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4월 레터] 삶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2023. 4. 9. 11:38Letter

 

 

도대체가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날 벌어먹여야 한다는 것이, 숨만 쉬어도 죄가 쌓여간다는 것이, 나를 겨냥하지 않지만 사실은 내게 칼날을 쏟아내는 혐오가 이렇게나 무거운데 어떻게들 살아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합니다. 어떤 세상의 질서라는 게 있고 저만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는 것을요.

 

얼마 전에는 기후위기 시대에 행동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챌린지에 지목받았습니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겁이 났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죠.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람보다 스스로를 부도덕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들을 더 미워하잖아요. 마녀사냥은 인류의 오래된 엔터테인먼트고, 채식 제품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에는 놀랄 만큼 조롱이 따라붙습니다. 각 분야의 운동가들을 향해 쏟아지는 냉소와 멸시를 떠올립니다. 기후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되는 이유와 기후정의 행동이 시민의 의무니 뭐니 하는 얘기를 써볼까 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나 싶습니다. 거리예술가로서 내 이야기를 하기엔 사실 더더욱 비웃음 받기 좋은 선언이 되겠지요.

 

세상의 질서를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발전과 성장과 미래의 번영과 통합에의 장애물로 사는 삶은 진절머리가 납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제노포비아를 습득하고, 다음 주부터는 아동혐오를 배워볼까요? 토픽이 너무 지엽적이라면, 경제적 관점에서의 능력주의를 익히고 징벌적인 정책을 더 만들어보겠습니다. 친구는 이런 저에게 “PC탈출 넘버원!” 같은 제목을 추천해주었어요. 울고 싶어서 웃었습니다.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의 분리수거함. 어린이위원회의 표어가 인상적입니다

 

인디언밥에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드라마에서 활발히 활동한 한 배우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황색언론을 통해 나왔고, 그 정보들의 출처를 추적해보니 10여 년 전 인디언밥에서 진행한 인터뷰 시리즈였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디언밥이 발행한 글이 1,000건이 넘으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죠. 그 배우분의 소속사로부터 전·현직 편집위원들에게 연락이 갔고, 우리의 늦은 일 처리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었다는 생각에 크게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인디언밥의 인터뷰가 원흉이었다기엔 어렵지만, 사실은 높은 조회수를 위해 오해하기 좋은 헤드라인을 뽑아낸 황색언론의 문제겠지만, 내상이 있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세상의 질서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로 조회수를 버는 것이 당연한데 저와 친구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지난주엔 4.3이었고 서북청년단 이름으로 제주에 현수막이 걸렸다고 하죠. 뉴스에선 사과 대신 돈으로 해결해주겠다는 선언이 들려옵니다. 경제적이지 못한 제가 할 수 있는 기후위기 선언을 상상해봅니다. "아아 제가 그 뭐냐 조만간 죽어버리겟슴당~이것이 적자생존 겸 친환경!!" 하하하 역시 못하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민폐가 되면 된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투신하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그런 뜻이잖아요하지만 이제 누칼협(누가 들고 협박함?) 시대가 되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런 하라고 떠밀었냐고, 네가 선택했으니 징징대지 말고 견디라는 요즘에는 타인이 죽음으로 고통받더라도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힘을 내어 삶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이것도 역시 못하겠습니다. 웃고 싶어서 오늘은 울겠습니다.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