아갈 곳을 찾았고, 누군가는 찾지 못했다. 한받은 경의선공유지가 예술가들에 의한 투쟁이 직접적으로 진행되는 공간도, 어떤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공간도 아니었다는 지점을 얘기했다. 그것은 예술이 공공에도, 지역 주민에게도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분명 늘장과 경의선공유지를 사랑한 주민들이 있을 텐데, 마주한다고 느끼기 어려웠다는 그의 고백은 어쩌면 모든 예술가의 현주소일 것이다.

 

경의선공유지에서 볼 수 있듯, 기업주의적인 도시는 부동산 경영가들과 경제적인 연합을 이룬다. 그들은 도시를 보다 깔끔한 소비와 체험의 장소로 만들고 더 많은 세수를 창출한다. 그 가운데 예술은 어떤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 복무하거나, 지워진다. 경의선 지하화로 생긴 홍대입구역 인근의 부지는 애경그룹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그곳에선 버스커를 모집하는 광고를 볼 수 있다. 경의선 공유지에 정차하였던 구루부 구루마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길, 괜히 지물 위에 올라가 춤을 추거나 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허공에 주먹질 해보아도 누구 하나 멈추어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함의를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사진_현장사진

 

실험을 빙자한 모험의 기록

 

한받은 경의선공유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로 늘장의 텐트 안에서 영화를 나눠보던 기억을 꼽았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변의 자동차 지나가는 걸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영상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나가는 차를 막지도, 영화가 잘 안 보인다고 상영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어찌 됐건 영화는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구심력 행진이 시작되는 자리,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활동가들은 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승리의 경험도 영광스러운 순간도 아니었을 그 상영회를 상상해본다. 그 글로 본 리뷰를 마친다.

 

“이곳은 늘장 이후 개인 및 시민단체들이 직접 국공유지의 공간 활용과 운영을 실험해온 곳입니다. 우리는 지난 4년 간 이곳에서 기획시장 18회, 강좌 및 학술행사 27회, 공연·전시·상영회 37회, 워크숍 22회, 네트워크 활동 35회 등 약 140회 이상의 크고 작은 행사를 열며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지난해 가을 후 정부와 구청의 퇴거 압박이 거세지고 있고, 공유지의 일시적 사용이라는 우리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곳을 비움으로써 다음의 공유지운동 영역을 확장해가고자 합니다. 그동안 이곳을 오가며 활동을 지켜봐 온 여러분 이 땅은 여전히 시민 모두의 땅임을 잊지 말아요. 돌아온다면 행동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필자소개_김민수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민수민정, 민필, 블루프린트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