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봄작가 겨울무대> "성감대만 빼고 몸을 만지면서..몸을 알았다고?"

 

연극을 닮은 공연, 자기를 닮은 공연 


‘봄작가 겨울무대’의 8편 공연 중에 네 편을 보았다. 두 편은 볼 만 했고 두 편은 보기 힘들었다. 볼 만한 두 편은 일종의 '슬픈 코메디‘였고, 나머지 두 편은 내 표현으로 ’순정파 이야기‘였다. 어떤 것이 볼 만 했건, 어떤 것이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건을 떠나 나는 네 편 모두가 실패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이 분명히 감동을 목표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편도 감동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공연은 비교적 감각적이고, 멀티미디어를 쓰고, 묘한 선을 넘어서 관객을 긴장시키거나 웃기거나 한다. 또 어떤 공연은 설명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순정파 이야기에다가 상황연구 안 된 관념어가 줄줄 나열된다. 이 공연들은 각각의 작가와 연출가가, 연극이란 장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를 보여주며, 두 종류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똑같이 재미없다. 연극을 닮은 공연을 하고 있다. 자기를 닮은 공연을 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에게 충격을 주지. 그래야 예술가 작업이, ‘예술가의 자기 초월 - 관객의 자기 초월’ 이라는 보람 있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쿨한 척 하기에는 예술가 욕망이 명백하게 드러난 작품들이었다. 모든 작가들이 전혀 새로운 태도를 가져야한다. 전혀 새로운 태도 - 무엇일지 모를 - 로 나아갈 수 있는 버튼을 찾기 위해 더듬어야 한다. 성감대만 빼고 몸을 만지면서, 나는 몸을 알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할 말이 생각난 공연은 ‘피난민들’이다. 이 작품에 대한 짧은 글을 쓰겠다.



<피난민들>


79년생 김애란 작가가 있다.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소설을 기가 막히게 잘 쓴다.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이 작년인가 나왔을 때, 기대를 갖고 읽어보았다. 좀 실망했는데, 벌써 자기연민에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겨우 서른에. 이거 잘못했다간 다른 여자 작가들과 같은 길을 가겠군. 하지만 알 수 없지.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그녀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이유는, 자취를 한 지 십 년쯤 되었기 때문이다. 반지하 자취방과 고시원 때문이다. ‘피난민들’을 보면서 김애란을 떠올렸다. ‘피난민들’의 무대는 두 개의 고시원 방이다. 수많은 고시원 방들 중에 두 개를 잘라서, 투시도를 펼쳐 놓았다. 한 여자와 남자가 산다. 고시생이다. 가짜 출근과 퇴근을 한다. 회사에 있어야 하는 시간 동안 그들은 방에 있지만, 없는 척한다. 없는 척 하지만, 있는 줄 서로 알고 있다. 고시원 방의 벽은 얇으니까. 저녁이 되면, 신발을 들고 나갔다가 신고 들어오고, 그것이 퇴근 신호다. 괜히 크게 움직이고 소리를 내어본다. 캄캄한 밤, 노트북 모니터의 빛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하루는 끝이 난다.


대사가 거의 없고,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어떤 풍경을 보여주려는 것 같은 연출이다. 무대에는 카메라맨이 있다. 카메라맨은 실시간 클로즈업으로, 그들이 웹에서 무엇을 보는지, 가계부에는 무엇을 쓰는지 보여준다. 신기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풍경을 보여주는 것, 클로즈업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캐릭터에서 출발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남녀주인공이 기가 막히게 소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은 그들이 소심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한편, 이 작품의 배우는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다. 카메라맨도 배우다. 카메라는 눈이고, ‘어떤 눈’이어야 한다. 그 ‘어떤 눈’은 왜 사생활을 훔쳐보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관음증’이다. 관음증이 있는 또 하나의 소심한 캐릭터. 그렇게 되면 카메라는 무대에 어떤 존재로 움직일 수 있다. 소심한 캐릭터의 두 남녀배우와 함께 얽힌 관계가 되어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연극은 일종의 ‘슬픈 코메디’다. 슬픈 코메디는 현장에서는 웃기고, 다 보고 나면 찜찜해야한다. 웃기긴 하는데 찜찜하지는 않은데, 그것은 외로움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외로움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작가/연출가/배우가 자기 외로움을 보여주는 쪽으로 가지 않았다. 풍경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극이 자위를 다루었다면 다른 깊이의 연극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소재가 연극의 다른 부분을 남의 이야기가 되지 않게 이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시원에서 공부하냐고? 자위하지. 소리 없이. 그런데 소리가 난다. 지켜보던 소심한 카메라는 고개를 돌리거나 손가락을 쫙 펴서 렌즈를 가린다. 끝났다. 멍한 시간이 좀 흐르고 안 한 척한다. 못 본 척한다. 뻔히 방에 있는데 없는 척 하는 것처럼.


내일도 되풀이 될 것이다.


두 개의 고시원방의 투시도는 고시원 전체의 투시도이다. 수십 명이 자위하는 고시원의 투시도 - 장엄한 외로움이다. 괴물 도시에서 자취하는 사람, 괴물 구조에 편입하려고 몸부림치는 젊은이들, 이 장엄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이건 나 혼자 키운 생각이고, 시작은 ‘내 방’이어야 한다. 나나 그 소심한 인간들이나 같아야 하는데

가다가 말았다기 보다는 그냥 현대의 풍경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 태도가... 가장 씁쓸하다.


나 자취한다. 서울에서. 오 년 넘었다. 나이는 많고, 사회적 신분은 형편없다. 돈도 끊임없이 벌어야하는데. 어느 날은 차비도 없다. 나, 어떡할까? 노트북을 덮고 잠을 청할까?


삼십 분짜리 공연을 보고 딴지를 걸어서 미안하다. 카메라가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까, 나와 자취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줘. 우리가 헤어질 땐 각자의 샛길을 상상할 수 있는 만남이 되었음 좋겠어. 김애란이 자기연민의 굴레에서 벗어나 동참했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아요? 나의 친구인 젊은 작가님.


새벽에 일어나 겁대가리없이 매너없이 글을 썼다. 쓰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자기초월을 일으킬 수 없는 글을 쓴 것 같다. 약간 씁쓸하다.


<봄작가, 겨울연극>

해마다 신춘문예당선작을 공연 해온 아르코예술극장은 그 당선자인 ‘봄 작가’ 를 중심으로 순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나선형 사계절 challenge 프로그램을 꽤 한다.
배출된 ‘봄 작가’의 ‘여름 워크샵 - 가을 독회 - 겨울 무대’ 가 바로 그것이다.

2010년에 계획중인 <봄 작가, 여름 워크샵>프로젝트는 2009년<봄 작가, 가을 독회>를 거친 작품 또는 작가의 다른 신작을 연출,배우들과 함께 공동으로 형상화하며 희곡을 완성하는 워크샵 형태로 방향을 잡고 있다. 2009년 가을, 11월, 아르코예술극장이 새로 마련한 프로젝트<봄 작가, 가을 독회>는 전년도의 신춘문예당선작가이자,그해 겨울무대의 단편 신작을 발표한 작가들의 장편 신작 발표의 기회였다. 매해 12월 올라가는 <봄 작가, 겨울 무대>는 바로 그해 신춘문예당선작 작가들의 희곡 단편 발표 기회의 무대이다. 아르코예술극장 ‘봄 작가’ 프로젝트는 자연의 4계절처럼 서로 맞물리고, 이끌고, 기대고, 성장하면서 연극계의 생태를 활성화 시킬 것이다.


글 | 강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