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실을 말하고 있는 판타지, '무브먼트 당-당'의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제 12회 서울변방연극제 참가작

진실을 말하고 있는 판타지,
'무브먼트 당-당'의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글_아아시
 




술에 취해 꽐라가 되어 ‘집을 찾기 위해’ 동네를 헤맨 적이 있다. 분명 집은 여기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나의 집이 없을 때의 그 똥줄이 타는 마음. 망연자실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 느껴지던, 나를 짓누르고 있는 대기의 압력. 그 무게감. 날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 없어, 인생 자체의 근본적 외로움과 막막함을 느끼게 되던 그 순간.


물론 나의 집은 없어지지 않았다. 내가 정신이 아리까리해서 집을 찾지 못했을 뿐. 집을 찾아다닐 그 때 그 당시의 나의 인지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그 때 당시의 우리 동네에 대한 나의 인식은 판타지처럼 기억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면?


 

무브먼트 당당의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이 공연은 판타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판타지가 아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

 




#1






높낮이가 다른 종이 상자들. 집들은 가벼운 완력으로도 쉬이 부시어 질 수 있게 설계되어있다. 그 위로 길을 헤매고 있는 ‘모’의 영상이 투사 된다. 모는 마이크를 들고 흡사 아홉시 뉴스의 취재기자처럼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 한다.


“우리 집이 사라졌습니다.”


그냥 지나쳤나? 하여 집까지 가는 발자국 수까지 세어보며 확인해보길 수 십 번 하였다는 모. 하지만 집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모는 집을 잃어버린 후 다시 찾기까지의 과정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함께하길 제안 하고, 무대 위로 튀어나와 실재한다.












그가 만나는 세상은 판타지이다. 흡사 앨리스가 헤매었던 이상한 나라나, 팀버튼이 만들어내는 고담시 같다. 상자들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상자와 도시. 집들은 가벼운 완력으로도 쉬이 부시어 질 수 있게 설계되어있다. 그 도시 사이를 뒤뚱거리며 부유하는 사람들. 까칠한 미치광이 약사나, 기괴한 웃음소리의 다방주인.
하나부터 열까지 정상적인 인물이 없다.


“제 아내를 기억하세요?”


“혹시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집이 없어졌습니다.”


모는 묻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소 뿐.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비극에는 아무도 관.심.이.없.다.


 

‘정상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말한다면, 어쩌면 이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 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제 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제 35조 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무대 위에서는 이 대한민국 헌법이 직설적으로,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허나 이와 대조되는 상황들 또한 직설적으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 모순을 생으로, 날로, 점층적으로 조소한다.

 

 




#2-1






화려한 조명아래 사람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밤무대 진행자 마냥 반짝이 옷을 입은 두 사회자는 자랑스레 말한다.


“우리는 21세기형 선진도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피트니스 센터를 세우고, 역세권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내쫓았으며 집기를 부셨습니다. 법은 우리에게 손을 들어주었고, 그들은 이 도시로부터 영원히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2-2






위는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무대에서 흡사하게 재현된다. 무력한 군중. 마치 등이 굽은 곱추나 좀비같다. 빠르고 신나는 비트에 맞추어 뒤뚱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움직임.









그 군중들 중 한 사람이 모에게 말을 건다.


“드디어 돌아왔군? 여기 서서 뭐하나?”


모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벙어리가 되었는가? 니가 나를 모른다구? 나를? 저런. 개자식.”



아니 어쩌면 모는 그를 모르는 채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모는 군중들에게 쫓긴다. 쫓기며 옷이 벗기어진다. 어느샌가 모는 그 군중의 무리에 섞이어있다. 자신도 모르는 채. 이것은 모가 그를 모르는 채 한 것에 대한 댓가일지 모른다.








군중들은 뒷걸음질로 종종거리며 도망친다. 도망치다 점점 더 빨리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다 아예 뛰어다닌다. 좌우로, 가운데로 몰렸다가 불안에 떠는 동물들처럼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 폭발하듯 흩어진다. 서정적인 바이올린 선율에 맞추어 군중은 넘어졌다가 일어선다.
누구인지 모를 무언가에게 얻어맞는다. 그것으로부터 쫓기고 불안에 떤다. 무언가와 싸운다.



이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012





 

 

#2-3


모는
상황이 닥쳐서야 비로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한다.

‘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집으로 가는 길 조차도’

모에게 걸음의 리듬은 없어졌다. 걸을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이 모든 것이 어젯밤 꿈 속에서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았다. 외부의 거대한 폭발이 이토록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 줄이야.

그렇게 모는 울고 또 울었다.

 

이 상황은 마이크를 든 두 명의 나래이터로부터 묘사된다. 그들은 쓰러진 모의 몸 위로 신문지를 덮어준다. 모는 소리 없이 운다. 그리고 신문지로 날개를 만든다. 얇디 얇은 신문지 날개로, 백조가 되어 비상하고자 한다.









 

#2-4





무대위에 이불봇짐을 싼 사람들이 이동해온다.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아무렇지 않은 듯 게임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기타를 치고 거울을 본다. 모 또한 가지고 있던 신문으로 자리를 펴고 신문을 본다. 그들의 무리에 모도 자연스레 섞인다.


그들은 우스꽝스러운 어조와 행동을 하며 대한민국의 헌법을 읊는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희극 행세를 한다. 심지어는 아예 무대 위에 비닐하우스와 텐트가 쳐진다. 그리고 그 안의 노숙인들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누군가가 말한다.

“내가 이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모 또한 인터뷰를 한다.

“제 이름은 모입니다. 우리집이 사라졌습니다.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이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인물이 있다.

“여기서 이러면 불법인데! 당신들 이거 범죄야. 우리는 불법적인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이주시키지.”


그의 모습은 마치 왜소증에 걸린 사람 같다. 그 또한 무력하긴 매한가지다.



 

#2-5


모는 집을 잃었다. 집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하였지만 끝내 집을 찾지는 못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집을 잃은 대신 그는 친구를 얻었다. 모의 친구 ‘여’는 말한다.
“집을 잃은 사람은 한두 명의 친구가 있다. 하지만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은 친구가 없어”

 

때문에 그저 이미 늦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어지지만은 않아진다.


그들은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세상을 향해 ‘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라고 긍정의 노래를 부른다.






 

#2-6



밥말리의 ‘get up stand up’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며 공연은 끝이 나지만,
우리에게 아직 결말은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Get up, stand up! Stand up for your rights!
Get up, stand up! Don't give up the fight! 

 

 




무브먼트 당-당의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이 공연은 판타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판타지가 아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가?

어느 날 갑자기 ‘모’는 당신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다.

 


솔직하다. 그냥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이다.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돌려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에 감정의 강요가 담겨 있지는 않다. 심지어는 쉴 틈 없이 웃기기까지 하면서, 예술성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있을까.


나는, 현실에 대해 모르는 채 하지 않는, 점잔을 빼지 않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예술가의 이 진정성을 응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사회운동가이자 신학자인 마르틴 니뮐러가 썼다고 알려지는 (아마 웹상에서도 많이 보셨을) 시 하나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 민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 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 12회 서울변방연극제 _도시기계 : 요술환등과 산책자의 영리한 모험 
2010 0902-0919


무브먼트 당-당 _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0902-0903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작/안무/연출_ 김민정

사라진 집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살아가는 자’ 무엇을 할 것 인가. 안무가 김민정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 포크레인이 긁어내는 시뻘건 흙더미 아래로 자취를 감춘 사라진 집들에 관한 이야기

어느 날 ‘모’는 퇴근길에 자신의 집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한다. 동네의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그의 집과 가족만이 사라진 것이다. 집을 찾으러 동네를 샅샅이 뒤지던 ‘모’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동네 상점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사라진 집을 찾을 실마리는 얻지 못한 채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하지만 늘 자기 곁에 있던 이상한 마을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게다가 자신처럼 집이 없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그들의 사라진 집을 대신하여 자기 한 몸을 가려주고 감싸주는 다양한 집의 대체물들-신문, 비닐, 장판, 침낭, 텐트, 박스 등-을 몸에 지니고 살아가는 집 없는 이들과 마주친다. 그들의 횡설수설하는 이야기 속에서 ‘모’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도 의심하며, 자신을 기억 할 사람 또한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집 없는 무리 속으로 빠져든다. 

김민정 

김민정은 무용가로서 다방면의 안무활동은 물론 연극집단 뮈토스의 배우로도 무대에 서고 있으며, 영화, 마임, 음악(콘써트), 페인팅 등 여러 장르의 예술작업과 연계하며,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다. 창작세계를 가로막는 주류예술계의 질서에 편승하지 않고 빈약하고 힘든 작업조건을 극복하며 열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민정은 사회의 모순과 뒤틀린 인간관계 그 한켠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토해내고 있다

무브먼트 당-당

무거운 내용을 경쾌하게 풀어내는 독특하고 신선한 무대언어로 기존 공연의 고정적 장르를 깨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온 무브먼트<당-당>은 유쾌한 감동을 지닌 공연 속에서 관객들과 좀 더 가까이서 호흡하고자 한다. 움직임과 춤 언어를 근거로, 타 장르와의 적극적 결합을 통한 새로운 형식의 무대언어 개발, 관객과의 즐겁고 진실된 소통을 통해 공연예술 관객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공연예술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무브먼트 <당-당>은 이러한 댄스 플레이를 통해 연극과 무용의 장르간 융합을 시도하면서 한편으로 “춤을 즐기자”고 도발한다.


변방연극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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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아아시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장래희망은 따뜻한 할머니.

홍시의 '홍'을 90도 각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아아'가 되어 아아시이다. 
아직은 덜 익은 감이지만 어서 잘 익은 홍시가 되고 싶은 떫은 20대.
 
2008년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로베·르네 집'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으로 참가하고, 인디언밥에 리뷰가 실린 것으로 첫 인연을 맺어, 2010년 4월부터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스태프와 인디언밥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보다는 예술가를, 그저 예술가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예술가를 사랑합니다.

hong_si_@naver.com




  1. 은근한 감춤- 나도 예술이 감춘 걸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