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3월 레터]오겡끼데스카 와타시도 네 꿈을 꿔

2023. 3. 4. 20:51Letter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

인디언밥 레터가 말 그대로 편지라는 것을 종종 까먹곤 하지만, 이번 레터는 괜히 새삼스러운 기분입니다. 영화<러브레터>와 <윤희에게>를 보고, 일본 훗카이도의 작은 도시 오타루에 다녀와서 쓰는 레터거든요. 두 영화 모두 편지를 통해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 영화 속 대사인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 겡끼데스(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와 “추신, 나도 네 꿈을 꿔”를 섞어서 제목을 지어보았습니다. 이를 빌어 멀리의 독자분들께 안부를 묻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겨울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겨울이란 농한기의 배고픔을 견디는 시간이거나, 긴 밤의 지루함을 버티는 시간이어야하는데, 대신 그만큼 빈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채워갔을 텐데, 현대인에게는 어느 것도 허락되지 않나 봐요. 풍요롭게 말라가는 시간은 몸과 마음의 체력을 요구하는 일 같습니다.

 

하지만 올겨울엔 일부러 시간을 냈어요. 몇 개의 창작 지원사업 지원 기간이 지난가을에 다 끝나버린 덕에 겨울에 시간이 조금 났고, 코로나 기간 동안 모은 돈을 털어 오랜만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에게 굳이 이국의 기차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거리감이 만드는 애틋함이란 게 있는 법이잖아요. 2023년 첫 인디언밥 레터도 3월이 다 되어 올리면 조금 더 애틋할까요? 아무래도 변명에는 또 실패한 것 같습니다.

 

2월로 예정되어있던 인디언밥 편집위원 회의도 자연스레 3월로 미뤄져 버렸어요. 한 해의 계획이나 다짐 같은 것을 나누면 좋겠지만, 대단하지 않은 한 해면 뭐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겨울을 견디고 돌아온 얼굴들과 오겡끼데스카 같은 안부를 묻고, 거기서 힘을 얻어 다른 작품과 필자, 예술가와 독자를 이을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체로서 더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다가가지 않고 전하는 글이 주는 감각도 있겠죠.

 

 

 

지난 훗카이도 여행은 놀러 간 것도 맞지만, 제 친구의 동생이 워킹 홀리데이로 지냈던 곳에 뒤늦게 가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부터 그 동생을 상상했고, 도착해선 그가 일했던 곳, 보았을 풍경, 만났던 사람들을 따라 걸었습니다. 마치 그 친구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가 일본을 떠난 지 4년은 됐을 거고, 죽은 지도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어요>라는 제목의 노래를 썼어요. 그날 7년을 함께한 여행용 기타를 부숴 먹었지만, 마지막 연주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어떤 거리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밤이 길어지는 겨울, 닿지 못하는 먼 곳, 서로의 공허를 들여다봐 줄 수도 없고 슬픔에 손잡아줄 수도 없고 노래를 들려줄 수도 없지만 그냥 연결되어있는 것 같은 감각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해봅니다. 두 명의 이츠키와 히로코, 윤희와 쥰과 새봄과 고모 ... 어떤 예시도 정확하진 않지만, 조금씩은 맞닿아 있겠죠. 멀어서 애틋한 마음으로, 그만큼 긴밀한 기분으로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오겡끼데스카? 와타시도 네 꿈을 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