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콜렉티브-되기’와 ‘계속 말하기’ _콜렉티브 꼼<공간자화 시리즈>

 

 

‘콜렉티브-되기’와 ‘계속 말하기’

 

콜렉티브 꼼<공간자화 시리즈>

 

글_임기택

작업자가 하나의 주제에 깊이 탐구하여 연작을 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공연 예술계에서는 피나 바우쉬의 <도시 시리즈>나 안은미의 <댄스 3부작>과 같이 기록적인 연작이 떠오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하나의 작업에 매달리는 공연 예술의 특성상 이런 연작의 시도는 시각 예술이나 다른 장르에 비해 드문 것이 사실이다.

시대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다채롭고 새로운 주제를 찾아 나서는 작업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더 많은 시각을 사회에 제공한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는지 끈질기게 늘어지는 작업자들은 쉽게 완결되었다고 믿거나 합의해버린 이야기의 깊고 좁은 지점을 발굴해 내고야 만다.

이런 작업자와 작업은 드문 만큼 각각의 시도가 귀하고, 시도의 끝에 어떤 이야기를 기어이 드러내고야 마는 순간은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기도 하는데, 가령 지난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연희예술극장에서 진행된 <공간자화>로 ‘콜렉티브 꼼’의 <공간자화 시리즈>가 마무리된 순간이 그렇다.

 

사진1.  pop con  제공_ 콜렉티브 꼼

 

콜렉티브 꼼은 후각 아티스트 곽혜은과 기획하는 안무가 박세은으로 구성된 다원 예술 퍼포먼스 단체이다.1 퍼포머 조은희까지 함께한 프로젝트 3이 전신이며 2020년 작업의 방향성을 새로 구축하고, 표현의 방식에서도 더 많은 예술가 및 작업자분들과 함께 협업하기 위해2 콜렉티브 꼼으로 팀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작업자와의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콜렉티브 꼼의 역사를 거칠게나마 훑어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간자화 시리즈>는 콜렉티브 꼼 이전에 구성원인 곽혜은의 개인작업 <공간자화: 870612, 12시05분>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공간자화 시리즈>를 곽혜은의 연작으로만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곽혜은은 콜렉티브 꼼의 구성원이며, <공간자화 시리즈>에서 콜렉티브 꼼이 곽혜은의 연작을 위한 콜렉티브로만 기능했다는 해석만큼 정확한 오답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이야기해보겠다.

<공간자화 시리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 이 시리즈는 앞서 말한 대로 2018년에 컨셉츄얼연남에서 1인 퍼포먼스로 진행된 <공간자화: 870612, 12시05분>에서 출발하여 2020년, 탈영역우정국에서 2인 퍼포먼스 <공간자화: 920518, 11시 05분>을 거쳐 2021년의 <공간자화>로 완결된다. 공간자화라는 제목은 ‘공간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려는 시도’라는 문장으로 풀어지는데 자화상이 화가가 스스로를 그린 그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견 오류적 제목으로 보이기도 한다. 

공간이 스스로를 그릴 수 있을까? 혹은 자화상을 그리는 주체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 두 질문은 같은 문장의 대칭 같지만 조금 다르고, 둘 사이의 간극만큼 <공간자화 시리즈>의 의미가 넓어진다.

공간이 스스로를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 모두는 이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도서관과 주차장, 주유소와 찜질방 등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는 곳을 이야기할 때 공통으로 떠오르는 냄새. 처음 들어서던 레스토랑과 어린 시절 비밀스레 들어선 친구의 방과 같이 내밀한 공간의 경험을 추억할 때 함께 소환되는 냄새. 공간은 냄새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자화상을 그리는 주체가 공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관객, 혹은 작업자가 어떤 공간이 된다기보다 원래가 가지고 있던 공간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간성. 3차원의 물질계 시공간에서 차지하는 공간성. 바로 우리의 신체이다. 앞선 질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신체도 고유의 냄새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공간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려는 시도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해한다면 왜 콜렉티브 꼼이 3번에 걸쳐 <공간자화 시리즈>를 탐구했는지는 흐릿해진다. 조금 더 이야기를 진전시켜보자.

 

사진2. pop con  제공_콜렉티브 꼼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냄새를 통해 발산된 정체성은 어떻게 인정받는가.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곽혜은이 자신을 ‘조향사’가 아닌 ‘후각 아티스트’로 정체화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조향사가 향을 만듦으로써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후각 아티스트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향을 만들어낸다. 후각 아티스트에게 후각과 냄새는 매개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공간이 냄새를 전달하는 구조는 닮아있다. 명확하게 한쪽에서 한쪽으로 전달되는 발신과 수신의 구조. 나아가 정체성의 정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발산되기만 하고 아무에게도 맡아지지 않는 냄새는 무의미한 것처럼 정체성 역시 스스로든, 타인이든 발신자에게서 수신자에게 가 닿을 때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일방향의 구조가 꼭 직선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손을 코에 가져다 대고 자신의 체취를 맡아보자. 이 ‘정체성 자화’에서 발신인이 동시에 수신인이 되는 원형의 구조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발신인과 수신인이 갈라지고 합쳐지는 구조 또한 가능하다.

앞서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 보자. <공간자화 시리즈>는 콜렉티브 꼼의 연작 시리즈이며 곽혜은은 콜렉티브 꼼의 구성원이다. <공간자화 시리즈>에서 콜렉티브 꼼의 또 다른 구성원인 박세은은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하는가. 곽혜은이 자신을 후각 아티스트로 정의한다면, 박세은은 스스로를 기획하는 안무가로 정의한다. 곽혜은의 발화 수단이 냄새라면 박세은의 발화 수단은 움직임이다.

<공간자화: 920518, 11시 05분>에서 곽혜은이 벽에 투사되는 영상 너머로 과거 시점의 인물의 냄새를 채집해 다시 영상 밖에서 냄새를 소환하는 동안 박세은은 움직임을 통해 정체성을 탐구한다. 박세은의 움직임이 더해짐으로써 콜렉티브 꼼이 ‘공간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려는 시도’는 이전과는 또 다른 그림으로 구체화된다. 

이제 <공간자화>의 진행을 살펴보자. 첫 장면은 <공간자화: 920518, 11시 05분>의 시작과 흡사하다. 사람 사이, 혹은 어둠 속에서 곽혜은이 나타나고 어떤 대상에 대한 냄새를 소환하기 시작한다. 곽혜은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곳에서 박세은이 나타난다. 박세은은 무대에 설치된 거대한 계단 구조물을 오르내린다. 곽혜은과 박세은은 마주 본다. 외침이 울려 퍼진다.

“내가, 여기”

둘이 서로를 인식하고 연결되는 순간에 터져 나오는 메시지는 존재에 대한 자기 증언이다.

 

사진3.  pop con  제공_콜렉티브 꼼

 

다음 장면. 콜렉티브 꼼의 연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가장 중요한 장면이 될 장면에서 곽혜은과 박세은은 굴절된 나레이션과 직렬된 움직임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빗겨나간 음성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번에도 우리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때?”

“우리 이야기?”

“재미없을까?”

“아니야, 해보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거라고 하잖아.”

그리고 죽음과 삶, 냄새와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곽혜은과 박세은의 이야기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뒤엉키는 이 장면은 특히 시리즈의 마지막인 <공간자화>에서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콜렉티브 꼼’의 <공간자화 시리즈>에서 가장 의미가 깊다. 둘은 번갈아 가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에게 기억되고 싶지는 않아.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나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행위야. 그래서 내가 냄새를 적극적으로 맡는 거지.”

“적극적으로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냄새를 맡아야 하거든.”

 

“나한테 살아있다는 건, 움직이는 것 같아.”

“살아 있는 것은 다 움직이지.”

“아니. 난 지금 내가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거야.”

 

냄새와 움직임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곽혜은과 박세은에게는 동일하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기억되게 해주는 것.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것.

같은 것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장면이 흘러간다. 

이 장면이 <공간자화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장면은 이렇게 ‘콜렉티브 꼼’이 전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곽혜은과 박세은은 <공간자화 시리즈>와 다른 작업을 진행해오며 ‘콜렉티브 꼼’으로써 서로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발신하고 수신했으며, 스스로의 냄새를 발산하고 서로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이 과정을 거쳐 ‘콜렉티브 꼼’은 단순히 ‘곽혜은/박세은’으로 구성된 2인  팀에서 다양한 작업자들까지 너끈히 담아낼 수 있는 ‘콜렉티브’로 나아간다.

 

사진 4-5.  pop con  제공_콜렉티브 꼼

 

이후의 장면은 이렇게 흘러간다. 둘은 계속해서 각자의 방식을 진행한다. 박세은은 움직이고, 곽혜은은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때의 바라봄은 극 중 인물 간의 교감이면서 동시에 콜렉티브 꼼의 구성요소로 상호작용으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둘이 이러한 콜렉티브 꼼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삽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극의 서사를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쓰러지는 인물과 소생을 해석할 길은 막연해진다. 하지만 분명히, 둘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콜렉티브 꼼으로써 <공간자화 시리즈>를 진행해온 서사를 함께 삽입했다. 그것은 사람의 몸에서 피어나는 체취이자 각자마다 갖는 고유의 춤선처럼 연작의 마지막 작품에 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공간을 누비며 관객들에게 냄새를 퍼뜨린다. 박세은도 냄새를 퍼뜨리고 곽혜은도 움직인다. 명확한 구분을 허물고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하며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커튼콜 이후에는 이를 관객의 몫으로 넘기며 관객의 움직임과 냄새 퍼뜨리기를 유도한다.

4년에 걸친 <공간자화> 연작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냄새는 쉬이 사라지지 않고 움직임도 쉬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콜렉티브 꼼이 끊임없이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1. 콜렉티브 꼼 공식 SNS 계정 소개 내용 중 일부

2. 프로젝트 3 공식 SNS 게시글 중 일부

 

 

필자소개

임기택: 게으르게 움직이고 게으르게 씁니다.꾸준히 움직이고 꾸준히 쓰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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