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하는 한 사람을 통해 외계를 알게 된다. " 창작춤집단 가관의<외계 신호 수신 장치>


"사랑하는 한 사람을 통해 외계를 알게 된다. "
'창작춤집단 가관 & 안녕하세요 밴드'의 <외계 신호 수신 장치>


글_이현수


 


1. 외계

 

다시 비가 내린다.

가관의 <외계 신호 수신 장치> 공연이 야외에서 있는 날.

이렇게 비가 오는데 공연이 가능하려나 싶을 무렵 문자가 온다.

시간과 장소가 변경 되었다는 연락.

대체할 만한 실내 공연장을 구했나 보구나, 기우를 접는다.

 

창작춤집단 ‘가관’ 과 ‘안녕하세요’ 밴드의 공동 작업 공연.

무대, 왼쪽에 남자 셋이 앉아 있다. 아코디언, 기타, 잼벨 등의 악기가 있다.

무대, 오른쪽에는 여자 셋, 그 뒤로 커다란 바람개비, 우산 등이 널브러져 있다.

남녀칠세부동석? ‘가관’은 여자 셋이고 ‘안녕하세요’ 밴드는 남자 셋이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을 맡은 남자 배우 한 사람.

 

객석, 옆에 앉은 한 관객이 내게 묻는다.

“이 가관이 그 가관 맞나요? 오래전에 봤던 팀인데 아직도 있는 거죠?”

“이 가관이 그 가관 맞을 거예요. 프린지 10주년 오프닝에서

매년 참가한 팀이라며 사회자가 ‘가관’을 소개 했던 것 같아요.”

 

질문하신 분의 마음은

잊고 있었는데 아직 활동하고 있어서, 다시 만나서 반가운... 그 마음인 거겠지?

 



2. 신호


공연의 내용은 나눠준 안내 종이에 적힌 것과 같다.

‘초절정 황당무계 어드벤쳐 엽기 발랄 로맨스

 

에필로그는 ‘가관’의 단순한 움직임과 ‘안녕하세요’ 밴드의 노래로 시작한다.

봄날의 그리움을 황당무계한 리듬으로 노래하고 시적인 움직임으로 그린다.



 





지구인에게 자신감이 결여 되어 있다고 본 선글라스 요원들은 지구인 한 명을 선택해 외계로 보내기로 한다. 주인공 남자는 사실상 무대 한 바퀴를 돌았을 뿐이지만 ‘안녕하세요’ 밴드와 ‘가관’팀이 정신없이 달리고 재주넘기를 함으로써 공간을 이동시킨다. 그 어드벤쳐를 타고 우린 모두 외계 어느 행성으로 왔다.



 





이 행성의 외계인들은 두 발을 모으고 스카이 콩콩을 타듯이 다닌다. 두 팔은 앞으로 내밀고 입도 앞으로 삐죽 내밀고 다닌다. 외계인들은 외계인들끼리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그 사이에서 지구 남자는 이방인이 된다. 지구에서도, 외계 행성에서도 이방인인 자신감 없고 외로운 남자.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외계 행성의 여인. 지구 남자와 외계 여인은 서로를 알아본다. 유치한 사랑을 진실하게 나눈다. 엽기 발랄 로맨스가 펼쳐진다. 외계 여인은 지구 남자의 얼굴에 그 윤곽을 따라 손가락으로 선을 긋고 입을 쭉 양 옆으로 밀어 자신만의 기호로 사랑을 표현한다. 지구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몸짓일까. 자신감을 주는 미소를 각인 시키려는 몸짓일까. 이 기호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구 남자는 이 몸짓을 따라한다.


 




지구 남자는 이제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 이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해도 단 한 사람은 나를 믿고 이해해 줄 거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당당하게 정직하게 살겠다는 자신감일까. 진실한 사랑을 했으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일까. 자신감을 안고 지구로 금의환향하는 지구 남자.

 









사랑하는 여인을 외계 행성에 남겨두고 온 지구 남자는 그리움에 잠길 사이도 없이 지구 요원들로부터 독촉을 받는다. “자신감 내~놔~!” 밀린 전기세를 독촉하듯 두 손 내밀어 자신감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지구 요원들. 남자는 ‘자신감은 물건처럼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자신감을 가져본 적 없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요원들. 요원들은 지구 남자를 둘러싸고 의식을 거행한다.







 

자신감처럼 사랑 역시 만질 수가 없다. 만질 수 없어서 눈으로 볼 수 없어 생긴 그리움이라는 질병이 하나의 기계 장치를 빚어내기에 이른다. ‘외계 신호 수신 장치’ 무대 한 쪽에서 지구 남자는 망가진 우산과 두꺼운 옛날 전화기, 조명기기와 바람개비 등의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을 갖고 외계 신호 수신 장치를 만든다. 이 창조의 시간동안 무대 중앙에서는 공연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춤과 노래가 축제처럼 벌어진다.







 




완성된 기계를 시험해 보는 남자. 수화기를 들고 연결을 시도한다. “여보세요?” 그리고는 잠이 든다. 꿈을 꾸는 것일까. 외계 여인이 어디선가 콩콩 뛰어다니고 있다. 물론 한 무용수가 무대에서 콩콩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지만 남자의 꿈 속 어디선가 뛰어다니는 느낌이 든다. 춤을 추며 모두들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건물 밖으로 나간다. 기타 치는 외계인만 남았다. 이 외계인은 눈을 감고 있는 지구 남자를 그대로 데리고 나간다. 텅 빈 무대에는 남자의 작품만 남았다. ‘외계 신호 수신 장치’ 만이.

 

죽음. 남자는 지구에서 죽은 것일까, 외계별에서 죽은 것일까. 남자는 꿈을 꾸면서 우주로 날아간 것일까. 죽어서 자신의 반쪽이 있는 별로 돌아간 것일까.




 



사랑하는 한 사람을 통해 외계를 알게 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랑의 신호가 된다.

얼굴을 그리는 몸짓, 미소를 그리는 몸짓은 그리움의 수신 기호가 된다.

사랑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자는 초절정의 에너지로 불가능한 것을 창조하게 된다.

외계. 신호. 수신. 장치.

 





3. 수신


‘가관’과 ‘안녕하세요’, 두 팀의 앙상블은 깃털처럼 가볍다.

내용도 표현 방식도 애들 놀듯이 즐거워 보인다.

망가져도 망가진 줄 모르고 자신들의 모습을 한정짓지 않고 넘나든다.

자신감 없는 지구인이라는 설정은 본인들 얘기가 아닐까 추측 했는데,

연륜(?)을 잊고 방방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자신감 없는 거 맞나’ 싶다.

 

자신감에 대한 얘기가 본인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이 추측은 가관 팀과 함께 워크샵 했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나는 가관과 함께 즉흥 움직임 워크샵을 했었다. 그녀들은 오후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오전에 연습을 했다. 눈을 부비며 오전에 만나서 세 시간 동안 열심히 움직이고 탐구했다. 워크샵 초기에는 약간 자신감이 없었지만 스무 차례의 워크샵이 끝났을 때, 우리는 자신감을 좀 더 회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녀들의 춤과 무대 뒤의 생활을 엿들을 수 있었다. 생계, 가족 관계, 나이 드는 몸, 작업을 하기 위한 비용, 춤에 대한 욕심, 작업에 대한 갈구, 팀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기 위한 노력... 몇 가지 단어들을 단서로 느껴본 그녀들의 생활이다.



 




‘가관’과 ‘안녕하세요’, 두 팀의 앙상블은 무대 위의 행복이다.

무대 위의 행복을 보는 것은 기쁘다.

자아도취가 아니라 무아지경을 말한다.

멋지게 보여야 한다는 무게를 벗어던지고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행위자가 행위 자체에 빠져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것을 보는 사람도 즐겁게 만든다.

 

‘가관’은 참 꾸준하다.

즐겁게 춤추는 몸짓이 꾸준하고 프린지와 함께 했던 시간도 꾸준하다.

그리고 무대 위의 즐거움 뒤로 보이지 않는 복잡한 무게들도 꾸준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 역시 꾸준할 것이다.

작품과 진한 로맨스를 하고 있다면 자신감은 자신도 모르게 꾸준히 업댓 중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건 그 꾸준함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커가는 중일 것이다.

 


4. 장치

 

야외 공연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비가 와서 실내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을 하는 중, 창밖에서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무슨 일이지?’ 하고 바라보다 지나갔다.

가능하다면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공연을 ‘외계 신호 수신 장치’로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의 기후는 점점 예측이 불가능해 지고 있다.

내년 프린지 축제 때는 ‘우천 공연 가능 장치’를 발명해야 할 것 같다.

 

 

창작춤집단 가관 <외계신호수신장치>
2010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0828 가톨릭청년회관 1층 로비

‘사랑과 소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창작춤집단 가관과 안녕하세요 밴드가 공동작업한 초절정 황당무계 어드벤쳐 엽기발랄 로맨스

창작춤집단 가관은 1997년 결성, 기존 무용계에서 굳어진 형식과 틀, 반복되는 주제에서 과감한 일탈을 시도하며 독자적인 무용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인디 무용 단체이다. 가관은동시대 우리들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객과의 다양한 소통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소극장, 야외공연, 까페, 문화행사 등 여러 공간을 모대로 활동하고 있으며, 표현의 매체에 있어서도 인디밴드, 마임, 연극, 영상매체 등과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창의적인 예술실험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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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현수.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