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온앤오프 무용단의 <바다는 없다>

2009. 12. 13. 17:36Review

 

 그 날은 다른 날들보다 더 추웠다. 나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을 둘 만났다. 공연 전, 셋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대화를 나누었다. 장갑을 낀 사람은 손이 덜 시렸을 것이고, 장갑을 끼지 않은 사람은 그날이 다른 날들보다 더 추웠다고 기억할 것이다. 셋은 서로 멀지 않은 좌석에 앉았고, 곧 각각의 개인이 되었다. 

 어두침침한 조명, 앙상한 나뭇가지, 버려진 소파, 여기저기 쌓여있는 텔레비전, 검정 막 뒤로 뿌연 스크린, 쓰레기더미 혹은 그렇게 보이는 뒤엉킨 무언가. 무대 위엔 갖가지 사물들이 강렬하고도 산발적으로 섞여있었다. 무용수가 그 어지러운 공간을 깨고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에 대해 몇 가지 예상을 했지만, 공연이 시작 되었을 때 내 예상은 모두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스며있던 빛깔들이 일그러지면서, 뒤엉킨 쓰레기더미 속에서 움직이는 형체들이 하나씩 분리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은 보호색을 띈 카멜레온처럼 배경에 흡수되어 있었던 것이다. 버려진 종이 박스가 움직이고, 무대를 비추던 관객석 쪽의 조명이 흔들거리더니 빛을 여러 갈래로 뿜는 존재가 나타나고, 곧바로 다른 한쪽에선 얇은 빛이 빠르게 움직이는 몸의 단편들을 비추고, 누군가는 전기밥솥을 들고 나타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라지고, 티브이에선 실시간으로 찍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재생되며  쉴 틈 없이 강렬한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연출된 무대를 보는 것이 아닌, 어느 비현실의 광경을 우연히도 목격한 듯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라이브로 DJ-ing 되는 드럼비트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자칫 정신없을 수도 있을 여럿의 각기 다른 움직임들을 하나의 기묘한 파티로 탈바꿈 시키며 심장을 끊임없이 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난 그게 별로였습니다. 반복적인 베이스드럼 소리가 처음엔 괜찮았지만 나중엔 심장을 때리는 게 부담스러워 혼났습니다. 게다가 같은 분위기의 음악이 너무 오래 지속되니 나중에는 장면 자체가 플랫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난 그 때가 좋았습니다. 극장이 마치 클럽이 된 듯해서 새로웠습니다.
-그러나 난 그런 식으로 음악 쓰이는 공연을 몇 번 보았기에 그 점이 그리 특별하진 않았습니다.

-많은 이미지들이 있었습니다. 망가진 듯 보이는 전기밥솥의 전선을 잡고 강아지 산책하듯 끌고 다니는 이가 있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리고 망가진 듯 보이는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비비는 이도 있었습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난 뒤에서 망가진 듯 보이는 다리미를 들고 바닥을 긁는 이를 보았습니다.
-그 모든 기억이 옳다는 전제하에 보자면, 그것은 모두 가전제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결론에 도달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잠깐,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건 곤란합니다.
-누가 곤란하다는 겁니까?
-우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우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당황.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당신의 진부한 해석이 연출가의 의도와 다른 건 물론인데다가 작품에 대한 모독이 된다면, 그래서 모든 작가가 창작에 대한 의욕을 잃고 ‘창작 하면 뭐해. 관객이 개뿔 이해를 못하는데.’라는 식으로 마구 나가버린다면.
-그건 너무 마구 나가버린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식의 접근을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갑 속 전 재산 2천원을 주고 산 이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 여기 보면 여러 가지 베껴 쓸 만한 말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 “현대 무용의 감성적 코드는 열려진 텍스트이다....... 온 앤 오프 무용단의 본 공연도 오로지 관객 몫으로 비워진 무수히 많은 공간과 텍스트를 함유하고 있다......” 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것은 곧 관객 몫으로 비워진 무수히 많은 공간과 텍스트를 함유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나는 너무도 딱딱한 마음가짐으로 공연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분석하고, 이들이 공연을 통해 표현하려는 사회적 메시지를 찾기에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보지 못한 걸 후회합니다.

-그렇습니다. 난 현대 무용을 볼 때 움직임 자체를 보고 감정 자체를 받아들입니다. 관객은 각자의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에서 끝나야 합니다. 결론짓고 강요하는 순간 움직임은 언어가 되고 그것은 고정되어 버립니다.
-난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가 있을 수 있고 다분히 의도 된 연출이 보이기도 합니다. 모든 해석을 개인에서 끝내야한다는 당신의 관람 방식은 다소 방어적으로 보입니다. 프로그램 책의 작품 컨셉을 읽어보면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하지만 프로그램 책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현대 무용 작품을 완전히 파악하기란 솔직히 힘이 듭니다. 내 경우엔 스토리 보다는 움직임 자체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한 관람 태도 인 것 같습니다만.

-내 경우엔 작품을 좀 더 파악하고 공부해서 숨겨진 의도까지 파악할 때야 비로소 작품을 제대로 봤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린 각자의 개인입니다. 의견이 일치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각자가 본 이미지에 대한 느낌을 무차별적으로 이야기해봅시다.

-그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동의합니다.

-누구 말에 동의 한다는 겁니까?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어디든 다수의 편에.

-난 강아지가 나온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강아지는 한 여자 무용수를 쫓아 다녔습니다. 난 그 장면에서 남성의 탐욕과 집착이 느껴졌습니다. 아주 귀여운 하얀 강아지였음에도 불구하고도 그랬단 말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당신은 그 강아지를 통해 자신을 본 것입니다. 당신은 겉으론 그리 안 보이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심각한 성 집착증 환자입니다.
-난 감옥에 가는 건가요?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내 경우에 강아지 장면에 어떤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장면이 인상에 남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순간, 처음으로 디제이 음악이 멈췄습니다. 누군가 노래를 불렀고 마이크를 빼앗는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으로 모두의 행동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습니다. 곧이어 다른 이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이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고 무용수들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고 관객의 시선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한 사람이 디제이에게 음악을 요청했습니다.

-음악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그때부터 파티 분위기가 났습니다.
-무용수들은 틀에서 벗어난 듯 보였습니다. 
-관객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들끼리 자유롭게 춤추며 즐거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춤을 추고 있었지만 결합이 된 듯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처음으로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전환의 시작입니다.
-전환의 도구는 구석의 소파였습니다.



우리는 지저분한 소파가 들려나오는 걸 보았다. 소파는 세로로 세워졌고 한 무용수는 소파위에 정착하려 하지만 뒤로 넘어가고 떨어지고 위태위태하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소파 다리에 포로처럼 매달린 채, 그 아래에 깔리고 만다. 모두 퇴장. 암전. 
 양쪽에서 소파를 등에 이고 기어 나오는 무용수. 소파는 생명체로 보인다.


-소파에 깔리는 남자를 보니 현대 사회에서 해체되는 가족이 연상되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기어 나오는 소파 아래에는 무용수가 한명 또는 두 명 씩 있었는데 그것은 꼭 달팽이껍질을 뒤집어 쓴 연체동물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정리는 잘 안되지만 집에 깔린 느낌이랄까.
-제 경우에 소파는 멸종 된 거대한 심해어나 공룡처럼 비장하면서도 슬픈 느낌이었어요. 스크린에는 수많은 열대어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비춰졌는데 그것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듯 보였고요.
-저는 그 소파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 짐을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거기에 깔리고 마는 거죠. 하지만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앞뒤 파악을 잘 못한 것 같네요. 사실은 좀 졸았거든요.
-몇 개의 소파가 기어 다니다가 그 중 하나가 무대 중앙에 자리를 잡았지요. 무용수들이 소파로 몰려와, 자리를 잡고 앉기도 하고 뒤에 서 있기도 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가족사진의 모습이었어요. 그 중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들은 액자 안에 알맞게 배치되었지만 지친 듯, 무관심 한 듯, 그렇게 굳어갔어요. 


2막이라고 볼 수 있는 무대 전환이 이루어진다. 시계와 액자, 소파를 중심으로 작은 공간이 형성된다. 무용수들의 파자마차림, 무기력한 표정, 템포가 빠른 일상적 움직임, 발레 음악이 어우러진다.


-전 그 부분이 좋았어요. 전반부의 어두운 느낌이 길어져서 조금 힘들었거든요. 일상의 발랄한 느낌으로 바뀌면서 확실히 분위기 전환이 되었어요. 특히 세 무용수가 파자마 차림에 똑같이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늦잠 자고 일어난 남매가 티격태격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코믹스러웠지요.
-전 세 무용수의 정교한 앙상블을 보고 감탄했어요.
-전 전반부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비해 이 전환이 좀 약한 느낌이 들었어요. 굳이 드라마를 끼워 넣은 듯 억지스러워 보였어요. 



 아이(?) 같은 세 파자마 무용수와 대조적인 모습으로 정장을 차려입은 어른(?)들이 둘 씩 짝을 지어 걸어 나왔다. 그들은 소파에 앉은 아이들을 지나며 경멸하듯 코를 막기도 했고, 가식적으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퇴장했다가 청소도구를 들고 나타난 어른들은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앉아서 움직이는 파자마 아이 셋을 흩어 놓았다. 파자마 아이들이 흩어졌다가 뭉쳤다를 반복하는 동안 클래식 음악 사이로 간간히 들려왔던 일상의 효과음들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접시 깨지는 소리, 알람소리 등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이 한데 섞이더니 아이와 어른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움직임은 더 격렬해지고, 소음도 함께 격렬해져갔다. 격돌. 그 후엔 희미한 새소리만이 남았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무대 안의 어둠을 응시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 새소리는 어느새 물소리로 바뀌었고 어둠속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무대 한편에 조명이 들어오며 한 무용수가 등장했는데 섹시하면서도 기묘했다. 무대 뒤편엔 추억처럼 첫 막의 무대 세팅이 희미하게 보였고 조명은 차가웠다. 의상을 조금 걸친 무용수들이 비현실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 무대 한가운데로 다가 왔다. 펑퍼짐한 외투를 걸친 다른 두 무용수는 미래에서 온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들 모두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껏 부비고 싸우며 쌓아왔던 관계들이 이 순간 모두 무너지고, 그들은 다시금 개인이 되어버렸다. 처음의 개인이 낯설음의 코드이며 접촉을 통해 관계가 발전 되어갔다면, 나중의 개인은 외로움의 코드이며 의도적으로 서로 경계 할 수밖에 없는 상처투성이의 개인이다. 개인들은 서로 뒤엉키다가 외투를 집어 던지고 일곱 개의 얇은 빛 아래 한 명씩 자리했다. 거친 겨울바람을(사운드) 알몸으로 맞으며 외로운 생명체들은 자신의 몸뚱이만한 빛 아래서 처참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이 일치점을 찾았을 때, 그들의 목 위로 물이 차올랐다. 거친 물소리가 극대화되고 파도에 떠밀려 수동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결국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빛의 바다 속으로 침식한다. 
 심해를 떠도는 유기체. 그것은 아직 미성숙하고 불안하다. 작은 물방울들이 합쳐지면 하나의 커다란 물방울이 된다. 커다란 물방울에서 작은 물방울이 하나 빠져나오면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물방울이 된다. 커다란 물방울은 밀접해있는 작은 물방울을 흡수 해 더 큰 물방울이 된다. 심해로 가라앉으며 넘실거리고 있는 이 유기체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개인이라는 물방울을 뱉어내고 개인은 잠시 불규칙적인 운동을 하다가 다시 조직으로 흡수된다. 그것을 반복하며 조직은 서서히 융합하며 완전에 가까워져간다.

 -드디어 저들이 하나가 되었다고 우리가 동시에 생각했을 때, 그들은 갑자기 흩어졌어. 어떤 경고도 없이 조금 전까지 있었던 심해의 공간이 무안할 정도로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공간을 가득 채우던 음향과 강한 조명이 사라지고, 무용수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갔어. 그런데 한 사람만은 그들을 쫓아가지 못한 채,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어. 적막한 공간 에 초라하게 남겨진 팬티 한 장 차림의 한 남자. 사라진 이들과는 다른 몸을 가진 그 사람은,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었어. 아무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달려오지 않았어. 적나라한 조명 아래 발가벗은 남자의 움직임은 아름다웠지만, 그 사람만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불편했어. 불편함을 의도한 것을 알면서도 불편했고, 의도한 대로 불편‘해준’ 우리의 감정이 더 불편했어. 남자는 절망의 몸짓을 해. 그러다가 끝.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익숙한 밝기로 조명이 들어와. 우리는 습관적으로 박수를 쳐. 박수를 치면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는 박수를 치고 있고, 아무도 박수 치는 걸 멈출 수 없어.


<바다는 없다>-온앤오프 무용단의 삶의 메시지
2009년 9월 독일 자이트라움 재단 Wunder Der Prarie Festival에 '인간과 쓰레기'라는 주제를 담은 현대춤 공연으로 공식 초청 되었던 작품으로서, 인간이 마치 물건처럼 그 용도를 다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화 한 작품이다.

2009년 12월 5일(토)~12월 6일(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글 | 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