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YOU DON'T UNDERSTAND> 타인들의 역사


YOU DON'T UNDERSTAND
타인들의 역사



 

조원석






 


이 연극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지된 배우들의 모습과 섬세한 연기 속에서 관객은 이야기를 상상해야 한다. 마치 풍속화의 인물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하듯이.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국문과 교수인 면에게 의연은 옛 연인의 딸이자 형의 딸인 조카이다. 근혜는 면의 제자이면서 연인이다. 면은 의연을 옛 연인의 딸로 대할 때도 있고, 조카로 대할 때도 있다. 이 구분은 주관적이어서 관객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어쩌면 연인의 딸과 조카의 구분이 불가능한 상태로 면은 의연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면에게 의연은 연인의 딸이나 조카보다 더 가까운 관계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근혜를 대하는 면의 태도 역시 제자와 연인이라는 관계를 굳이 구분하기 보다는 제자이면서 연인으로서 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정쩡한 관계일 수 있지만 제자보다도 연인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일 수 있다.

 

근혜에게 의연은 지금 사랑하고 있는 면의 옛 연인의 딸이면서도 현재의 연인인 면의 조카다. 옛 연인의 딸인 의연은 근혜에게 면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아픔이지만 면의 조카인 의연은 가까워져야만 하는 관계다.


의연에게 면은 어머니의 연인이며서 아버지의 동생이다. 근혜는 작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사람이면서 면의 연인으로 옛 연인이었던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인물이다.

 

지금껏 연극을 보면서 이렇게 복잡한 관계의 인물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 복잡함을 복잡함으로 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 인물들은 한마디로 매우 가까운 사이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알 수 없지만 매우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너무 가깝기 때문일까? 이 복잡함을 배우들은 아주 무심하게 연기한다. 내면의 감정들을 드러내는 연기가 아니라 감정을 감추는 연기다. 감추지만 아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있다. 마치 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볼이 빨개지는 것 같은 연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빨개진 볼을 연출가인 송선호씨는 ‘진실’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눈이 들려주는 이야기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눈은 느리게, 하지만 쉼 없이 내리고 어느덧 폭설이 되고, 인물들이 있는 별장을 고립시킨다. 눈은 이삿짐차를 기다리는 면에게 걱정과 불안을 주고, 의연과 근혜의 마음을 들뜨게 해서 파티를 준비하게 한다. 이것이 눈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이다. 눈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느리게 내린다. 하지만 그 양에 따라 공포를 주기도 하고,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파티 역시 이중성을 드러낸다. 의연에게 파티는 한마디로 쫑파티다. 어머니의 유품을 들고 파리에서 온 의연은 다시 파리로 돌아가기 전에 과거를 훌훌 털어내기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로 파티를 벌인다. 하지만 근혜에게 파티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과정이다. 근혜는 의연과의 새로운 만남과 면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과거를 고통으로 받아들지 않는다. 오히려 면과 더욱 가까워지게 된 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자신이 20년대 문학을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20년대 문학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처럼 면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근혜에게 파티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무대가 들려주는 이야기 

무대는 산 속 어느 별장의 별채이고, 별채는 서재로 쓰이고 있다. 옛 책이 쌓여 있는 곳으로 옛 이야기를 가지고 의연이 찾아온다. 면은 이사를 위해 옛 책들을 정리하고 있으며, 의연은 어머니의 유품에 있던 면의 사진을 들고 과거의 진실을 알기 위해 찾아온다.


 80년대의 흔적을 정리하는 면과 80년대의 흔적을 들추는 의연. 그리고 그 옆에서 면과 의연을 도와주는 근혜. 무대는 점점 죽은 자들을 위한 무대로 변한다.


과거의 물건들. 레스토랑의 노란색 티슈와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80년대의 책들. 의연이 가지고 온 면과 의연의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 과거는 상자에서 잠시 꺼내졌다가 다시 상자로 들어간다. 상자로 다시 들어간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상자에서 다시 꺼내질 것이다. 마치의 역사의 기록처럼.


무대는 일종의 역사이고 거대한 책이다. 그래서 무대는 서재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책인 서재에서 의연은 ‘파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작은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면이 겪었던 80년대의 사랑과 아픔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들려주는 이야기

면과 의연이 들려주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흔히 겪거나 보았던 일들일 수 있다. 사랑과 사상 사이에서 사상을 택했던 사람들과 사랑을 택했던 사람들. 사랑했던 면을 떠나 사회주의 사상을 같이 했던 면의 형과 결혼을 한 여인. 의연의 어머니는 사랑과 사상 사이에서 사상을 택했지만 이혼을 하고 파리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상처를 준 걸까? 의연이 과거의 이야기들을 다시 들추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면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은 왜 일까? 어머니가 겪었을 아픔을 나눠갔고 싶었던 걸까? 바둑을 복기하듯이 옛 이야기들을 소설로 복기하는 의연은 과거의 아픔들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이 아픔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시대에 대한 고발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상처가 되었던 시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대에 대한 고발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상처를 준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이 연극의 속에 등장하는 면과 의연의 어머니. 그리고 면의 형은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았지만 또한 서로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극의 제목, ‘YOU DON'T UNDERSTAND'는 ‘당신은 타인의 상처에 대해 모른다.’가 된다.

   

 




YOU DON'T UNDERSTAND
극단 유랑선 (
cafe.daum.net/yurangseon)
2010. 5. 6 ~12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

작/연출 송선호
드라마투르그 홍재웅
무대 금강
미술 이택희
조명 손종화
사진 김대종


시놉시스

눈 내리는 밤
세상과 고립된 듯한 외딴 가옥의 별채
머지않아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될 공간에서
대학교수 면, 그의 제자 근혜, 면의 조카 의연
세 사람이 책을 정리하며 마지막 밤을 보낸다.

부모의 흔적을 찾아 파리를 여행하다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의연은 작은 아빠인 면에게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과거를 캐묻는다.
암울한 시대와 주체하지 못하는 열정
사랑, 배신, 증오
출생의 비밀……

La Vie En Rose, Danny Boy, Go where you wanna go 의 선율과 함께 세 사람의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이어진다
메이데이, 은방울꽃, 학생운동, 파리, 마들렌의 호텔, 파리 텍사스, 역사, 사랑,
죽음, 진실……

하지만 격앙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서로의 상처를 피해가며 나누는 세 사람의 대화

눈이 그치고 사방은 고요한데
들릴 듯 말 듯한 중얼거림
진실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 


  1. 안녕하세요~ 경기도 블로그_달콤시민 입니다 ^^
    어떤 연극일까, 어떤 색으로 풀어낸 연극일까, 너무 궁금하네요 ^ㅇ^
    좋은 연극이 더욱 많이 나와서 우리 공연문화가 더욱 발전했으면 합니다. ^^
    좋은 글 많이 보고 갑니당~
    더불어, 경기도에서 공연되는 연극 관련된 트랙백 하나 살포시 엮고 가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