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통의 기억, 따돌림 - 파사 무용단 「서랍속의 시간」




공통의 기억, 따돌림

파사 무용단 <서랍속의 시간>


글_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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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커튼이 걷히자, 책상이 반듯하게 줄 서있었다. 익숙한 교실의 모습. 1분단 세 번째 줄에 앉은 그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혼자인 채, 아무 말도 않고. 이리저리 따로 움직이던 팔다리는 결국 말 한마디를 빚어낸다. 점점 들려오는, 아니 내 살결에 닿아오는 몸의 소리.

“나…, 왕따예요…….”


그렇게 침묵, 이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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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서랍 속의 시간>은 내가 본 다섯 번째 무용 공연이다.



‘청소년 감성 프로젝트’란 부제가 달린 이 공연은 학교를 무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누구나 가진 학창시절의 공통의 기억들을 되짚어가지만, 그 사이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다. ‘왕따’라고 불리는. 기억에 없는, 또는 기억은 있지만 생각할 추억거리조차 없는 그 아이를 무대의 중앙에 떡하니 데려다 놓은 것이다. 여전히 말은 하지 못할 테니까, 몸이라도 움직여 보라고.


나도 어릴 적에 겪은 비슷한 기억을 더듬어 간다. 초등학교 때였으니까 소소한 괴롭힘이었다. 떠들지도 않았는데, 칠판에 ‘떠든사람’으로 쓴다든가, 모둠 색연필 통을 일부러 쓰러트리고 나에게 주워오라고 시킨다든가, 바지를 벗긴다든가하는. 지금 보면 장난일 수 있겠지만, 당시 나에겐 너무 무자비한 일들이었다.

확실한 건, 집단 속 개인의 기억은 분명 말문을 막히게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말이 막혀지는 쪽은, 소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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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는 평범한 등굣길의 모습을 그리면서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왁자한 소리가 들리고, 어떤 그룹은 둘이서, 어떤 그룹은 여럿이서, 또 어떤 그룹은 홀로 교문을 통과한다. 학생부 선생님은 예리한 눈초리를 하고 학생들을 검문한다. 그 눈초리는 학생의 눈엔 닿지 않고, 가슴과 다리와 머릿결에 닿았다. 가슴께 단추를 열어 제치고, 치마를 줄이고, 염색을 한, 껄렁한 소녀가 그 눈을 간신히 피해 검문대를 통과하면, 무대 뒤로 비웃음이 들린다. 선생님은 바보가 된다.


교실에 입장한 학생들은 시끌벅적하다, 선생님의 등장에 일순간 침묵이 흐른다. 수업시간에 학생의 움직임은 하나가 된다. 딱딱 떨어지는 비트에 맞춰, 모두 똑같이 교과서를 넘기거나 손을 번쩍 들거나, 죄다 같은 동작은 반복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시선이 칠판으로 돌아서는 순간. 공동체는 일체감을 잃고, 선생님은 또 바보가 된다. 선생님의 뒤통수는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공연이 초반부에서 짚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선생님과 학생의 갈등이다. 학생은 선생님의 권위에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선생님의 권위 위에 올라타 마음껏 놀기도 한다. 선생님과 학생이 여차저차 서로를 기피해 갈 때, 그 무관심의 틈 속에서 왕따가 모습을 드러낸다. 1분단 셋째 줄 그 아이.

 


"학교 근처에는 대단지의 임대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사는 키가 작고 눈에 띄게 까무잡잡한 애가 한 반에 있었는데 뒷머리에 새집을 얹고 다녀서 매일같이 아이들의 비웃음을 샀다. 풍족한 가정환경이 못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머리를 감지 못 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온전히 그 애의 지저분한 성격 탓이라고 여겼다. 말수가 적고, 공부도 못하고, 씻지 않고 학교에 오는 사회 부적격의 아이. 그런 것들은 지각없는 중학교 남자애들을 폭도로 만들기에 충분한 요건이다. 그 애는 쉬는 시간을 친구들의 심부름을 하거나, 레슬링 상대가 되거나 운이 좋으면 엎드려 있는 것으로 보냈다. 나는 애들과 어울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다 힐끔힐끔 그 애를 쳐다보는 것으로 자신의 방조를 면책하고 위로했다.

'난 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심지어는 이렇게 널 동정하고 걱정하기도 해.'


다수에 속하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나 기본적인 안정과 편의를 보장한다. 모두에게 익숙하고 한가로운 시간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끔찍했을 지를 생각하면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고, 나는 안심했다.


또 다른 쉬는 시간. 그 애는 반에서 힘 좀 쓴다는 괴팍한 놈의 레슬링 상대가 되어 이리저리 쥐어 터지다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폭행이라는 게 맞겠나. 무튼, 녀석은 119를 부르기도 전에 그 애를 협박했고, 반의 모든 애들이 가담하여 그 일을 은폐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았다. 선생도, 시건방을 떨던 나도 성가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애는 멀쩡히 복도를 걷다 넘어져 오른 쪽 팔에 한 달이나 깁스를 하고 다닌 것뿐이다. 필기를 대신 해주는 친구도, 밥을 떠먹여 주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다수에 속했다. "

by. 배우 유아인(20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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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등 뒤가 흥건할 정도로 땀을 흘렸다. 숨소리가 가장 격렬하던 그 때, 그 아이는 일방적으로 4명의 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한 후였다. 이리저리 배구공이 네트 사이를 넘나들 듯 4명의 주먹 사이를 헤매던 그 아이는 유독 교복에 땀자국이 깊숙이 번졌다.

여기서 해결사를 자청한 선생님이 등장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학생과 충분히 가깝지 않다. 지나가다 우연히 폭행 장면을 목격했을 뿐, 그런 귀찮은 것들은 자기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작은 배려로, 아이는 간신히 약식의 사과를 받았다. 몸을 대준 대가치곤 너무 작은.


공연 막바지에 그 아이는 드디어, 결국, 예상했던 대로, 높게 쌓여진 책상 꼭대기로 올라갔다. 꼭대기는 분명 학교 옥상을 상징한 것이다. 붉은 의상을 입고 꿈틀거리다가 끝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객들은 그 마지막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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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라고 한다. 2002년에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이 공연을 기획했다고 들었다. 8년이 지난 이야기라서 그런지 조금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봤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번뜩,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같은 패턴이 사라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은 꽤나 선명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우 유아인의 기억처럼, 학창시절의 따돌림은 어쩌면 ‘나’와 ‘너’만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따돌림의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인 것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아로새겨진다. 다만 그것의 새겨진 깊이가 다 다를 뿐. 공연은 그 공통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내가 어떤 소수였고, 어떤 다수였는지.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되어 어떤 무한한 고리를 내 주변에 쏟아내고 있는지.


공연은 그 무한한 고리를 어쩌지 못해, 성급하게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엔딩장면에서 관객석으로 날아오는 종이비행기들이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고, 떨어 졌을 뿐. 비행기는 희망을 얘기하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래, 날지 않고 떨어지는 게 어쩌면 희망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공연장을 나서다가 떨어져 있던 노란 종이비행기를 발견하고는, 주워왔다. 그리고 알았다. ‘누구나 조금씩은 종이비행기를 갖고 있다.’

 

_삽입된 글 출처 :www.cyworld.com/instruct (엄홍식님의 작은 집)



파사무용단 청소년 감성 프로젝트 - 서랍속의 시간
2010 1020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청소년들의 상처를  춤으로 보듬다.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작품은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청소년들의 현 상황과 심각성을 인식하고,
춤의 언어로 접근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꿈과 이상에 대한 도전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교실에서의 일상, 그리고 서랍 속의 꿈
학교라는 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서랍’은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이자 비밀스러운 혼자만의 세계이다. 그 ‘서랍’이라는 작고 내밀한 공간이 지닌 여러 상징들을 통해 들여다본 청소년들을 위한 얘기이다.

청소년들의 무한도전.., 공개오디션을 거치다.
무용을 접해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오디션 과정을 통한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제공.
꼴라쥬(collage)형식과 연극적인 접근을 통해 유머러스한 상황전개.


필자 소개

가재

복잡다단한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수필과 시와 소설, 비문학과 논술을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고 있는 중. 허물을 한 꺼풀 벗겨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요새 글쓰기 너무 힘들어서요(한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