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렉팅 스튜디오의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

예술창작집단 디렉팅스튜디오의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


조금 떨리는 자기고백서

글 ㅣ 윤나리 (nari.peace@gmail.com)


제목이 특이하다. 어른이 '되는(to be)' 시기가 아니라 어른으로 '분류되는(classified)' 시기다. 어렸을
때 불량과자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에 나온 꼬꼬마가 부른 "어른들은 몰라요~"하는 노래도 생각난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노랫말처럼 어른들이 모르는 게 있을지언정, 결코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자신감에 차있
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서 어른이 되어 내 작은 발이 들어가고도 남을 또각
또각 소리 나는 구두를 신고 싶었고, 엄마 서랍에서 몰래 꺼낸 새빨간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싶었다.
소매가 한 뼘은 더 길지만 코발트색깔의 장롱 속에 걸린 엄마 정장을 입고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러고
학교를 가는 길엔 슈트차림에 멋진 넥타이를 한 나처럼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수줍은 인사도 건
네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현재
나는 20대와 30대의 중간에 선, 따지고 들자면 어른 축에 끼기 애매한 위치다. 하지만 어른처럼 행
동한다. 이미 세상을 아는,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는 기호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나를 둘러싼 조그만 방 값을 계산할 땐
끝나지 않을 한숨을 길게 내쉰 뒤 과감하게 계좌이체로 내 통장 잔액의 자릿수를 가차 없이 깎는다. 버
스나 지하철을 탈 때 어른 요금을 내고, 별별 천지 물고기들이 있는 대형수족관에 갈 때도 어른요금으로 입장한다. 맞다. 나 연애도 한다. 내가 어렸을 적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연인의 모습처럼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연애를 한다. 물론, 물-론 한순간도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날짜의 어느 날,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라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normal한 인간 종류인, 누군가 성의 없이 펜으로 휘날려 쓴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앞이 까마득해 보이는 긴 줄 끝에 매달리듯 서 있다. 그런 내 뒤로는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질 낭떠러지 끝 발치에 서 있는 느낌이다.

내가 맨 처음 어른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땐 그것은 '보여지는' 것이었다. 큰 키, 정장차림의 모습. 조금은 점잖은- 그리고 고상한 말투, 비지니스 가방을 들고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회사에 가는 모
습, 나 같은 아이들에게 밥을 사주는, 골드빛깔 크레딧 카드로 여유 있는 미소로 계산하고 있는 모습.
입술엔 연분홍색 립글로즈를 바르고, 하늘색 와이셔츠의 깃을 여미는 휴대전화로 끊임없이 업무전화
를 받고 그에 상냥하게 답변하는, 분주한 도시속의 도외적인 여성. 나의 사고는 그런 어른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어른이 되는 것도 이 많은 모습들 중 과반수의 모습을 재현해낼 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디렉팅 스튜디오의 창작물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에 등장한 많은 어른들은 그들의 부유하는 존재에 갈등하고, 불안해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대자연에 부딪힌 문명인의 모습처럼 그것은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되기도 한다. 그들은 너무 익숙해져버렸지만 여전히 낯선 면접 장소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지만, 자신이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간밤에 종점까지 와버린 버스에서 내려 쭈빗쭈빗하게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뜻하지 않던 만남을 겪기도 하고, 세상이 모두 다 분홍색 코끼리로 변해버린 눈앞의 것들에게 사랑의 고백을 외치기도 한다. 잔혹해지는 이별 앞에 작아지기는 마찬가지고, 장례식장에서 만나 세상한탄하며 스스로에게 건배하는 술 한 잔에 위로받는다.

그것은 애석하게도 아이였던 내가 생각했던 어른과는 무척이나 괴리가 큰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
는 '이런 어른'들에게 더 친밀한 감정을 느낀다. 아이였던 내게 어른은, 한낮에 떠있는 햇볕을 가리고 내 앞에 넓다란 그늘을 만들만큼 큰 존재였다. 그들은 막강했고, 유연했으며 늘 승자였다. 그들은 붉은
색의 벨벳망또를 두른 해결사 같기도 했고,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가져다주는 마법사이기
도 했다. 그것들은 내가 되고 싶은, 닮고 싶은 그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때때
로 드러낸 한숨과 눈물 같은 것들, 나약함과 두려움은 내게 보이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난 그것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어른요금을 내고 어른들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봤을 때,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처음으로 편의점
에서 맥주를 사 마셨다. 처음 겪게 되는 어른의 특권들은 내게 신선하지 않았다. 영화는 사람을 잔인하
게 죽이고도 자신의 돈 가방만 가지고 피비린내 나는 사각지대를 벗어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것은 어른의 순리로 쉽게 이해되는 장면이었으며, 몇몇의 어른은 그 장면의 스펙터클에 환호했다. 그들
의 복수는 역시 어른의 것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안전벨트도 하지 않고 위험천만한 운전을 해서 돌아온 주인공은 여자의 몸을 거칠게 더듬었으며 여자는 내가 아이였을 적 보지 못한 소리와 몸짓으로 대응했
다. 내 주위 어른들은 숨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조용히 음료가 꽂힌 곳으로 한 손을 뻗어 그들의 마
른 목을 적셨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들춰보고 싶지 않았던 어른의 모습은 진짜 어른이 되었을 때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행동을 요구받게 된다. 학교 다닐 적 회초리를 든 선생님의 요구도 아닌, 성적표를 쥔 부
끄러운 손대신 부끄러운 노력을 꾸중하시던 부모님의 요구도 아니었다. 얼떨결에 둘러본 내 모습은 정
처 없이 늘어선 긴 줄의 끝자락이었고, 저 멀리 보이는 팻말에는 낡은 글씨로 '어른'이란 두 글자가 적
혀있었다. 나는 긴 줄에 서있는, 약간은 불안하거나  패기 넘치는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해야 했고, 실
수는 책임감이란 명목으로 나 홀로 처리해야하는 것 일쑤였다. 도움을 받는 것은 그 줄에 서있을 자격
을 박탈하는 것 같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마치 그 줄에서 한 뼘정도는 앞설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것 같
았다.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의 어른은 말한다. 모든 관계의 형성은 '인사'가 아니겠냐고.
그렇다면 나는 아직 ‘나의 어른’을 만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어른에게 인사를 건넨 적이 없다. 생각 같아선 익명의 아무개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되겠냐고 독촉 메일을 보내고 싶지만, 무력하게도 '나의 어른'은 내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내게 찾아와 떠날 생각을 안한다. 혹시 '나의 어른'은 내가 건넬 다정한 인사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님 지금의 내 예상대로 회초리 없이, 꾸중 없이 내게 두 배 세 배의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일까.

진짜 어른이 된 어른들은 말한다. 세상의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무
의미하다고. 그리고 그 순간 어느 덧 나의 '어른'이라는 것과 현실속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
었다고. 그런 삶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겠다고.
그들은 화려하지 않게, 그들의 진심을 담고 조금은
때 묻은 손을 건네 '그들의 어른'과 인사를 한다. 이제야 당신을 마주볼 수 있게 되어 조금은 들뜬 목소
리로, 끝이 보이지 않는 줄에서 한참 앞서게 됐지만 여전히 그들 뒤를 지키고 있을 낭떠러지를 생각하
며 조금은 불안한 목소리로.

그들이 만난 ‘어른’과 나눈 인사는 본연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해온 어른의 모
습은 내가 어른이 되고나면 한없이 작아져있다. 컬러였던 화면도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낡게 변해있고,
주인공들의 목소리는 어째 핀트가 맞지 않다. 그 오래된 영화를 수백 번씩 반복해서 본 모습은 이제 없
다. 나는 과감하게 나의 어른과 눈을 마주한다. 그는 나보다 훨씬 큰 키에 훨씬 큰 몸짓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울처럼 현실속의 나, 본연의 나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상상속의 영화를 버리
고 진정한 내 자신을 찾았다는 고백은 생각보다 많이 떨린다. 허나 한낮의 햇볕대신 그늘을 만들어줄
순 없을지라도, 마법사의 현란한 손짓으로 무지개색의 선물을 건네진 못하더라도 나의 수줍은 자기고
백서는 진정한 나를 찾았기에 의미 있을 것이다. 나를 감춰줄 그늘은 아니지만 뜨거운 햇볕아래 당당히 두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있게 한다. 내 발 아래로 펼쳐진 그림자는 더 이상 환상이 아닌 현실속의 나를 살아가게 해줄 것이다.




인터뷰 (윤혜진 無我 작/연출)


Q :  마치 ‘자기고백서’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 됨을 아니, 어른으로 분류됨을 자각하는 것이 현실 속
에 위치한 본연의, 본질적인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라고나 할까.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연출자가 생각
하는 어른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 우선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그럴 때는 없는 것 같다. 어른이라는 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책임지는 게 아니라 사
회적인 기준으로 어른으로 분류되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일반인 인터뷰를 따곤 했는데,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난 어른이 아니다”라고 얘기했
다.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인터뷰했고, 어른이라 불릴법한 측근도 그랬다. “난 아직도 어른이
아닌데 어른이란 얘기를 하다니” 누구에게나 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른이라고 그러면 자기부정을 할 것이
다. 작품에서 마지막 독백 중 본인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게 어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책임을 가지는 행위자체를 어른스럽다고 여겼다. 작품
자체는 모종의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통용적으로 봤을 때 하나를 꼬집어서 얘기하자면 책
임. 하지만 난 여전히 아직도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웃음)



Q :  스크린을 도입한 기법이 꽤 신선해보였다. 영화가 보여주는 스크린이 시간성이라면, 연극은 공간성
에 기반을 두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서 기대한 의도나 효과는 어떤 것인가?

A : 디렉팅스튜디오에는 연출가 7명이 있는데, 영화하는 친구들과 연극하는 친구들이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년 이맘때 발족해서 1년 정도 진행했는데 개개인으로 작업을 할 때도 있지만, 서로 협업이 가능하
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방법론적으론 다르지만,
무언가를 합쳐서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

연극에 스크린을 도입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구상들은 환상적이었지만, 제작비가 부족했고 여러 문제들이
생기면서 합의점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활용하는 방법들을 위해 최선의 것
으로 선택했다. 이런 작업들은 다른 팀들도 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방법으로 다양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
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상을 사용한 이유들은 시간성과 공간성의 참여도 있겠지만, 무대는 보여지는 것
들이 100프로 노출이 된다. 또 클로즈업이 안 된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영화적인 기법에서는 클로즈업
을 쓸 수 있다. 심리적인 걸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많이 활용하고 싶었다. 실은 이번 연
극 초반에 영상이 몇 개가 못나왔다. 이 부분들은 무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기도 했다. 극이
끌고가는 것도 있기 때문에, 영상 실수는 관객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극 초반 면접장면에서 클로즈업된 거만한 면접관의 영상이 있는데 부분 클로즈업으로 3명의 인터뷰가 모
두 다른 포즈에서 나온 게 있다. 극의 장면과 영상의 장면을 잘 배합해서 효과적인 연출을 하고 싶었다.
또 영상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도구나 소품이 되게 하고 싶지 않고, 영상과의 밸런스에 힘들기
도 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게 되었다.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리얼 다큐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일반인
들처럼 굉장히 내츄럴한 연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컨셉들로 무대언어와 영상언어의 갭을 줄이고 싶었
다.



Q :  굉장히 색다른 연극이라 참 흥미롭게 봤다.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하여 듣고 싶다.

A : 작년에 <목적어를 잃어버린 오후>라는 작품을 했었다.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는 이 작품의 연장
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같은 경우 제 얘기를 했다. 보통 관념적이거나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하지만 제 얘기를 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공연을 했다. 굉장히 모호하고 몽상적인
이야기였다. 그 공연에서 좀 더 구체화되면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게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다. 다
음 작품은 이 소재를 한 번 더 이야기할 수도 있고, 한 걸음 더 걸어 나가는 연출을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1년에 3작품 이상하는 게 목표다. 3작품 이상을 하자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는 것을 구
체화시켜 대본작업에 들어갈 것 같다. 5월에 워크숍을 한다면, 7-8월쯤 공연하게 될 것이다. 본인이 직접
글을 쓰고 연출하는 집단이라 준비 되는대로- 프린지나, 혹은 그 외의 여러 가지 경로로 하지 않을까 싶
다.


- CJ 아지트 황당발칙 cineplay ④ -  
디렉팅 스튜디오의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

디렉팅 스튜디오의 젊은 연출가들이 합심하여 개발한 작품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는 영화와 연극이라는 장르간의 경계를 허물 뿐 아니라 독립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부활시키려는 작품이다.

88만 세대로 불리는 20, 혹은 30.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는 언제인가? 어른과 어린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는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

<어른으로 분류되는 시기>는 리얼 다큐 형식을 이용한 7개 옴니버스 작품을 통해 그것을 알아보고자 한다.


공연일시  2010. 3. 11 (목) - 3. 13 (토)
공연장소  CJ AZ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