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1월 레터] 괜찮지 않은 당신을 조금 더

2022. 11. 7. 01:04Letter

 

안녕하신가요. 레터를 써놓고 마무리와 퇴고를 위해 잠시 묵혀두는 며칠 사이 10.29 참사가 있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리느라, 준비하던 축제가 미뤄지며 새로 생긴 일들을 처리해내느라, 또 ‘그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올리면 안 될 글 같아서’ 머뭇거리는 바람에 11월이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올려봅니다. 다른 맥락으로 의미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새 유머감각을 잃어 제 슬픔은 더 이상 재밌지 않으니, 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것은 트리거 워닝입니다.

 


 

전 지난 9월 레터를 쓰고 아주 안 인디-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르세라핌과 이찬혁, 슬기님의 신보를 열심히 들었고, 올림픽공원에서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트위터를 줄이고 인스타그램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은 틱톡 댄스 챌린지나 연애 프로그램, 행복한 사람들이 그리는 일상툰, 고양이 사진, 인도의 스트릿푸드 같은 걸로 가득 차보이기도 합니다. 뭐 다 알고리즘 때문이겠지만요. 다들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ENFP의 특징을 다룬 글이 또 보이네요. ENFP는 즐겁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요즘 저는 좋아하던 친구와 오랜만에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갖지 못한 흥과 위트를 가진 사람이라 함께 하다보면 가끔은 그가 부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에게 어떤 힘든 시간이 있었는지 올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티고 살아내는 생이라고, 발버둥 칠수록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하는 겁니다.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흥 많고 재밌는 친구가 힘들어해서 놀라운 게 아니라,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으면서 그걸 이제야 느꼈다니 싶은 거였어요. 보통 한 10살 쯤 되면 감각하지 않나? 

 

1968년의 장 뤽 고다르 By Gary Stevens - 이 파일은 여기에서 추출하였습니다.,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1194572

 

우리가 조금이라도 사유할 줄 안다면, 삶이라는 게 다 무의미하고 존재가 고통이고 뭐 다 자살해버렸을 거라고 얘기하고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죽어버릴 수 없으니 사랑하는 거라고,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되면 살아갈 이유를 억지로 만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는 거 아니겠냐고 덧붙이곤 했죠. 물론 저도 사랑받고 곱게 자랐는데요, 이보다 평탄할 수 없는 삶인데요, 그래서 하는 말인거죠. 보통의 사람들은 다 일주일에 사흘 쯤은 죽고 싶고, 한 달에 하루 쯤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일년에 몇 번씩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만큼 지쳐 누워버리고, 일생에 한 두 번은 실제로 행동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치 인스타 릴스 같이, 다들 하는 것 같지만 내 주변엔 없어보이고, 그럼에도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 1)’ 한 번씩은 따라해보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서브컬쳐같지만 아주 메인스트림이라고요.

 

어떤 이야기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는 동료분의 얘기를 건너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오래 준비해온 작품이 믿을 수 없는 이유로 취소되어서, 공연 중 나타난 취객이 공연 중인 예술가를 폭행하였는데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눈물 글썽였다고요. 다른 곳에선 ‘달라진 것 없이 아무렇지 않은데 왜 그러느냐’는 얘기에 속상해하는 사람들을 만났고요. 

 

ENFP는 즐겁습니다. 저도 그러한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작년 처음 쓴 레터에는 동료의 장례식에 다녀온 얘기를 했고, 지난 주엔 동료의 시신을 꺼낸 그 자리에서 다시 일을 해야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었습니다. 분명 어떤 세상에선 다들 즐겁고 행복해보이는데, 정말로 늘 살고 싶어하는(그래서 살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갓반인’일텐데, 어째서 이렇게 즐겁기가 쉽지 않을까요. 틱톡 댄스 챌린지를 따라해보아도 제 삶에 갑자기 프리미엄이 2배 3배 4배 2) 붙진 않겠죠. 

 


 

여기까지가 지난 주에 쓴 레터였습니다. 그 사이 효율적인 애도, 신속한 슬픔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네요. 전 종일 반복해서 뉴스를 보았습니다.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계속 무서운 것들을 찾아보아도 새로 발견되는 것은 없는데,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자꾸만 찾아봤습니다. 왜 이것이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으면 안 되는지 화를 내면서요.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사람들에게 괜히 어깃장을 놓듯이, 누구는 죽었는데 나는 내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냐고 소리쳤습니다. 그건 그냥 투정같은 것이었겠지요.

 

 

이제부터가 지난 주에 못 쓴 마지막 문단입니다. 제 삶은 앞으로도 올림픽공원에서의 페스티벌처럼 즐겁고 쾌적해지지도, 연애프로그램처럼 아름답지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길에서 고양이 사진을 불쑥 찍는 것처럼 또 계속 소소한 것들을 발견해가겠지요. 죽고 싶은 날을 건너온 짬으로, 울고 싶은 이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때를 기다릴 겁니다. 아니 이제야 그걸 깨달았냐고 놀리는 대신, 아픈 사람을 더 많이 마주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더 깊이 안을 수 있는 말랑한 마음을 갖게 되면 어른이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레터 제목의 원래 제목은 괜찮지 않은 당신을 조금 더 사랑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정우 - 종말 라이브 영상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

 

 

 

 

1) 가수 지코 ZICO의 노래 <아무노래>의 도입부. 틱톡 댄스 챌린지를 크게 유행시켰다.

2) 가수 지코 ZICO의 노래<새삥>의 후렴 가사. "보세 옷을 걸쳐도 브랜드 묻는 DM이 와 / I'm too sexy 헌 집 주고 새집 / 프리미엄이 붙어 두 배, 세 배, 네 배 yeah" 중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