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런닝머신 위의 아버지 - 극단 성북동 비둘기 「세일즈맨의 죽음」




런닝머신 위의 아버지 - 극단 성북동 비둘기 「세일즈맨의 죽음」



글_조형석

 


 






다소 연극무대로 보기 어려운 장소. 사방이 노출시멘트로 되어있고 말이 텅텅 울리는 지하. 관객들 사이에 단지 런닝머신과 마이크와 조명이 놓여져 있을 뿐이다. 무언가 빠르게 진행된다. 숨 가쁘고 정신없다.

한 남자가 런닝머신 위에서 계속 뛴다. 무척이나 답답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이 반복된다. 그 뒤에는 밤의 도시를 달리는 차량들, 고층 아파트, 럭비 경기 모습, 많은 시계들 그리고 TV가 영상을 통해 반복 재생된다.

그 남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족들이 나온다.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그 앞에서 그들은 제각각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하소연을 한다. 아버지로 보이는 그 남자는 다소 무덤덤한 표정이나 흐뭇하게 미소도 지었다가 인상도 찌푸렸다가 한다.

남자가 가족을 이루고 자식들의 자라는 모습들 그리고 남자의 직장에서의 모습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갈등들, 가족으로 부터 외면받고 직장에서 외면받고 마지막 자신의 어릴 적 꿈으로부터마저 외면받은 남자의 슬픔. 모든 것으로부터 괴리된 남자의 절망과 그 순간에도 계속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슬픔.

어둠속에서 수많은 불빛들이 남자를 비추며 지나간다. 남자에 대한 원망과 욕구, 그 누구하나 남자를 응원하는 목소리는 없다.

남자는 어느새 런닝머신에서 내려와 자신이 뛰던 런닝머신을 바라본다. 그의 가족들은 남자의 런닝머신 위로 국화꽃을 뿌린다.



어느새 돈 버는 기계로 전락, 자신의 꿈을 잃은 아버지의 파국으로 치닫는 시대의 단편적 사건... 이 작품이 나온 지 어언 60년이 넘었지만 우리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아버지의 어깨에 얹혀 진 책임이라는 돌들이 더 늘어났고 잴 수 없는 돌들의 무게는 풍채 좋던 아버지를 자꾸만 줄어들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버지를 닮아간다. 철이 들고 군대를 갔다 오고 보니 아버지는 작아지셨다. 벼락같던 목소리와 그 좋던 풍채는 어디로 가시고 어느새 가끔 방문을 여시면서 주름살 사이로 웃어주시는 그 미소에 힘이 빠지고 만다.


나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아서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와 '유진 오닐'과 함께 대표적인 현대 극작가로 2회에 걸친 퓰리쳐상과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의 전남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무대에 선 뒤 많은 호평을 받으며 현재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새롭게 각색되고 연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1983년 <세일즈맨의 죽음>이 중국 베이징에서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작품이 많은 이들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고 재생되어지는 이유는 체제를 불문하고 반세기를 뛰어넘어서 현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사실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의 희생적 비극을 담은 가족사라는 점이다. 더하여 이는 우리가 극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쓰림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된다.


'성북동 비둘기'의 극은 신선하고 독창적이었으나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연극이? 라고 생각될 정도로 예상치 못한 그저 평범한 건물 지하. 그리고 노출시멘트가 배우들의 입을 뛰쳐나온 말들을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울리게끔 만들어 다음 대사를 듣고 유추해야 할 정도였던 곳. 허나 분명한건 탁한 회색빛 시멘트천지인 장소와 어둔 배경은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소시민의 비극을 전한 <세일즈맨의 죽음>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는 점이다. 어둔 배경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향해 런닝머신 위에서 뛰는 그 무대는 잊혀지지 않으리만큼 훌륭했다. 수많은 희곡들이 많은 극단과 연출가를 통해 새로운 옷을 입고 무대 위에 서지만 '성북동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무대배경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극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분별없어 보이는 동선,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극 진행은 극을 난해하게 만들었다. 본래 원작에서도 뜬금없이 뒤바뀌는 배우들의 주제나 공간에 대한 의식의 빠른 전개로 흐름을 잡기에 불분명하다. 현대인의 복잡한 생활과 '윌리 로먼'의 오락가락하는 정신세계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는 원작을 충분히 재해석해 관객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성북동 비둘기'는 오히려 반대로 더 빠른 진행을 추구하였다. 확실한 건 한 시간이라는 런닝타임동안 그 많은 것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했으리라는 점이다. 차라리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극을 차근히 풀어나갔더라면 와 닿는 감동이 더했을 텐데 말이다. 뭔가 정신없이 휘리릭 하고 눈앞에서 지나가고 따단! 하고 끝이 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다소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밖으로 나온 기분이 없지 않다. 채 감정이입이 되기도 전에 전개되었다고 표현하겠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많은 이들이 재해석하고 무대 위에 올려왔다. 확실한 흥행보증수표이고 보편적인 현대인의 비극을 다뤘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흥행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성북동 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도 마찬가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나라만의 재료와 갖은 향신료로 맛을 잔뜩 내어 대접해야 할 음식을 우리 입맛에 맞추다 보니 오히려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묘미를 잃은 경우. 
 

배우들의 분별없는 동선도 마찬가지. 오히려 연출가의 의도였다면 "네, 뭐 썩 나쁘지 않았네요" 정도로 말 하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무대구조의 특성상 관객의 시선을 더 분할시켜서 나타낸 결과물일 게다. 마지막으로 불안하고 어둡고 빠른 호흡을 하게 만드는 그 음악은 극의 호불호를 확실히 갈랐다. '윌리 로먼'의 생과 가족들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좋은 매개체였으나 "왜 하필 저런 음악을 써야만 했을까..."라는 의문도 남긴다. 
 

확실히 이 극에서 뛰어날 정도로 신선했던 점은 런닝머신과 조명 그리고 바로 런닝머신 뒤로 비쳐지는 영상들이다. 밤을 달리는 자동차, 고층 아파트, 시계들, 럭비의 터치다운 영상이 반복되어 보여지는 면은 확실히 극의 접근을 극대화시켰다. 영상매체를 다룬 점이 오히려 자칫 더 난해할 뻔한 극의 중심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더하여 지금 우리시대의 아버지가 가지는 갑갑한 현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연출이었다.
 

사실 시각만큼이나 의존하는 감각이 청각이다. 그런 점에서 '성북동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런닝머신이나 조명, 영상이 가지는 시각적인 모습에서는 좋은 점수였겠으나 배경음악을 다루는 청각적인 부분에서 무척 평가가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 <세일즈맨의 죽음> 연출가 '김현탁'씨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다" 라는 평가와 "이게 뭐야? 뭐 이리 난잡하고 정신 사나워" 라고 평가되는 점. 아마 공통적인 평가는 그의 작품이 호불호가 확실해진다는 점일 것이다.


'아서 밀러'의 원작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가장 먼저 작가의 본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극이 흘러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연출가의 독창적인 모습은 확실히 어필되었지만 때문에 빠른 호흡에 느낄 수 있었던 건 정신없이 흘러가는 가족의 갈등일 뿐 숨 가쁘게 어지러운 격동의 시대와 그 속에 꿈을 잃고 서있는 세일즈맨의 이야기는 느끼기 어려웠다. 원작에서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의 이야기가 동시적으로 보여지고, 과거와 현재가 유기적으로 변경되며 펼쳐지는데, 반면 '성북동 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빠른 호흡으로 인하여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특히 형인 '벤'과의 대화하는 장면에서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장면인 만큼 같은 공간에서 다른 장소를 표현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원작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반면 원작과 달리 '윌리 로먼'의 죽음을 먼저 공개한 후 이후로 그의 삶과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며 마무리지은 점은 훌륭한 재해석이었다. 마지막으로 한쪽 발은 구두, 한쪽 발은 운동화를 신고 런닝머신을 뛰는 '윌리 로먼'의 모습은 원작보다 '윌리 로먼'의 표상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해 낸 부분이었다. 관객들은 자신의 발이 헤지는 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에 꽉 찬 응어리짐,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도 분명 꿈이 있었고 나와 같이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에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힘쓰셨다.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내 가족을 지킬 집을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의 모든 것을 던졌다. 
 

"세탁기에 9달러 60센트에요. 진공청소기는 15일까지 3달러 50센트를 넣어야 하고요. 그리고 지붕 수리비로 아직 21달러가 남았어요"
아내 '린다'가 '윌리 로먼'에게 하는 대사이다. 아버지는 자꾸만 작아지신다.


이런 말도 한다.
"당신은 돈도 많이 못 벌어요. 그렇다고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요."
'윌리 로먼'은 재물도 명예도, 그리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그나마 그를 지키는 건 아내 '린다'뿐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IMF 이후 '아버지'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픈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많은 연극과 영화 소설들이 나왔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대표하는 콘텐츠로서 자리 잡았다. 예전에 EBS에서 "56점짜리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5분가량 아버지를 다뤘던 적이 있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무게는 감히 짊어져 보지 못한 이로서는 그 이름을 부르기 조차 부끄러운 따름이었고 그 죄송스러운 이름이 일의 쳇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킨 죄책감에 잠시 거울을 쳐다 보기 부끄러웠다.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냉혹한 사회와 비정한 현실 속에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어느 누구도 감히 비난하지 못한다. 다만 그의 죽음이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경종을 울릴 뿐이다.

 
이 작품을 또는 이 리뷰를 보고 "오늘 만큼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는 게 어떨까요" 라는 어쭙잖은 말은 않겠다. 판단은 스스로일 테고 적어도 '아버지'라는 이름만 봐도 당신이 무엇을 느낄지 알기 때문에. 다만 굳이 말하자면 아버지께서 런닝머신에서 내려오시기 전에 그 헐떡이는 숨을 다듬으시라고 속도를 줄여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 - sale a salesman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작, 김현탁 연출
2010 1104-1212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주인공 윌리 로만은 원래 전원생활과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생하지 않고 성공하겠다는 심산으로 세일즈맨이 되었다. 30년간 오직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면서 자기 직업을 자랑으로 삼고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두 아들 비프와 해피에게도 그의 신조를 불어넣으며 그들의 성공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타락해 버렸고 그 자신도 오랜 세월 근무한 회사에서 몰인정하게 해고당한다. 궁지에 몰린 그는 장남에게 보험금을 남겨 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 주려고 매일 다투어 온 비프와 화해하던 날 밤에 자동차를 과속으로 달려 자살한다. 그의 장례식날 아내 린다는 집의 할부금 불입도 끝나고 모든 것이 해결된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고 그의 무덤을 향해 울부짖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익숙한 원작의 스토리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간 매번 새로운 공연으로 연극계에 큰 반향을 불러 온 연출가 김현탁과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색깔이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보여 지게 될 것이다.  가족에 의해 소외 된 드라마로서의 윌리보다 스스로의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안개 속에 갇히게 되자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한 인간 윌리에 초점을 맞췄고 물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터로 내 몰린 가장의 존재를 우리들의 아버지인 윌리, 지금까지 사회적 변화의 주축이었지만 지금은 점점 경제적 압박과 문화적 공황에 무방비로 노출 된 권위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가치를 과소평가 당하고 있는 세대들의 현주소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치열한 것인지 또한 축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윌리가 원작의 이야기를 다 끝내고 죽음으로 달려가는 순간부터 극이 시작 되서 플래쉬백처럼 지나가는 삶의 순간들을 서사로 보다는 감각적 체험을 통해 전달하게 된다.





필자소개

조형석.
잘하는 건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아!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신도림역에서 1등하는 거.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는 필자는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아싸! 오늘도 1등! 뭐 맨날은 아니지만요.

 

  1. 사실 아버지만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을 러닝머신처럼 사는, 달리기 당하며 사는 우리도 '아버지'의 모습 같네요... 울 아빠도 생각나지만 난 나에게도 토닥+궁디팡팡 해주고 싶어졌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