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Line Butterfly - 1. Nine Days Or A Million


도시의 소음 속에서 빛을 발하는 앨범,
3호선 버터플라이 EP 『Nine Days Or A Million』


 나 역시 2002년 방영된 MBC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마니아 중의 하나였다. 당시 휴학생이었던 나는 비디오와 만화책을 대여해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덕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5평 남짓의 대여점에서 보내야 했다. 그렇다보니 나의 일상생활은 그 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전부였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그 시기도 마찬가지였는데 45도 각도 위에 설치되어 있던 TV로 또 다른 세상, ‘네 멋 세상’을 만났고 열렬히 시청했다. 복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순간에는 비디오 가게 계산대 아래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까지 했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드라마 덕에 3호선 버터플라이를 알게 되었다. 전경이 몸담았던 밴드에서 부르던 노래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곡이었다던가 배경으로 깔리던 노래들도 3호선의 곡이었다던가... 그래서 내 기억 속의 3호선 버터플라이는 언제나 <네 멋대로 해라>와 함께였다.

 알다시피 3호선 버터플라이가 대중에 비교적 알려진 것도 그 드라마 덕이다. 2002년 2집 앨범을 발매했던 이들은 드라마 OST 발매 이후, 2004년 3집 앨범을 발매하고 2009년까지 단 한 장의 앨범도 발매하지 않았다. 3호선 버터플라이로서의 공백인 5년의 세월 동안 성기완(기타, 보컬), 남상아(보컬, 기타), 김남윤(베이스), 손경호(드럼)는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함께 무대에 오른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5년만인 2009년 11월, 5곡이 담긴 EP앨범 『Nine Days Or A Million』을 발매했다. 2000년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활동 12년차에 접어들며 인디 씬에 숱한 의미를 남겨 왔던 이들의 EP앨범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새로울 수 있고, 그리하여 시간과 상관없이 건재할 수 있음의 방증이 아닐까 싶다. 예전 음악보다는 말랑해졌지만 그들의 매력은 역시나 고스란히 살아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기다렸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앨범은 안타까움과 희열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5년이나 기다린 앨범에 오직 5곡만이 실려 있다는 안타까움에 한 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을수록 착착 감기는 음악이 주는 희열에 한 표. 말했듯 수록된 5곡의 트랙들은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청자의 즐거움을 십분 만족시켜준다. 기존에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들처럼 사이키델릭하고 몽환적인 면들은 버리지 않았으면서도 기존 앨범보다는 더 대중적이고 말랑하다. 그렇다보니 5곡 모두가 귀에 착착 감겨든다. 몇몇 밴드들의 경우, 앨범이 한 장 한 장 늘어날 때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거나 개성(또는 매력)을 잃어간다는 평가를 받기 마련인데 3호선 버터플라이는 경계선의 줄타기를 교묘하게도 잘 해가는 듯 보인다.

 
경쾌한 기타 리프와 박수 소리로 시작되는 1번 트랙 ‘티티카카’는 매끈하게 딱 떨어지는 디스코 리듬 덕에 1번 트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다른 트랙의 곡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들이 보이지만 무엇보다 앨범에 집중, 주목하게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트랙이다. 단순 반복되는 리듬과 노랫말(심지어 가사로 공식 표기되어 있는 ㅎ, ㅌ은 진짜로 그 발음대로 절묘하게 들린다!)에 서정적인 멜로디가 가미되어 있는 2번 트랙 ‘무언가 나의 곁에’는 아이돌 가수의 후크 송 보다 더 중독성 있으며, 3번 트랙이자 이번 앨범의 메인타이틀인 ‘깊은 밤 안개 속’은 멜로디의 서정성과 보컬의 야성이 절묘하게 얽혀 3호선 버터플라이를 더욱 그들답게 한다. 4번 트랙의 ‘nine days'는 남상아의 보컬로서 매력이 가장 발현된 곡이며,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멜로디로 곡의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표현한 5번째 곡 ’왠지, 여기, 바다‘는 아티스트로서의 그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시인이기도 한 성기완이나 보컬 남상아가 쓴 노랫말 역시 언어유희의 측면에서도 즐거움을 주지만 무엇보다 이번 앨범의 백미는 그 모든 것들이 결합된 음악 자체이다.

 
5곡은 하나의 주제로 모여 있기 보다는 정서적 측면에서 닮은 구석이 많은 듯하다. 마치 하나의 팀을 구성하고 있는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 각자의 존재감이 뚜렷한 것처럼 EP에 수록된 곡들 역시 존재감이 뚜렷하다. 메인타이틀이라고 더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메인타이틀이 아니라고 덜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20여분의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는 듯 아쉽고 몇 번째 트랙인지 쉽게 인지하게 된다. 이번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반은 노랫말을 분석하고 음악적 성취를 평하여 훌륭한 앨범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무엇보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 귀가 즐겁다.

 
“이번 EP는 4집 앨범을 전망할 수 있는 5곡의 노래들로 채워졌다”라는 말이 곧 “머지않아 4집 앨범이 발매됩니다.”로 보이는 이 두근두근한 순간, 4집 앨범은 아니지만 이들의 1, 2, 3집이 리마스터링 되어 발매되었다. 가지지 못한 자는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심지어 음원서비스도 하지 않으셨다니!) 이들에게는 예전 앨범의 리마스터링 발매 소식이 위스키 한 잔이 주는 위로 정도는 되어 줄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굉장히 활발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3호선 버터플라이로 무대에 다시 선 그들에게 던지는 평단과 팬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자, 3호선 버터플라이에 애정 있는 자, 듣고 싶은 것 이상을 들을지니, 이제 다 됐고!
 
 이제 그냥 듣자!



글 _ 반전 indiefeel

한창 이라크 파병 문제로 반전운동을 하던 때 지은 필명이자 닉네임. '전쟁을 반대한다'와 '상황을 반전시킨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소통의 매개로서 글을 생각하고 활동의 매개로서 정리를 생각한다. 그리고 사는 내내 비주류의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하루하루 다짐한다. 
  1. 자전거(자전거 상표 티티카카)의 첫패달을 밟을 때 마다 항상 들었던 곡, 티티카카. 작년 겨울내내 내 미니홈피를 장식했던 곡, Nine days. 지금은 없지만서도 나를 항상 지지해주던 그 사람이 좋아하던 곡 깊은 밤, 안개 속. 같이 만나 이 앨범의 순위를 매길 때 5곡중 2위와 3위를 항상 싸우던 곡 무언가 나의 곁에. 굳이 따지지 않고서도 좋은 곡, 왠지 여기, 바다.
    방안을 채우고 있는 자전거, 다시 겨울이 오는 냄새와 눈 앞에 사람이 그이가 담겨져있는 액자 세개, 앨범. 아마 평생을 갈 것같은 잔상과 실제의 것들. 가슴이 무언가 모르게 이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