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0 Villages Project> 춤으로 춤을 찾아 나서다!

2010. 8. 15. 18:54Review




<10 Villages Project>
춤으로 춤을 찾아 나서다!





글_김민관

 


호라치오 마쿠아쿠아(Horacio Macuacua)


 



춤의 공공미술적 형태를 도출할 수 있을까?

 

미술에 있어 세상 밖으로 나와 예술가의 직접적인 사회 참여와 주민의 삶을 전유하고 조응하며 장소 특정적이면서 삶을 배태한 예술 작품들을 창출하고자 하는 공공미술의 바람이 미술의 한 조류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과 같이 의외로 춤은 삶에서, 또 삶을 기반으로 출현하지 않았다.

 

춤의 수행적인(performative) 순간이 삶에서 눈부시게 드러나는 순간이 응당 있을 법한데도, 마치 수많은 회화 작품들이 화이트큐브라는 갤러리에 걸리는 형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게 춤은 폐쇄된 무용 연습실에서 안무를 짜내고 또 그러한 땀의 훈련에 경도되고 관성화되며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공연 기간만을 갖고,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지고 또 막을 내리고 사라지는 매우 협소한 영역 안에 고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히려 춤의 폐쇄성은 더욱 심각해서 분파니 협회니 어떤 학교니 또 어떤 선생님이니 하는 게 중요한 위상으로, 무용수의 신체와 정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춤. 몸에 따르는 제약, 몸을 따르는 시선

 

춤은 몸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사용해서인지 또 그 몸이라는 것(정신이란 것을 굳이 분리할 수 없기에) 자체를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음에서 출발해서인지, 다른 장르와의 유기적인 조응과 협력 관계를 맺는 데도 다분히 부족한 움직임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한 몸이 갖는 주체로서의 발언이라는 측면에서 무용수의 자의식이라는 폐쇄적 자장은 춤의 다양한 접근과 해석 양식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오브제와는 다른 텅 빈 신체로서의 몸, 제약이 큰 매체이자 열린 매개를 지향하는 매체로서의 몸은 분명 다양한 변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된다. 몸이 춤을 매개한다면 춤은 다시 몸을 재매개한다. 그리고 몸에는 수많은 춤의 무늬가 퍼져 나온다.




에디발도 에르네스트(Edivaldo Ernesto)

 



10 Villages Project, 일상에서 더듬어가는 춤의 자국

 

간단히 말해 ‘10 Villages Project’는 ‘코스타리카’, ‘세네갈’, ‘한국’, ‘폴란드’, ‘네덜란드’를 순차적으로 각 나라마다 열개 마을을 돌며 다양한 문화 경험에서 소외된 주체들과 춤으로써 만나는 프로젝트다. ‘다비드 잠브라노’(David Zambrano)를 주축으로 ‘맛 부터’(Mat Vooter)등이 함께 춤판을 벌인다.

 

‘노동요가 있는 것처럼 노동무 역시 없을쏘냐?’

어쩌면 일상의 움직임에서부터 자연 춤의 무늬가 너울거리며 접혀있기에 춤이라 따로 명칭하지 않는 춤도 많으리라! 일상의 움직임에서 파생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곧 무엇을 하기 위한 목적의 움직임을 지닌 게 아니라, 무용의 움직임을 띤, 곧 춤은 이루거나 하는 게 아니라 춤은 추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말로 신명이라는 것이 더해진다. 춤은 쉽게 말해 일상의 경계를 넘는 지점에서 자연 신명이 나며 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비드 잠브라노 (David Zambrano)









춤을 되찾아 가는 과정

 

먼저 영상을 통해 전주, 영광, 당진 등 국내 열 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한 모습들이 틀어졌다. 일상에서 시작해 일상과 연결해 일상에서 벗어나는 춤의 개념은 다분히 이들 춤의 모습을 적확하게 비추어 내는 것 같다.

덩실덩실, 굼실굼실 추는 시장 아주머니의 춤은 춤이 무대라는 보여주기의 방식이나 나름의 결기가 필요한 차원의 것이 아닌, 그냥 신이 나서 흔드는 것이었다.

춤이 보이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춤을 함께 추는 방식으로 나아감은 이들이 춤을 나누기보다 춤을 실천하며 춤을 되찾는 과정에 가까웠다.

춤은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고 특정한 자의 무대에만 출현하는 것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고유한 진동수로서 체현되기 때문이다.

뭐, 이런 단순한 사실이 이제야 베일을 벗은 춤이란, 공공예술의 형태로 출현하는 것은 의외로 신선함을 부른다. 거기에는 무용이 춤으로 말을 걸기까지의 지난한 침체기의 춤의 격하가 있었다. 우아하거나 장중하거나 심오하거나 하는 식의 독자적인 지위를 계승코자 했던 무용의 무거움을 한 꺼풀 벗겨낸 하나의 명백한 증후로 다가오기에 이는 춤을 조금 더 넓은 영역과 시간대로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 된다.

 

엉덩이의 좌우 진동의 춤은 아이를 낳는 골반, 광주리를 이고 갈 때 살랑거리는 골반, 밭을 맬 때/멱을 감을 때 몸을 한껏 수축하며 지탱하는 골반, 이 모든 것들의 체화된 삶의 구조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삶의 자국을 담지하고 춤은 문화인류학적인 체취를 담고 그 자리에 그 속내를 내비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춤을 환원한다거나 전한다거나 일으킨다고 할 수 있을까? 춤의 파동을 자연스레 전달하며 춤판을 벌일 때 이들은 춤이 그들의 몸을 타고 나온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친절하고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곧 살아있는 내가 춤에 미쳐 있는 게 아니라 춤을 추며 살아있는 내가 춤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춤을 감각하는 동시에 춤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까지 고려하는 이들의 몸짓은 춤을 재장전할 기회를 사람들에게 열어두는 것 같다.



호라치오 마쿠아쿠아(Horacio Macuacua) 





네 명의 춤, 말하는 방식으로서 춤

 

참가한 무용수 중에는 다섯 명 중 총 네 명이 춤을 췄다. 이들은 춤을 췄지만 동시에 말을 했다. 춤을 추는 방식으로, 그리고 흑인 계열의 진득한 목소리의 쉬운 곡들에 맞춰 발화했고 또 그에 제 목소리를 섞거나 연장하기도 했다.

 


에디발도 에르네스트(Edivaldo Ernesto)는 딱 붙는 바지에 하얗게 딴 머리와 망사천을 얼굴에 덮는 독특한 복장으로 등장해 몸의 반동을 몸의 젖힘과 뒤틈에 섞어 단단하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마치 나무의 디스코 같은 약동 그리고 뒹굶의 찬란한 산화로 그 끝을 향해 갔다.

 




밝넝쿨은 배경음악의 노래를 체화하며 그로부터 숨을 얻고 뱉으며 격렬하게 몸을 구슬리고 또 발산했다. 에너지는 소리로 몸을 벗어났고, 몸은 공간을 넘어 장렬히 산화했다. 관객을 사로잡는 일종의 쇼는 실상 온전한 일상에 던져야 하는 승부수, 곧 치열한 장의 획득의 충실한 노림수와 같은 에너지가 내재함으로 읽혔다.

 



다비드 잠브라노는 굳이 춤을 추지도 않았다. 네 명의 무용수를 거쳐 오며 춤의 형태는 오히려 간결해지고 묘하게도 손가락과 표정으로도 춤의 형태를 커다랗게 빚어냈다. 이는 에너지를 얼마만큼 잘 쓰고 가두고 완전히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제자리에서 드러내는 것에 좌우됐는데, 그 역시 노래를 적절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호라치오 마쿠아쿠아(Horacio Macuacua)는 토속적인 아프리카 느낌이 묻어나는 의상으로, 타악기적인 리듬이 배어나는 떨기와 돌림, 흔듦의 진동하는 구조의 신체를 가져갔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박고 태양의 뜨거움을 온 몸으로 받아쳐내는 듯한 느낌의 제의적인 표징들이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노래에 흡착하고, 다시 자신의 리듬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노래가 끝나고도 빙빙 돌리는 신체 안의 에너지를 잠시 갈무리했다. 박수 이후 털털 털어내며 결기 있게 끝을 냈다.

보통 목소리를 가진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낮은 무용계 안에서 전자음과 노이즈 사운드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목소리의 감정의 과잉 상태에 기꺼이 매몰되어 그것을 뚫고 자신의 목소리 삼아 발화하는 장면들은 꽤나 인상적이다.

 

에너지는 뒤쳐지지 않고 춤은 그 안에서 노닐기보다 그것을 안고 노님을 가벼이 선취한다.

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사람들을 춤으로써 만난 이들인데, 내발려진 신체를 기꺼이 비벼댔던 이들인데, 그 에너지가 오죽하랴! 한 명이 춤을 출 때마다 그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삶/춤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서 춤

 

이들의 춤 자체가 곧 그 순간의 수행성을 구현하기보다 오히려 이들 역시 다양한 문화의 양태를 겪고 오며 제법 단단해진 자신만의 고유성 어린 특기(特記)에 대한 것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삶의 자국이 지난 과정을 파편처럼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보인다. 곧 이들의 몸에는 만남과 헤어짐에 따른 삶의 필터링, 문화에 대한 사유 및 자신을 반추하는 약간의 치밀함, 그리고 에너지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며 존재를 각인시키고, 그 안에서 현존하는 삶의 치열한 양태를 춤꾼들 스스로가 도리어 깨닫게 된 것일 것이다.

 

곧 일종의 짧은 시간의 순회 방식을 통한 춤 나눔 프로젝트는 온전히 ‘유제니오 바르바’가 쓴 『연극 인류학』(2001)에서 문화를 고스란히 전유하고, 그 문화적 누층을 드러내며 트랜스한 층위에서 발화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10 Villages Project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춤을 나눈다는 의미에서의 공공적인 방식의 장을 열기보다는 춤이 망각하고 있던 일상의 무늬, 삶의 기억을 발견하는 것에 가까울 뿐 아니라 무대라는 조건이 성립시키는 한정된 ‘예술’ 향유의 공간, 더 나아가 자본과 정치 경제가 층위 짓는 도시에서의 예술이 문화적인 영역으로 삶의 한 부분을 특별히(내지는 별 기복 없이) 장식할 때 지역에서 기반을 두는 예술(사실 예술로 규정되어지지 않는 삶의 한 모습)이 자연스레 발화하는 현장을 보게 된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보인다.

 

  



2010년 7월 20일
LIG아트홀
10 Villages Project


텐 빌리지 프로젝트(Ten Villages Project)는 전세계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소외 받고 있는 지역의 관객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코스타리카를 시작으로 세네갈, 한국, 네덜란드, 폴란드로 이어지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로서 국가별 10개 마을(10 Villages), 총 50개 마을(50 Villages)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아티스트 소개

안무가 밝넝쿨
안무가 밝넝쿨은 2005년 ‘순수한 몸과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모토로 창단된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의 대표, 예술감독으로서 활동해왔다. 그의 작업은 댄스의 본질과 신체 메커니즘, 감각 체계를 탐구하고 구현하는 작업으로서 한국의 주요 페스티벌 무대에 선보여지며 댄스작업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해외무대로의 활동을 통해 그 작품성과 무용가로서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2010년LIG 아트홀 레지던스 L-1기 예술인으로 선정되며 무용가, 안무가로서 제 2의 도전을 실행 중에 있다.

세계적인 무용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인터내셔널 댄스작업을 지향해 온 밝넝쿨은 "동양의 감성, 유려한 강함을 지닌 뛰어난 한국의 무용가", “유럽무대를 사로잡은 아시아의 토네이도”, “세계무대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라 불리며 세계의 무용가들로부터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로서 세계무대에서의 성공적 데뷔를 마치며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로 비상한 밝넝쿨은 세계무대 진출의 포문을 열며 그 가능성을 실현해 나아가고 있다. 


안무가 다비드 잠브라노( David Zambrano)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뉴욕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를 수학한 그는 현재 암스테르담과 브뤼셀에 베이스 캠프를 두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댄스 작업을 하고 있다. ‘Flying Low’와 ‘Passing through’ 메소드를 창안한 그는 세계무용계를 선도해온 무용가, 교육자이다. 세계적인 예술가 안느-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제니퍼 몬슨(Jennifer Monson), 사샤 발츠(Sasha Waltz) 등과 작업, 교류해왔으며 재능 있는 무용가들을 배출하고 육성해온 마스터로서 잘 알려져 있다.


안무가 호라치오 마쿠아쿠아 (Horacio Macuacua)
1996년부터 모잠비크 아프리카 전통 댄스, 컨템포러리 댄스를 시작하여 1999년부터 현재까지 모잠비크를 대표하는 현대무용단, CulturAtre Dance Company의 멤버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2004년 임펄스탄츠-비엔나 국제 무용제의 DanceWeb 장학생으로 선정되었고 2004년부터 다비드 잠브라노 프로젝트에 합류하며 현재 유럽 전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안무가
에디발도 에르네스트 (Edivaldo Ernesto)
모잠비크 아프리카 전통 댄스를, 컨템포러리 댄스를 수학하였고, 2004년 임펄스탄츠-비엔나 국제 무용제의 DanceWeb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2004년부터 다비드 잠브라노 프로젝트에 합류하였고 현재 독일 사샤 발츠(Sasha Walts) 무용단의 댄서로 활동 중이다.


안무가 맛부터 (Mat Vooter)
네덜란드 출신으로 로테르담 댄스 스쿨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를 수학하였고 유럽 전역에서 ‘Body Mind Centering’ 메소드를 강의하고 있다. 현재 벨기에 주 댄스 컴퍼니의 멤버이자 의상 디자이너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안무가 아냐 히첸버거 (Anja Hitzenberger)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수학했으며 댄스를 비롯해 미술, 비디오, 음악 등 다양한 예술장르와 협업작업을 해왔다. 현재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전시 작업을 열고 있다. 





 

필자 |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