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투인디 릴레이리뷰 - 한강변에서 한강변을 노래하는 “한강의 기적”

2009. 4. 10. 08:3207-08' 인디언밥

한강변에서 한강변을 노래하는 “한강의 기적”

  • 도반
  • 조회수 540 / 2008.09.10

Otis Spann의 <Home to mississippi>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대충 이런 식의 가사다.


나 미시시피로 가네/내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중략)/

(미시시피를) 떠났을 때/누더기 가련한 새끼들은 집 주변을 맴돌고 있었네/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네/하지만 마누라는 이해하지 못했다네 /(중략)/

나 미시시피로 가네/다시는 (피츠버그로) 돌아가지 않겠네

 

고단한 생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중년 흑인 남성의 걸음걸이가, 흥겨운 듯 휘청거리는 블루스와 어우러진다. 허나, 필자가 느끼기에 결정적인 것은, ‘미시시피’다. (그는 진짜 미시시피 주 출신이란다.) 미국 땅 한 번 밟아본 적 없고, 미시시피가 그 중에 어디쯤인지도 알지 못하는 필자이지만, 어쨌든 이 노래는 그 구체적인 지명 하나로 ‘특유의 냄새’를 만들어낸다.

같은 블루스는 아니지만,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대전에는 <대전 블루스>가 있고 대전역 앞에는 그 가사가 적힌 기념비도 있다.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트홈’이 있는 이 노래 속의 ‘대전역’을 ‘서울역’이나 ‘강남역’으로 바꿔 누가 새로 부른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노래(혹은 개그)가 될 것이고, 창작자와 대전 시민들에게는 당혹을 넘어 모독이 될지도 모른다.


이 이상야릇한 서두는 “한강의 기적”의 노래들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밴드 이름부터 ‘한강’을 담고 있는 이들은, 노래의 곳곳에서 그들이 지나고 또 살아가는 동네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양화대교> 같은 노래가 그렇다.


늦은 고속버스 뒤에서/빛바랜 유리창 밖으로

익숙한 길을 지나가면/여긴, 여긴 양화대교

음악을 들어보아도 변한 것은 없었어

 

 

가사의 모태가 되는 상념들은 ‘꿈꾸는 충무로 한복판 낡은 영화관(<한강의 기적>)’을 지나다가 생겨나기도 하고, 방에서 ‘인천에 부는 바람’ 혹은 ‘익숙한 바람을 듣(<인천 바람>)’다가, 혹은 ‘신대방 삼거리로 가는 152번(<신대방 삼거리로 가는 15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지명의 사용은 단지 ‘특이해 보임’, 그리고 ‘진솔해 보임’에 그치지 않고, 가사 속 내러티브와 어우러져 작자 특유의 정서를 독특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데 한 몫을 한다. 예를 들어, <신촌 로터리>의 하늘빛은 그냥 ‘신촌의 하늘빛’이 아니라, ‘신촌 로터리에서 길을 잃’어, ‘보이는 백화점에 들어갔’다가 ‘화장품 냄새에 섞인 냄새에 지쳐 나왔’을 때 보이는 하늘빛인 것이다.

이렇게 노랫말 속에 어떤 풍경이나 심상이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그리고 진실성 있게 그려진다는 것은 좋은 노랫말이 지녀야 할 미덕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필자는 생각하는데, 이러한 면에서 한강의 기적의 노랫말들은 홍대 앞에서 불리어지는 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눈에 띈다고 여겨진다. 더더군다나, 삼인조 밴드 편성으로 결코 말랑하지 않은 사운드를 지니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욕심을 구현하고 있으면서도, 가사가 묻히지 않고 공연에서도 잘 들리도록 고민한 흔적(이거, 생각보다 많은 밴드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이 곡마다 묻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들을 ‘좋은 노래를 만드는 밴드’라 평할 수 있다.


서울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서울을 노래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반대로 서울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서울을 노래하지 않고 저 멀리 어딘가의 장르, 어딘가의 노래 어법, 어딘가의 정서만을 따르고 있다면 그것은 슬픈 일일 것이다. ‘맨체스터 사운드’나 ‘글래스고의 챔버 팝’처럼, ‘서울 북서부 밴드 사운드’, 혹은 ‘한강변 로큰롤’ 등 이름 붙이기에 따라 다른 ‘여기, 이곳의, 우리의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서울 어디께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또 노래하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밴드 “한강의 기적”은 그 중의 하나로, 한강변에서, 한강변에 사는 자신들 혹은 거기 있는 사람들에 관해 노래하는 밴드다.

보충설명

구성원: 주영찬(기타, 노래), 주영호(베이스), 윤주현(드럼)
홈페이지: http://club.cyworld.com/miracleofhanriver
공연안내: 프리마켓, 빵, FF, 쌤 등에서(각 홈페이지 참조)

필자소개

도반
2005 옴니버스 음반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참여
2007~ 라이브클럽 빵을 중심으로 공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