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골목길 「아침드라마」 - 무심하면 죽는다



극단 골목길「아침드라마」 - 무심하면 죽는다




글_ 강여사 


  


 

“무심하면 죽는다.” 이 말은 누구를 향하는가.



극의 끝 부분, 죽은 아들은 아비에게 “사방이 불타고 있어요! 여기 이 불길이 보이지 않아요? 아버지!”라고 묻는다. 아비는 내가 뭘 모른 척 하느냐며, 불길이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절규한다. 그리고서 극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술집에 주저앉아 취한 채로 잠이 들어버린 아비는 잠이 깬 후 다시 친구—서로 친구로 착각해 친구가 되어버린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첫 장면에서 방화범이 했던 말을 이제 자신이 내뱉는다. “무심하면 죽는다고 했지.” 아비의 몸에 친구의 칼이 꽂히고 마룻바닥과 친구의 얼굴은 이내 피로 물든다. 친구는 아비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불을 킨다. 그리고 암전. 극이 시작할 때처럼 다시 사회자가 등장한다. “여러분 다시 아침입니다. 그만 일어나시죠. 어서 TV 앞에 앉아 오늘의 아침드라마를 틀어보세요.” 그러나 공연이 끝난 시간은 느지막한 일요일 저녁. 아침이 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다.






세계는 우리가 비현실적이라고 욕하는 아침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드라마가 비현실적인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삶이 비현실적임은 깨닫지 못한다. 어떤 사태를 한 발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우리의 사유능력은 제 기능을 상실하곤 한다. 아침드라마 속에서 연출되는 어이없는 사건들은 우리 사유의 촉을 건드린다. 그리고 우린 그에 대해 ‘막장드라마’라는 가치판단을 거침없이 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극장 밖을 나서며 만나게 되는 사건들은 사유하지 않는다.







<아침드라마>(박근형 작/연출)의 인물들은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는 상황과 타인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상황의 끊임없는 부딪힘 속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 축의 중심에 아비가 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의 애매한 경계를 넘나드는 이상한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현실과 눈앞에 주어진 현실은 매 번 달라서, 충돌을 일으킨다. 낯선 타인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친구라고 착각하고, 교장선생님께 돈을 빌려준 건지 빌린 건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어머니가 죽었는지 아버지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도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형은 이를 모호하게 남겨둔다.



그렇다. 연극 <아침드라마>는 모호하다. 이 연극은 사태를 직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 연극은 TV에서 나오는 막장 아침드라마와 다르다. 이 연극이 비록 그러한 아침드라마로부터 영감을 얻었을지라도 말이다. 박근형은 이러한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본 극에 들어가기 앞서 두 가지 이야기를 선보인다. 첫 번째는 괴물 ‘동화이야기’, 두 번째는 아침드라마의 ‘전형적인 공식’, 세 번째가 <아침드라마>의 본 이야기이다. 언뜻 연관성 없어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는 자기 다음 이야기들에 탄력을 불어넣는다. 독자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 개의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전개됨으로써 각각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어떠한 질감으로 다가오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본 극이 시작된다. 박근형은 막장 아침드라마의 직설적 화법을 피하고, 모호하기 그지없는 상징들과 메타포를 통해 우리에게 ‘현실’을 보여준다. 험난한 사유의 여정을 통해 상징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야만 현실에 도달할 수 있다. 연극 속 인물들은 대부분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방화범에 의해 불에 타죽거나 쓰레기차에 치여 죽는다(여자들은 방화범에 의해 강간의 위협 속에 노출된다). 연극 속 인물들의 비극은 동일하며, 연속된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무심하면 죽는다고 했지.” 아비의 친구는 아비의 몸에 석유를 뿌리며 그리 말했다. ‘무심하다.’ 그는 누구에게, 무엇에게 무심했단 말인가? 질문을 조금 확장해보자. 그럼 이제껏 죽은 이들도 ‘무심’했단 말인가?



‘무심하다’는 말에 좀 더 깊이 머물러본다. 그 말의 지층에는 대상을 바라보지 않고 사유하지 않음이 숨어있다. 무심함은 무사유의 다른 말이다. 사유는 자기 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진다.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 삶, 이것은 나의 오늘과 내일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무책임한 삶의 연속이 행복을 가져다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TV 아침드라마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말도 안 되는’ 자극적인 사건들의 나열 속에서 주인공은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다. 그의 사랑은 대체로 비도덕적이며, 지나치게 강렬하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사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기형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는 행복하다. 반대로 그 주인공과 똑같이 무책임한 우리에게는 절망의 삶이 놓여진다. 그리고 연극 <아침드라마>의 인물들은 무책임하기에 불행하다. 이것이 바로 TV 아침드라마와 연극 <아침드라마>의 차이이다. 그리고 이것은 TV 아침드라마와 현실 간의 차이이기도 하다.






박근형은 우리가 누구나 불구적인 삶의 주인공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형은 평범한 ‘듯한’ 일상을 보여주지만 그 현실은 사실 불구적이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그 불구의 원천이 —적어도 이 연극에서는— 혹시 당신들의 ‘무심함’ 때문은 아니냐고. 무심함이 아침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을 낳았고, 그 결과는 이렇게 비극적이다. 그 비극적 결말 속에서 박근형의 과장된 비장함이 돋보인다. 그의 이전 작품들에서 느꼈던 나름 희망찬 결말은 사라지고 없다. 이 연극의 비장함은 조금 불편하다. ‘무엇이 결말을 이리도 비틀리게 만들었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릿하다. 대학로 연출가 중 그 누구보다 당대의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것을 자신의 연극 속에 담아냈던 그이기에.


그렇게 우리는 불구적인 나의 삶의 주인공이다. <아침드라마>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삶 속에는 무차별하게 불을 지르며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연쇄방화범이 뚜벅뚜벅 걸어 다니고 있다. 이 세계는 불타고 있다. 가끔은 예기치 않게 가족이 쓰레기차에 치여 죽기도 한다. 꿈과 현실이 혼재된 세계를 휘저으며 정신없이 살다가, 이 세계 어딘가에서 불에 타 죽거나, 쓰레기차에 치여 죽는 것이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사실 ‘아내 만나러 가는 길에 쓰레기차에 치여 죽었다’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의 애도는 허무로 바뀐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애도할 여유가 없다. 애도하기엔 우리의 삶은, 우리의 죽음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우리의 ‘아침드라마’는 또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무심하며 더 이상 사유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가지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슬픔, 이것은 아침드라마에서 거세된 감정이다. 이러한 아침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오늘의 지금-여기라고 박근형은 말한다. 어느덧 현실에 기대어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우리가 만들어 놓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들을 꿈꿔야 하나.



지금 세계는 불타고 있다. 쓰레기차가 우리의 삶을 향하여 질주한다. ‘무심하다’는 말에 무심해지지 말자. 무심하면 죽는다.




극단 골목길 - 아침드라마
2010 1105-1128 게릴라극장
박근형 작/연출

시놉시스
구름나라 천국위에 한 가족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조그만 가죽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다정다감 현모양처예요.
착하고 똑똑한 외동딸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죠.
그들은 행복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공장에 부도가 났어요.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고민 끝에 결국 야반도주.
밤거리를 전전하다 쓰레기 청소차에 치어 돌아가셨죠.
당연히 집안은 빚더미에 올라앉았어요.
어머니는 졸지에 파출부로 일하게 됐어요.
딸은 디자이너 꿈을 접고 백화점 구둣가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죠.
어머니와 딸은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며 서로에게 힘을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사장 아들이 업무순찰을 돌다가 이 아가씨의 구두 닦는 솜씨에 반했어요.
냉철한 엘리트 사장 아들과 언제나 밝고 착한 이 아가씨는 급속도로 사랑에 빠졌어요.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사장 아들 부모님을 만났어요.
하지만 백화점 사장 내외는 가난한 이 아가씨와의 결혼을 반대했어요.
아가씨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제서야 둘의 결혼을 승낙하죠.
백화점의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던 중 갑자기 권태로워 집니다.
이 아가씨는 동료 남자 직원과 불륜에 빠지게 되고,
불륜을 발견한 남편은 경찰에 신고하러가던 도중 쓰레기 청소차에 치어 죽게 됩니다.
어떠세요? 이 이야기... 황당하죠?
자 그럼 우리 동네 이야기 한번 보시겠어요?




필자소개

강여사
방황하며 이리저리 살다보니 현재 4년째 대학 4학년. 
4학년 2학기인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무늬만 학생인 백수, 예비 잉여인간. 
연극이 좋아 시작한 연극에 대해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부딪혔다.
그나저나 그 전에 무엇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나 돈은 어떻게 벌지?
여기 구직자 하나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