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간-수궁광녀전> 다원적 자기고백 10년, 예술적 성찰 아쉬움

<토끼의 간-수궁광녀전> 다원적 자기고백 10년, 예술적 성찰 아쉬움
  • 윤지현
  • 조회수 623 / 2007.10.23

가관 10주년, 토끼의 간-수궁광녀전


 

다원적 자기고백 10년

예술적 성찰 아쉬움


창작 춤 집단 ‘가관’이라--- 참으로 가당찮게 당돌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 가당찮은 이름에 불편한 심경이 아니라 왠지 은근한 동질성에의 기대를 품게 되는 건 왜일까? 무덤덤한 무용공연계와 웬만한 아우성엔 좀체 반응 없이 건재해온 기성질서에 작은 파문과 큰 소동을 야기할 돌팔매질의 의지, 바로 불온한(?) 기도를 감지하는 탓이다.

 

 ‘가관’이 10주년 기념공연 ‘수궁광녀전-토끼의 간’을 무대에 올렸다. 수궁광녀전에서 이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추고 싶은 춤을 추며 살겠다는 젊은 여성들, 바로 자신들의 삶을 표현했다. 창작 춤의 지향을 향해 지난하게 달려왔을 가관의 10주년 기념공연 주제가 춤을 추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내적 성찰과 자기고백이라는 지점에 가닿았음은 한국사회에서 주체를 지닌 불화하는 여성으로 살아내기에 대한 동시대적 공감을 크게 본 때문일 것이다.


    토끼의 간 이야기에 오늘날 이 땅 여성의 삶을 엮어냈다. 간이 배밖에 나온 춤추는 여성들과 그 간을 노리고 명예와 사랑, 돈, 결혼의 미끼로 여성을 유인하려는 용왕의 신하인 자라를 등장시켰다. 우리 사회의 명예와 사랑, 돈, 결혼은 여성에게 다른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고 있음을 생생하던 간이 시든 간으로 변한다는 역설로 표현한다.

 

 

    수궁광녀전은 춤과 비디오 영상, 코믹한 마임연기, 클래식과 대중가요, 심지어 장구장단까지 한곳에 모아 주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려 한 다원적 작업이다. 특히 작업의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비디오 영상에는 작업에 참여한 무용수들과 일반인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인용하고 드라마와 뉴스 보도 형식으로 엮은 용궁의 장면이 등장한다. 춤으로 공연예술계에 입문한 가관 성원들의 작업은 초기부터 무용공연의 전통적인 형식에 작업을 가두지 않았다. 발화하고자 하는 주제전달에 좀 더 효과적인 형식과 장르를 찾기 위해 표현양식이 몸 움직임에 한정된 무용공연의 경계를 넘어 타 장르와의 결합으로 지평을 확대해왔다. 비디오 영상과 마임, 연기 등 춤 밖으로 행군하는 가관의 작업은 그래서 다원적이다. 장르의 고유성을 고수하기엔 가관이 하려는 말은 늘 긴박하게 넘쳐난 듯하다.


     용왕의 병에 대한 용궁 뉴스 속보가 끝난 뒤 첫 무대에 등장한 간으로 설정된 풍선을 머리위에 띄운 여자들의 춤은 참 따스했다. 풍선처럼 밝고 가벼워 보이는 몸짓과 행복한 웃음은 순수한 시절의 환영을 떠올렸다. 정형화된 기교와 맞춤된 안무의 냄새가 나지 않아 기분 같아선 누구라도 무대 속으로 기꺼이 끼어들어도 될 듯했다.

 

물론 극장공연의 맥락에 익숙한 관객들은 아무도 그런 속내를 내비치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가관은 보여주는 춤과 참여하는 춤의 접점에 대해, 공연자와 관객과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들은 그간 카페와 거리, 광장, 극장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무대를 찾아 관객 가까이 다가가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려 해왔다. 공연 장소를 극장에 한정치 않고 다양한 무대를 실험하는 일은 관객을 새로이 개발함과 동시에 서로의 관계를 새로이 자리매김하는 작업과 상당히 넓게 접점을 이룬다.

 

    ‘가관’은 한국 무용계에서 다원예술성을 선도적으로 주도하는 무용예술인 단체라 할 것이다. 장르의 다양한 조합을 통한 복합공연 장르의 실험도 그렇고, 관객과 소통하려 변화하는 무대실험도 그렇고, 자신의 문제를 비롯한 이 땅 여성의 문제에 대해 직접 발화하려는 예술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소명도 그렇다. 아름다운 노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아쉽다. 극장에 올려진 작업은 실험의 참신성과 의도의 순수성, 소통 노력의 진지함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불 켜진 무대가 어둠 속에 앉은 관객에게 실제로 소통과 감흥을 주었느냐는 점은 또 다른 문제이자 극장에서는 제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연습실의 작업이거나 의기투합한 동지들이 결성한 클럽 내부에서만 유통될 일이지 극장에 설 일은 아니다. 이제 극장은 시장 가운데 있고, 시장은 치열한 경쟁으로 존립을 다투는 전문성이 횡행하는 곳이다. 언제까지나 호의적인 관객의 조건 없는 지지와 자족적인 의도에 안주할 수 없다.

   주제 전달 방식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보다 진지한 숙고의 여지를 줬는지, 3D, 4D 영상에 수시로 노출되어 앞서가는 관객의 미디어 취향에 공연에 제시된 비디오 영상이 진정 부합했는지, 매직으로 풍선 위에 그려낸 간을 비롯한 여러 소품들은 작업의 예술적, 미학적 승화에 기여하는지, 춤과 마임에 표정 연기까지 다양한 표현 장르와 형식을 아울러야 했던 출연자들은 극장 무대에 설만큼 충분히 숙련되고 진지했었는지---아픈 평가가 남아있는 듯하다.  

보충설명

* 토끼의 간-수궁광녀전
2007. 9. 20-22 LIG 아트홀
* 카페 http://cafe.naver.com/madrabbits
* 창작춤집단 가관은 1997년에 결성, 무용계의 굳어진 형식과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작을 지향하는 인디댄스그룹.

필자소개

필자. 윤지현_ 멀리 타국에서 문화이론을 공부한 후 현재 무용학 박사과정 중에 있음. 다원예술, 비보이에 관심이 많으며 계간 <춤지성> 준동인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