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09 가슴네트워크 축제 1- 2000년대의 목소리 ‘여성 싱어송라이터’

2009. 12. 30. 16:51Review

 

2009 가슴네트워크 축제 1
2000년대의 목소리 ‘여성 싱어송라이터’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하는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모든 행위는 취향의 반영이다. 그리고 취향은 곧 감수성이다. 그러한 이유로 ‘기획’이라는 이름의 모든 행위는 기획자가 가진 취향의 반영이며 감수성의 반영이다. 글을 쓰는 것도, 음악을 만드는 것도,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결국에는 자기 취향에 부합하는(혹은 합당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종종 정치적, 도덕적 올바름의 귀신이 쓰여 취향과 무관한 선택을 하긴 하지만 자신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언제나 그렇다. 하다못해 삶의 철학도 종종 바뀌는데 취향과 감수성은 여러 상황에 기인하여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행위는 한 사람에게도 언제나 100%의 지지를 받을 수는(혹은 지지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가슴네트워크에서 해온 일들이 그러했다. 10년 동안 그들이 해온 일들이 그토록 많을지언정 언제나 100%의 진심을 담은 지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펼쳐놓은 마당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하는 묘한 경계심이 존재했다.



이번 공연은 11월 18일부터 시작된 2009 가슴네트워크의 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미래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축제는 이틀간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 프로그램의 첫 날인 4일에는 2000년대의 목소리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름으로 총 4팀이 공연하였는데 임주연, 강허달림, 황보령=Smacksoft, 장필순까지 언더와 오버를 넘어서며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라인업이었다. 장르도 포크, 블루스, 락까지 다양하다.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하는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벗어서 살아남거나 잘 불러서 살아남거나, 혹은 이도저도 아니어서 아예 기억에 남지 않거나. 아주 극단적인 예이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의 여성 가수들을 나열한 후 배열해보면 얼추 어느 카테고리든 배치가 가능할 것이다. 이 날 공연자들은 명백히 두 번째다. 공간이 좋았고, 분위기가 좋았고, 소리가 좋았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음악이 좋았다. 1시간이 지연되어 끝난 공연시간이 내 몸을 힘들게 하였을지언정 공연은 진심으로 좋았다.



임주연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문을 연 임주연은 공연자 중 가장 막내로 1집의 몇 곡과 신곡 몇 곡을 셋 리스트로 진행됐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뮤지션 임주연으로 무대에 선 것보다는 언니네 이발관의 키보드 세션으로 섰던 무대를 훨씬 더 많이 봤다. 물론 임주연으로 선 무대가 훨씬 많았을 테고 그 때문인지 무대는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임주연은 샤방한 미소와 여린 듯 청초한 목소리로, 수줍은 얼굴로 공간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했다. 친구들로 구성된 연주자들은 임주연이 그러한 것처럼 무표정하지만 수줍게, 어색하지만 낯설지 않게 연주했다. 끊어진 기타줄 덕에 기타와 키보드 연주로 이루어졌을 마지막 곡은 임주연의 키보드만으로 연주되었지만 공연 내내 관객들은 미소를 띠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강허달림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두 번째로 공연한 강허달림은 작년 오늘의 뮤직 ‘이 주의 국내앨범’에 선정되어 첫 번째 앨범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50년을 살아 세월의 흔적이 100겹으로 쌓인 것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라이브로 듣는 것은 기이하고 경탄할만한 경험이었다. 임주연의 무대가 날이 좋은 날 잔디에 누워 듣기 좋은 음악이라면 강허달림의 노래든 그곳이 어디든 공간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덕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뒤에서 관람하던 누군가의 과도하게 큰 박수소리에 노래 소리가 안 들리는 순간도 있었지만 진득하게 공간을 꽉 채우며 울리는 악기와 목소리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황보령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세 번째 무대는 황보령=Smacksoft의 무대였다. 이름에 비해 아는 정보가 별로 없었고 앨범이 아닌 공연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1998년 첫 앨범을 발매한 후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가 발매한 앨범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다. 발매하는 앨범마다 화제가 되었고 한국어와 영어의 중간쯤 되는 독특한 발음과 음색은 황보령=Smacksoft의 공연을 보러 온 마니아들을 진심으로 미치게 만들었다. 공연 중에 공연을 보러 오는 팬들과는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논다는 것으로 분위기를 잡았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공연장 곳곳에서 그 순간을,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물론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제 불혹을 앞둔 그녀가 여전히 저리도 미쳐서,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 무대 위의 에너지에 열광했고 앵콜곡도 한 곡 받은 후 무대에서 내려갔다.



장필순 (사진출처: 가슴네트워크)


대미를 장식한 장필순은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서울의 어느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그녀는 이날 시인과 촌장의 함춘호를 비롯하여 김정렬, 신석철, 박용준 등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와 함께 했다. 여전히 마른 몸에 세월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으며 목소리로 예전 그 노래들을 불렀다. 그녀는 공연 내내 연주자들과 눈 맞추며 호흡을 가다듬었으며 관객들과 눈 맞추며 노래로 이야기했다. 장필순의 공연은 그간의 모든 시름을 덜어주는 치유 같았다. 소리 하나로, 음악 하나로 그곳을 가득 채운 200여명의 관객들 하나하나의 두려움을, 외로움을, 피곤함을 치유해주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 공연은 10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아마도 팀당 30분, 많으면 40분 정도로 배정되었을 공연은 분위기 덕에 1시간 정도가 지연되어 끝났다. 장필순의 말처럼 공연자의 부족한 부분은 관객들이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만큼 공연자와 관객들의 호흡마저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4차원의 공간에 온 듯 평화롭다가도 심장이 콩닥거리게 만들고, 미치게 만들었다가도 그 모든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치유해주었다.


음반은 개인의 감성이 뮤지션의 감성과 독립된 공간에서 음미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공연은 당일의 분위기와 뮤지션, 관객의 교감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가슴네트워크 축제의 다른 프로그램들은 어떤 분위기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했는지 보지 못해 아쉽지만 공연만큼은 아름다웠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취향의 일부를 알게 해 주었고 3시간에 이르는 시간과 공간, 사람과 분위기에 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실력이 좋은 뮤지션들을 처음 접하는 순간의 환희와 희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유쾌한 감정을 배가시켰다. 음악으로 사람을 치유하고, 그리하여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에 조금씩 늘어나는 것, 이것이 이번 가슴네트워크 공연의 중요한 성과가 아니었을까?



가슴네트워크 | www.gaseum.co.kr

가슴네트워크는 ‘문화기획그룹’이면서 ‘문화예술전문매체’이다. 1999년에 창간된 대중음악비평웹진 ‘가슴’이 모체이고, 현재는 문화예술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현재 가슴네트워크에서는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축제, 공연, 전시, 매체, 출판, 아카이브, 아카데미 등에 대한 기획, 연구, 정책, 투자 작업을 통한 새롭고 대안적인 가능성을 한국문화예술계에 제시하려고 하며. 또한 매체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2007년 8월에 경향신문에서 시작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2008년 3월에 네이버의 네이버뮤직에서 시작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2008년 7월에 경향신문에서 시작한 ‘한국의 인디레이블’ 등이 그것이다. 2009년 11월 가슴네트워크 10주년이고, 이를 기념하여 공연, 전시, 세미나, 출판, 출반 프로그램으로 등으로 구성된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를 진행하였다. 앞으로 가슴네트워크축제는 ‘발굴, 네트워크 & 아카이브’를 모토로 연례 축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글 | 반전 indief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