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산예술센터 공동연작프로젝트 - 용감하지도, 선명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너의 왼손」

2010. 12. 3. 16:04Review

2010 남산예술센터 공동연작 프로젝트


용감하지도, 선명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너의 왼손」


 

글_ 아키꼬 







아마도, 조금 과장해서, 10년 전쯤 봤던 만화책이었을 거다.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종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단지 보기 좋은 명분일 뿐이다. 모든 역사를 통틀어 전쟁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발발된다’는 명쾌한 정의를 보았던 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합법적 학살을 자행하는 ‘전쟁’의 기저에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화책에서 다룰 만큼 속보이는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단발마의 비명과 고함과 함께 <너의 왼손>은 서울 명동역에서 벌어지는 한 여인의 권총 인질극으로 시작된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대물’의 여주인공 ‘서혜림’처럼 연극의 여주인공 미영은 외친다. 탈레반에게 인질이 되어 목숨을 위협받는 40일 동안 이 나라는 무엇을 했느냐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무엇을 했느냐고, 왜 자신의 약혼자를 구해내지 못했느냐고. 그녀의 외침은 ‘너의 왼손’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표현이다.

 





전쟁은 부조리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찾을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시지프스가 바위덩어리를 끊임없이 굴려야했던 것처럼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비극만을 양산한다. 종교는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좌절, 슬픔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은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곤 한다. 종교와 전쟁 모두 이성과 합리의 경계 밖에 서 있지만 그 둘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마땅하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부터 <너의 왼손>에 대해 말해 보자. 전쟁과 종교라는 거대한 화두를 담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의미는 현재 한국교회들이 펼치는 선교활동을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주인공들은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고, 결국 2명이 살해당한다. 그리고 2년 뒤, 인질로 잡혔다 풀려난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살해당한 ‘시복’의 약혼녀이자 인질이었던 미영은 현실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쯤 되면 연극을 ‘설마’하면서도 뻔히 그려지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예상이 맞다. 용감하게도 <너의 왼손>은 초반부터 오만하고도 무책임한 선교활동을 말하지만 그 뿐이다. <너의 왼손>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이들의 고통과 살아남은 자의 절망, 전쟁의 폭력에 희생당한 개인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어서 많이 보고, 듣지 않았는가? 특히 미국식 반전영화에서.

 





왜 한국 교회는 왜 선교활동을 펼쳐야 하는지, 무슨 까닭은 형제자매님들은 서슴없이 선교활동을 떠났는지, 국가 정세를 무시하고 굳이 위험한 그 땅으로 가신 것은 또 무슨 이유인지, 혹시 선교활동이 문화적 침략행위는 아닌지 <너의 왼손>은 말하지 않는다. 전쟁의 주체이자, 한국인을 납치하고 살해한 탈레반은 007영화에 나오는 ‘나쁜 놈’ 외에 어떤 의미나 성격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차치하고도 말이다.

 




‘너의 왼손’은 좀 더 용기가 있어야 했다. 보다 선명하고 분명했어야 했다. ‘지금, 이곳’에서의 전쟁과 종교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과 진지한 고찰이 이뤄졌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의 뼈아픈 현실을 직시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2008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선교사가 주인공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고 김선일 씨의 죽음과 어느 교회 선교집단의 납치를 생생히 기억하는 우리를 ‘너의 왼손’은 쉽게 끌어들인다. 하지만 불편한 과거의 상처를 상기시키는 <너의 왼손>은 클리세한 이야기 구조로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른바 용두사미라고 할까? 물론,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비판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냈다면, 전쟁폭력 앞에 고통 받는 개인의 상처로 ‘이 시대의 종교’라는 질문을 막아서지 말았어야 했다.

 

주제 ‘전쟁의 상처’를 소재로, 소재 ‘전쟁터에 간 한국 선교활동’을 주제로 착각해 작품을 오독했을지 모른다는 자문을 던져본다. 혹은 지나치게 기독교에 문외한이라 기독교적 상징들을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만약 주제와 소재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굳이 이 작품을 봐야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검증받은 명작들이 이미 영화로 제법 많이 나와 있고, 손쉽게 구해 볼 수도 있다. 만약 기독교의 상징을 무식의 소치로 놓쳤다면? ‘무식이 죄’라 외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변명할 수밖에.




 

2010 남산예술센터 공동연작 프로젝트

2009년 <오늘, 손님 오신다>에 이은 공동창작 공연으로 올해는 최용훈 연출과 3명의 여성 극작가가 바라보는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흔적들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세 개의 다른 에피소드가 무대에 올려지는 연작 형식의 무대로 구성될 예정이다. 한국 현대사를 밀도있게 다루는 세 명의 여성 작가의 시선과 중견 연출가 최용훈의 통찰력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시대 역사의 단편들을 재구성하여 현재적 삶의 근원을 연극적으로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너의 왼손
김민정 작, 최용훈 연출
2010 1113-1116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여행을 함께 갔던 커플 미영과 시복. 시복은 미영을 지키기 위해 아프간으로 향했지만, 결국 시복은 탈레반들에게 살해당하고, 시복의 시체 중 반지를 끼고 있던 왼손이 잘린 채 돌아왔다.
2년후. 아프간 선교팀 모임에 참석한 미영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그들의 말에 화를 내고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아프간 전쟁의 상처를 가진 강노인과 정소령을 만나고, 자신이 시복과 나누어 끼었던 반지를 가지고 있는 동남아 여자를 발견한 미영은 지하철 인질극을 벌이는데...

 

필자소개
아키꼬
현실과 로망의 경계에서 길을 잃은 30대입니다.

요즘은 무모하지만 민폐는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연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