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관이 내려졌다...<극단 노뜰>의 '파관'



후용공연예술센터를 찾아가는 길, 잠시 길을 잃어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 담소 나누시는 어르신들에게 여쭈었더니 바로 막힘없이 설명해주신다. 시골마을 폐교에 자리 잡은 후용공연예술센터는 그 마을의 한부분이 돼있는 것 같았다.

노뜰의 이번 공연은 ‘파관’

무대는 까맣다. 아이가 들어 갈만한 자그마한 관이 백색의 끈에 걸려있다.

극이 시작되고 무대는 암흑.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만이 공간을 바람처럼 휘감는다.

조명이 들어 온 무대는 공동묘지. 아이의 관을 내려야 되는 순간, 아버지는 하관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극은 관 안에 묻혀있는 이야기를 뚜껑을 열어 관객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관객이 보는 것은 모두 배우의 말과 몸짓, 그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는 나오지 않고 그저 주변인들이 말하고, 추정하고, 추정한 것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또 다른 추정을 낳고……

아니다. 과연 아이의 어머니도 아이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까?

국화가 바닥에 떨어질 때면 하얀 꽃잎들이 검은 무대에 흩뿌려진다.
배우가 내뱉는 말이 그저 공기 중에 떠도는 것처럼.
떨어진 국화를 다시 하나하나 모아 관 위에 올려놓는다.
떠도는 말들이 모여 진실이 되는 것처럼.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퍼즐조각이다. 관객은 퍼즐조각을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며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퍼즐 하나,

정부가 관을 잡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말한다. 죽은 아이가 당신(아버지)을 많이 닮았다고. 하지만 그 칼자국은 닮지 않았다고.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가 정적 속에 울려 퍼지며 아버지는 괴로워한다.

퍼즐 둘,

정부와 보모는 작은 관을 사이에 두고 빙빙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자신은 아버지를 보살폈다고. 자신은 아이를 보살폈다고. 서로의 사정을 그저 내뱉다가 하관식에 나타나지 않는 아이의 어머니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관에서 벗어나 서로 만나 자신들의 공통분모를 확인한다.

퍼즐 셋,

어두운 무대 위 붉은 조명 속 아버지와 정부가 서로 어머니의 불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논쟁으로 번지던 대화는 어느새 두 배우의 춤추는 몸짓으로 변한다.

무대 중앙의 보모는 관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관을 아이 만지듯 조심히 쓰다듬고 감싸안고,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여자는 움직이지 않는 관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 벽인 줄 알았던 무대의 한 면이 열리며 어둑어둑해진 바깥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관이 (실내에서 실외로 나가며) 내려졌다. 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것을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표현한 공간 구성력이 돋보였다. 후용공연예술센터의 큰 장점인 너른 자연풍경을 한껏 살린 극의 마지막부분이었다.
 
안에서는 정부가 백색의 끈으로 보모의 목을 휘감고 있는 모습을 붉은 조명이 비추고, 밖에서는 붉디붉은 불꽃이 하얀 국화꽃이 있던 그 자리에 피어났다. 붉은 빛들이 너울거리며 지금까지의 모든 말들을 태워버린다.

극의 말미에 가서는 배우들이 추정하는 진실을 믿어버렸던 나를 발견했다. 신선한 바람이 내 코끝을 스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파관에서 말하듯, 기억이란 결국 진실이 아닌 내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의 조합이라는 것을. 내가 쓴 이 글 또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단편들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대승
하루 종일 바닥에 붙어있다 심심할 때면 붓을 잡는 화가이다.

  1. 전작인 붓다마이바디와 연결된 작품인가요?

  2. 그렇진 않고요..붓다마이바디에 작가로 참여했던 김현우씨가 연출한 신작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