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대를 다시 쓰는 열 두개의 상상력 <레퓨지아>, <홍이현숙: 휭,추-푸>

 

 

시대를 다시 쓰는 열 두개의 상상력

 

 

-‘레퓨지아: 11인의 여성 아티스트의 사운드 프로젝트’ 와

아르코 미술관 기획초대전 홍이현숙 ‘휭, 추-푸’ 리뷰 

 

글_샬뮈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지금의 세계가 겪는 경험은 공통의 상실에 닿아있고, 상실의 크기와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은 각기 다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사라진 것이 있다면 다른 것들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있었지만 이제는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빈틈으로 그동안 몰랐던, 혹은 없었던 것을 상상해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무수한 질문들 연장선 앞에 만난 두 개의 전시는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사진_'레퓨지아'전시 (샬뮈)

 ‘레퓨지아: 11인의 여성 아티스트의 사운드 프로젝트’ (이하 레퓨지아)는 2월 17일에서 3월 14일까지 대안공간 루프와 TBS 교통방송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작업이다. 레퓨지아는 집단생물학 용어로 멸종 위기의 동식물이 살고 있는 마지막 남은 공간을 뜻한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접한 레퓨지아 전시는 지하 상영공간에서 1부는 헤드폰, 2부는 스피커 감상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비디오와 사운드가 결합된 형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사운드로만 구성된 작업까지 다양한 결을 가진 사운드 아트를 접할 수 있었다. 

 전시를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을 넘어서 상상하는 것, 그리고 인간이 알지 못했던 감각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땅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코로나 이후를 작가들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탐구하는 예술적인 실천 (<조은지, 나의 쌍둥이 문어OCTO-0을 위한 노래(2020)>)부터 지금도 여전히 인류에게 생존의 위험이 되는 원자력 발전의 그림자(<이영주, 검은 눈(2019)>)와 화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의 한계와 대안을 찾는 작업(<함양아, 텅빈 세계(2021)>), 코로나 이후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요를 들려주는 비디오 (<민예은, 이게 맞나(2021)>) 이외에도 자연을 거닐면서 노래하고 어우러지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 (<이슬기, 여인의 섬(2019)>) 등 국내 작가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좇을 수 있었다. 

 레퓨지아 전시를 통해 사운드 아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좌표에 있는 파리의 엘리안느 라디그, 뉴욕의 타니아 레온 그리고 베를린의 크리스티나 쿠비쉬와 영국의 시바 페샤레키 작업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도 관객으로서 반갑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운드 아트가 할 수 있는 소리에 대한 실험과 탐구를 바탕으로 한 결과물들은 익숙한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예술의 힘에 닿아있다.

사진_<홍이현숙:휭,추-푸> 아르코미술관 유뷰브 영상 캡쳐

 아르코 미술관 기획초대전 <홍이현숙: 휭, 추-푸>(이하 휭,추-푸) 의 제목 ‘휭, 추-푸’에서 ‘휭’은 바람에 무언가 날리는 소리, ‘추푸’는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이다. ‘추푸’는 『숲은 생각한다』(2018)(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역, 사월의책)에서 인용했다고 하며, 케추아어(남아메리카 토착민의 언어)로 동물의 신체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수면에 부딪히는 모습이라고도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휭, 추-푸 전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시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소리에서 벗어나 자연, 동물, 그 이외에 우리가 달리 보아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어둡고 비어있는 공간에 뗏목이 하나 놓여있고, 고래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시작된다. <여덟마리등대(2020)> 라는 이 작업은 고래 8종의 목소리를 MBARI(몬테레이만 아쿠아리움 연구소)가 녹음한 데이터를 변형한 작업으로 관객은 13분 1초 동안 작가의 방 크기와 같은 뗏목에 앉아 스피커 8대에서 나오는 고래의 목소리를 듣는다. 홍이현숙 작가는 이전 작 <사자자세 (2017)>, <고래자세(2018)>을 통해서 공통의 언어를 찾으려는 작업을 수행해왔는데, 완벽하게 될 수 없음 혹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닌 것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 왔다. <여덟마리등대(2020)>는 무엇이 되기보다 이해하려는 작업의 변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석광사 근방 (2020)>에서도 재개발 예정지인 은평구 갈현동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고 직접 쓰다듬지 않고 그림자를 통해 어루만지기도 하며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이해의 과정을 거친 뒤에 작가가 고양이가 되어보는 연습으로 나아간다.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2020)>과 <각각의 이어도(2020)>에서는 만질 수 없는 것 그리고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였다.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20)>은 북한산 승가사에 있는 보물 215호 마애여래좌상을 카메라로 어루만지듯 아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 비대면 시대로 접어든 지금에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휭, 추-푸는 이 외에도 다른 비디오 작업과 활자로 아카이빙된 기록들까지 전시되어 있어 관객들이 홍이현숙의 작업을 면면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소외되어 있고, 가려진 것들을 예술로 보여주는 실천을 해온 작업을 통해 시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레퓨지아’ 와 휭, 추-푸를 관통하는 주제는 생태주의, 페미니즘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오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아주 짧은 설명을 덧붙이자면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차별과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 (벨 훅스, 모두를위한 페미니즘)이다. 성차별주의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페미니즘은 당연하게도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쪽이 지배받고 억압받는다면 다른 쪽은 그만큼의 무게를 짊어진 불균형 상태가 된다. 여성과 남성,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연생태계에 모든 생명체들의 사이에 잘못된 무게 중심에 균열은 현재를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완전한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본질을 놓쳐버리는 이분법을 단호하게 선택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 인간들이 만든 세상은 조금 더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덜 소비하고 경제 및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재생, 순환 가능한 쪽으로 바뀌기를 요구받고 있다. 멸종되어 가는 종이 이제 북극곰이 아니라 인류가 될 수 있음을 이제 자각할 때가 된 것이다. 인류세의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건 홍이현숙 작가가 말했듯, 사실을 직시하기 위한 비약과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멸종 위기종이 되어 레퓨지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상상해보면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까? 레퓨지아의 11명의 작가들과 홍이현숙 작가, 12명의 여성 작가들은 예술이라는 방법으로 시대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필자소개

샬뮈_식물 키우는 일에는 성실한 개미이고, 글을 쓰고 춤추는 것은 마냥 즐거운 베짱이 입니다.


<전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