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2월 레터]우린 아직 알 수 없지만

2022. 12. 24. 08:28Letter

 

 

12월입니다. 어떻게 한 해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잘 지내셨나요? 지난 한 달 간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년 간의 인사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레터를 적고 있는 이 카페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해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할 나이는 아니지만, 연말의 즐거움이란 이런 뜻 모를 기대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디언밥은 지난 한 해 동안 26편의 글을 발행했더라고요. 지원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던 작년보다는 적지만 선방한 한 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론 꼭 다루고 싶었던 장르를 기록할 수 있어 기뻤고, 새로운 필자님들과 연을 맺기도, 기고문을 제안받아 지면을 내어드릴 수도 있어 뿌듯했습니다. 아, 레터를 꾸준히 쓴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었어요.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산타클로스 선생님보다 더 반가운 필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편집위원이자, 공연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듯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리뷰로 작품과 현실을 보게 해 주신 불나방 필자님, (<만나면 좋은 친구: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공간을 경유하여 전시의 의미를 탐사해주신 한혜수 필자님(분단이미지센터 전시 <환영으로 채운 굴과 조각보로 기운 장벽 탐사대> )

축제의 프로그래밍 전반에 대한 리뷰로 신체라는 영토와 법, 연극-하기에 질문을 던져주신 갈피 필자님(<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21가을페스티벌 “법rule”>)

전시 같은 연극의 형식부터 내용까지 꼼꼼히 작품을 짚어주신 김민관 필자님(<DIOS EX MACHINA>)

재연인 작품을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읽어주신 정혜진 필자님(<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개별 작품을 넘어 전시가 만들어내는 의미를 읽어주신 하마 필자님(<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

한 명의 창작자로서 만난 작품의 감상과 함께 공연예술과 리뷰쓰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아주신 김은한 필자님(<케샤,레로,케샤>)

일부러 흐리고 열어둔 공연이 그 흐리고 열림으로 보여준 바를 들려주신 임다영 필자님(음이온<비둘기철머 걷기>)

공연예술가로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전시의 리뷰로 연을 맺어 기고문까지 보내주신 조아라 필자님 (<블루 플래닛 – 바다 Blue Planet – Sea> )

한 편의 공연을 넘어 전자음악계의 현장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신 윤태균 필자님 (<닻올림 연주회 147_Massimo Magee / 모토코 / 한재석>)

명료한 연출의 힘을 통해 작품이 가진 가능성을 읽어주신 성혜인 필자님(shi-ne <HOLE>)

정신없던 집담회의 맥락을 짚고 의미를 추출해주신 김유경 필자님의 (독립예술집담회<우뭇가사리 콩국-우리가 뿔뿔이 흩어졌다면>)

작가의 전작부터 이어지는 문제의식, 형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짚어주신 김민수 필자님(프로젝트 뉴 플래닛 <Let’s Go To My Star 시즌1>)

그림을 그리는 듯한 리뷰를 통해 음악 공연이 담아내는 이야기를 묘사해주신 김재훈 필자님(<연희하는 여자들>)

공연과 레코딩의 형식이 뒤섞이는 작업을 통해 역설적인 음악미학적 순간을 짚어주신 전대한 필자님 (오헬렌 <Recording Room Concert>)

불안을 인정하게 하는 작품의 힘을 활동가로서 적어주신 윤석 필자님(콜렉티브 뒹굴<꿈의 방주:Hunge Stone>)

그리고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공연을 기록하고 과정을 나눠주신 안티무민클럽과 기획연재<축제가 사라진 사람들>을 함께해주신 임현진PD님, 채민 필자님, 올 여름을 함께 해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지난 한 달 사이 전시를 한 편 올렸습니다. 한 공간이 가진 역사를 바탕으로 작품이었어요. 저와 함께한 동료는 ‘외부인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피상성’에 대한 얘기를 작가노트에 적었는데, 그 글이 좋으면서도 그대로 쓸 수가 없어서 똑같은 형식에 내용도 절반은 겹치는 작가노트를 굳이 또 적어 나란히 붙여두었습니다. 저에겐 그 작업이 너무도 제 얘기였거든요. 장소가 가진 이야기와, 장소성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드는 나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작업이었고, 그 안에서 기억하기와 애도하기와 노래하기가 연결되어 (잘 하지도 못하면서) 제가 부른 노래로 마치게 되는 전시였습니다. 그 작가노트엔 이런 글을 작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죽음과 말도 안 되는 삶이 그 세월을 지탱해왔다면 크레딧을 나눠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가 기억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거겠죠. 우리에게 지금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겠지만 한 장소를 이뤄내던 시간과 사람들을 성실히 기억해 보고자 합니다.”

 

한 해 동안 인디언밥이 담아온 필자님들의 리뷰가, 또 그 작품들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아직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매체들이 다루지 않을 법한 작품들을 굳이 찾고, 애써 필자를 찾아 리뷰를 청탁하고, 편집위원의 사비를 넣어서 매체를 운영하는 이 일이 시대를 건너 쌓여가는 것이 참 멋지다고도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독립예술 작품과 생태계에 갖는 태도 같은 것이겠죠. 오늘의 허우적거림이 어떤 흐름이 되어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유없는 기대감에 설레듯 즐거워해보겠습니다.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