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2. 18:06ㆍReview
애도한 다음이 궁금하다
- 마임공작소 판, 유홍영 구성·연출「게르니카」
글_ 김해진
1.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삼일로 창고극장 2층의 작은 갤러리를 둘러본다. 그림 <게르니카>로부터 자극을 받아 그려진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의 커다란 뿔과 철제 다리가 이어진 작품, 게르니카의 한 부분이 청색으로 그려진 그릇 둘. 그릇은 모성을 생각하게 한다. 천인형(아이)이 그릇의 품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안겨있다. 공연을 만들어온 과정이 이곳에도 담겨있다.
객석은 다 찼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관객들이 많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모사한 그림이 무대에 놓여 있다. 무대 양옆으로는 극 진행중에 활용될 검은 막들이 서 있다. 배우들은 오래돼 보이는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그림을 소개하는 친절한 설명이 무대 오른쪽 앞에 서 있다. 극장의 왼편 천장에는 비스듬하게 소머리 그림이, 극장의 오른쪽 벽에는 아우성치는 팔들이 그려져 걸려 있다. 제목도 게르니카, 무대에도 게르니카, 설명도 게르니카. 게르니카를 전면에 내세운 공연. 난 무엇을 보게 될까.
2.
우선은 공연을 보며 그림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는 기분이 든다. 분절된 화면과 원근법을 개의치 않는 배치, 예상하기 어려운 평면들의 접합. 유명한 이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들은 액자를 하나씩 들고 액자와 몸의 관계를 탐구하듯이 움직인다. 소도 있고 말도 있고 아이를 잃은 여인도 있다. 아우성치지만 소리 없는 사람들, 빠져나오고 싶지만 다시 액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공연이 그림의 설명서쯤이 되는 건 곤란하잖아?’ 이렇게 생각할 때쯤 공연은 다른 단계로 접어든다.
3.
그렇다면 공연이 게르니카를 더 밀고 나가서 다다른 곳은 어디일까? 두 가지 장면을 꼽고 싶다. 첫 번째는 말(horse)이다. 상체를 벗은 배우가 말이 되었다. 말은 칼이나 건물의 잔해, 번개, 창 등으로 보이는 스티로폼 조각들에 자꾸만 찔린다. 처음에는 말의 쾌활하고 밝은 힘으로 얼마든지 그 조각들을 물리쳤지만 조각들이 계속해서 박혀오자 말의 웃음은 사라져간다. 객석도 말의 순수함을 보고 밝게 웃다가 점차 서늘해진다. 이제 스티로폼 조각들은 훨씬 더 무시무시해 보인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가 떨어지는 미사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은 피할 수가 없다. 말이 울고 움츠러들고 두려워해도 조각들은 또 와서 차례로 박힌다. 뭔지 모를 울분이 속에서 맹렬해진다. 전쟁의 칼날은 말에게 가 박힌다. 끈질긴 반복이 전쟁과 폭력으로 변환되어가는 과정을 객석에 앉아 지켜본다. 무섭고 서럽다. 공연 <게르니카>는 이 지점에서 관객들의 감각적인 각성을 성취해낸다.
두 번째는 여인이다. 핵폭탄이 휩쓸고 간 폐허를 연상케 하는 무대, 검은 천은 폭풍이 되었다가 버섯구름이 되었다가 사람을 집어삼킨 아귀(餓鬼)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검은 강으로 풀어진다. 여인은 이미 죽어버린 아이를 다시 만나 예뻐하고 어르고 안아서 재운다. 고요하다. 그림에 그려진 존재들이 영(靈)의 세계에서 애달픈 자신들을 위무한다. 애도의 시간에 동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4.
"Round two!" 관객들도 나도 웃는다. 배우들은 게임 속의 싸움꾼이 되었다. 게임의 음향효과는 입으로, 게임 속의 펀치와 킥은 몸으로 만들어낸다. 게르니카의 이미지들이 잔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형세로 바뀌어 나가는 것은 재미있다. 공연은 이 장면을 발견해냈다. 웃으면서도, 현실을 마주 보지 못하고 그림이나 게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묘한 자괴감도 생겨난다. 이것이 현재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사정이다.
5.
배우들이 하얀 액자 틀을 중심으로 손이나 몸통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걸 표현할 때를 떠올린다. 배우의 몸이 다시 액자의 뒤로 들어갈 때 움직임의 처리가 불분명해서 순간 배우의 몸도 관객의 눈도 무안할 때가 있다. 그때는 몸이 액자의 바깥에 있는 것도 안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경계의 단호한 휴지기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horse) 장면은 참 좋았는데 감성적인 배경음악이 이 장면을 조금 길게 느껴지게 했다. 음악이 오히려 말의 반복적인 움직임과 그 변화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 장면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음악이 서둘러 설명해서였다.
두 여배우의 교차된 손과 신문을 떠올린다. 신문에 기재됐을 현실이 더 구체적으로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왜냐면 그 장면에서 도드라지는 ‘상처입고 짓밟히고 가두어지고 두려워하는 여성성’이 보편적인 감성의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인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난 여자 배우가 이 장면에서 곤경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팸플릿에 나온 12월 30일의 연습일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홍(유홍영)은 남자배우들에게 액자오브제를 가지고 공간을 탐색하는 작업을 하라고 했고, 여자배우에게는 한 몸에서 수많은 손들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설명해주면서 다양한 실험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여자배우들의 에너지에 대해 정말 오장육부가 튀어 나올 정도로, 정말 어머니의 고통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탐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머니의 절규. 전쟁 속에 아이를 상실해야 했던, 전쟁 속에 삶을 상실한 어머니의 마음은 도대체 어떨까. 직접 경험을 할 수 없기에 간접적으로나마 최선의 공감을 가지려면 다양한 자료를 접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듯하다.’ (조연출의 기록)
피카소는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듣고’ 그렸다. 유홍영 연출은 그림 게르니카를 ‘보고’ 공연을 만들었다. 그림 안에 표현된 전쟁의 참상까지도 ‘간접’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우가 피카소의 시선, 오장육부를 언급하는 ‘어머니의 고통’이라는 넓은 의미의 제시어를 접하는 것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전쟁의 고통과 공포, 상실을 표현하는 과정은 일견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과정을 필요로 할 것이란 게 내 의견이다. 혹시 배우가 가지는 구체성과 연출자가 가지는 구체성이 서로 어긋나 있지는 않은가. 두 여자배우가 겹쳐 앉아 신문을 보고 여성의 몸이 여성에 손에 의해 속박당하는 이 장면에선 고통의 구체성이 휘발된 채, 클리셰만 남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몸을 표현하는 것도 배우의 주체성이 탈락되고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배우의 연기 영역으로 옮겨갈 때 더욱이 마임일 때 그것은 참 미묘해진다.
6.
검은 무대에서 하얀 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하얀 꽃과 나 사이에 유리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꽃이 품고 있는 아름답고 따스한 기운이 내게 건너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그에 대해선 조금 긍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는 지금의 현실이 따뜻한 희망으로 타개할 수 있는 지경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은 구름에서 하얀 꽃을 피워내는 따뜻함, 감동할 수도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이 관객은 그렇지가 못하다. 천안함이 두 동강 나 젊은 목숨들이 수장되고 연평도에 포가 쏟아지고 현빈이 해병대에 입대하는 게 이슈가 되고 총격전 끝에 소말리아 해적들을 무찔렀다고 의기양양해진 정부와 군을 보면서, 구제역 사태에 소와 돼지들이 땅에 파묻히고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작가가 밀린 월세방에서 차갑게 식어버리는 이 현실 속에서 난 무대에 핀 아름다운 꽃이 그렇게 가냘프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삼가 슬픈 마음을 나타내는 조화(弔花)일 테지만 정작 궁금한 것은 애도의 이후이다.
2011 0208 - 0227 삼일로 창고극장
연출의 글
1937년 스페인 내전 게르니카 폭격사건을 화가 피카소는 <게르니카>그림으로 기록하고 그려냈다. 피카소의 회화작품 중 가장 강렬한 <게르니카>는 세로 351cm * 가로 782cm의 거대한 그림으로 20세기 최고의 비극적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피카소의 그림 안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숨어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이 제작되는 과정의 자료를 통해, 기록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한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밑그림이, 수많은 사건들이, 수많은 이야기가, 수많은 이미지들이 준비되어 조립되고 해체되었다가 재조립되어 하나의 그림이 탄생한 것을 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을 그려낸 그림 속을 여행하고자 한다. 그림 속 안에 그림들, 그 수많은 이미지 속을 우리는 탐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표현해보고 그림 <게르니카>를 이미지극 <게르니카>로 형상화시키기 위해 이뤄진 새로운 만남들을 통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도전하고자 한다. 피카소가 우리에게 던져준 작은 열쇠. 그것은 도전 정신이다. 그 작은 열쇠를 들고 우리는 게르니카의 수많은 문을 열고 닫고 헤매면서 그 세계 속에서 진실의 힘을 체험하고 있다. 그 진실의 힘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출연 - 이경렬, 한철훈, 윤태영, 최성재, 심설, 이해나
프로듀서 - 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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