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 : 들 가운데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 : 들 가운데서>

  • 인하연
  • 조회수 626 / 2007.10.25

  안국역 1번 출구. ‘오른쪽’을 몇 번 되뇌며 차분히 거리를 걷다보면 지금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상과 적당히 차단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질리거나 지치기 않을 만큼 걷고 나면, 사람 냄새가 흐릿한 집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은 기억만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빈 집. 그곳에서 이제 찾을 수 없는 기억 속의 도시와 그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예술의 기억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다시, 대추리를 기억하며


  직접 겪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저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근대사는 참 아팠다. 그토록 처절했던 침략과 전쟁의 역사 한가운데서 삶의 터전을 여러 차례 빼앗겼던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사람들은 아주 당연한 권리, 즉 자신의 공간에서 그저 살기 위해 계속 투쟁해야 했다. 그들과 역사의 마지막 투쟁은 2003년부터 4년간, 미군기지의 확장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의 공간에 들어선 폭력에 맞선 것이었다고 한다.

  당연하다는 듯 대추리에는 위험과 폭력, 파괴와 상실이 또 한 번 가득해졌지만 그 공간은 이제 외로운 싸움터가 아니었다. 정말 많은 예술가들이 대추리를 직접 찾아가서 마을을 가득 채운 예술과 저항 의지를 무기로 함께 싸웠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긴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추리는 이제 사라져버렸지만, <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 : 들 가운데서>를 통해 다시 우리 앞에 놓여졌다.



들 가운데서 바라보는 풍경들


  빈 집의 정원에 들어선 순간 보이는 조각가 고(故) 구본주 씨의 작품 <갑오농민전쟁>부터 시작해서, 견고하고 강렬하지만 투쟁의 기억처럼 군데군데 다친 흔적들이 남아 있는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서는 사람들과 함께 대추리를 이루던 물건들, 그들과 그들의 투쟁을 담은 사진, 영상, 그림 등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대추리 사람들의 따뜻한 얼굴이 담긴 모판그림과 걸개그림이 그들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한 흰 길 위에 놓여져 있기도 했고, 사진 속 낡은 담벼락에는 평화에 대한 절절한 기원을 담은 시와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불어 굳이 흔하게 부르는 ‘예술’과 약간 다르더라도 투박한 천 위에 글로 쓰인 여러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로 남았으며 대추리 사람들과 대추리를 풍성하게 만든 예술에 대한 기록도 이제 하나의 역사로 자리 잡고 있는 듯 했다.

  철저한 역사적 현장, 부당한 폭력과 투쟁의 흔적, 그리고 ‘지키기 위해’ 펼쳐진 예술의 현장까지 담고 있는 이 전시는 그 자체가 예술이면서 예술에 대한 기록이고 삶과 역사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분명 빈 집 안과 밖이 여러 전시 공간과 다양한 예술 장르로 구분되어 있지만, 굳이 이를 따로 떼어내서 언급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 삶이나 역사를 한 부분을 따로 떼어낼 수 없듯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는 소중한 일부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나누고 분별적인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전시가 제시하는 다양함 속에 하나로 모아진 느낌, 즉 간절함의 정서라고 봤다. 나약하지 않은 슬픔, 비록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기억, 비극적인 현실 앞에 더욱 깊게 각인된 희망들은 계속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해


  이상적인 결론을 사랑했던 참 많은 사람들은 예술을 우리 현실 어디쯤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긴 시간 토론을 벌였었다. 예술과 현실은 벽을 두고 서야 하는 존재일까, 아니면 서로 엉켜서 함께 길을 가야 하는 존재일까. 물론 이렇게 뭐든지 다양하게 열린 시대에 참여와 순수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더 이상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이 전시를 보면서 예술이 얼마나 현실 그 자체와 가까이 있고 또 얼마나 가까이 가서 닿을 수 있는지 느끼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예술이 현실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자기만의 세계만을 구축해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얼마나 크고 진실한 감동을 맺히게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장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전시의 모든 것들이 단순히 예술의 생경한 일부라는 생각이 아니라, 예술이라면 이렇게 치열하게 삶과 역사의 중심까지 파고들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내 의지로 잡을 수 없어 흘려보내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삶 자체부터가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이미 가버린 어느 소중한 한 순간을 잠시 혹은 영원히 곁에 불러들이는 많지 않은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이 아닐까 싶었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도 예술이지만, 이렇게 있는 것을 사라지지 않게 담아내는 것도 예술이라서 우리에게 기적처럼 소중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역사적인 폭력으로부터 인간과 삶의 공간을 지키려던 간절함과 이를 포함한 예술의 간절함을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의 현재성과 함께 어째서 인간이 만드는 예술이 아름다운지, 아름다워야 하는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충설명

* 공연정보
제목 : 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 - 들 가운데서
기간 : 2007년 10월 19일(금)~11월 4일(일)
장소 : 송원아트센터
문의 : 02)323-1968
찾아가기 :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아름다운 가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 뒤, 5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의 우측에 있다.

필자소개

이것저것 공부하는 중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