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7. 12:20ㆍLetter
더 많이 갖고 싶습니다. 아주아주 부자가 되고, 장비든 공간이든 필요한 건 다 있는 데다, 친구도 많고 인기와 영향력도 있고, 이게 다 내 거여서 아무도 안 주고 혼자만 갖고 싶습니다. 울면서 떼쓰거나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이 이미 제게 있는 게 당연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갖고 싶습니다.
축제 하나를 마치고 4월 레터를 쓰고, 다른 축제 하나를 더 마치고 6월 레터를 씁니다. 아마 8월 레터도 마찬가지겠죠. 일상적인 공간에 스며들어야 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가 관리하는 공간을 빌려서 쓰는 작업도 있었습니다. 남의 공간을 빌려 쓰다 보니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점심시간에 잠깐만 공간을 보고 가겠다는 요청에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엔 화가 났어요. 심지어 같은 문화재단의 다른 부서였는데도 말이에요. 7월의 축제는 아직 공간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건전한 여가 선용’이라는 목적에 이 축제가 부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미루고 있는 거죠. 우리가 얼마나 ‘건전한지’를 설득해야 한다는 건 의아했습니다.
어느 것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술가를 만나면, 그저 함께 고군분투할 것을 약속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프린지 소속으로서 기금을 따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축제가 함께 했고, 그 팀들 가운데 프린지가 쓰기로 협의된 기간에 같은 공간을 쓰겠다고 발표하는 팀도 있었습니다. 순간 발끈했지요. PT가 끝나면 만나서 다른 공간을 알아보셔야 할 거라고 얘기해야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끝내 그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동료들이 같이 하면 재밌겠다, 어떻게 공간을 나누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잘 풀 수 있을지 고민하자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큰 배움이었어요. 저에겐 공공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같은 질문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소유가 전부인 세상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이건 ‘내 것’이 된 이상 협의는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공간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길 위의 고양이는 귀엽지만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뜯어 놓으면 박멸하고 싶고, 카페에서 아이가 우는 순간 부모는 죄인이 됩니다. ‘이것도 내가 지불한 금액에 포함돼있다’같은 얘기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위대한 사유재산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요. 사람들은 더 많이 갖고 싶어서, 이미 가진 양 행동하거나 더 가진 이들을 추앙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모양입니다.
어떤 시대 정신이 내가 생각하는 옳음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고 느낄 때면 외로워지곤 합니다. 때로 앞으로 가는 과정에서 역풍을 맞기도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저 제가 이상한 방향을 그리는 것일지도 모르죠.
최근 본 공연 <코끼리택시>가 떠오릅니다. 택시 안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창밖으로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기후위기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공연은 어떤 당위의 차원을 넘어 딜레마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었어요. 탄소발생에 관해 얘기하면서도 태백 광부의 목소리, 언제는 산업역군이라더니 이렇게 소비되고 버려졌다며 토로하는 인터뷰를 듣게 했습니다. 택시는 끝내 길을 잃고 멈추고 맙니다.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구와 생태이기도, 누군가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택시가 멈추고 공연이 끝난 다음 낯선 곳에 내린 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습니다. 어디로 가야할까요? 저는 여전히 터덜거리고 있습니다.
예술가를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위임받은 직업군’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겠지만, 6월엔 더 많은 작품을 보러 다니고 싶습니다. 소유가 전부인 세상 다음에는 무엇이 올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지 혹은 스스로 연료가 되어 소진 당하더라도 로켓에 올라타야 할지 어렴풋이 감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아니면 다른 질문을 얻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 물론, 저도 여전히 더 많이 갖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더 많은 인디언밥의 구독자라든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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