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편소설극장전 : 개는 맹수다 - 나와 배우들의 이야기

나와 배우들의 이야기
- 단편소설극장전 두번째 작품 : 양손프로젝트 「개는 맹수다」

  

글_ 정진삼


나리
. 그때 거기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해서 말하려고 해. 무대는 그동안 봐왔던 가득 찬 공간과는 뭔가가 달랐지. 딱히 꾸밈이 없었으니까. 소극장의 벽돌 뒷벽이 그대로 보였어. 오른쪽 기둥에 기대어진 나무 의자가 있었는데 어떤 배우가 나와서는 뭔가 분풀이를 하듯 나뭇가지 회초리로 의자를 휘갈겨 댔어. 초반부터 감정을 분출하고자 하는 모습이 뭔가 색다른 듯 했어. 나리. 지금 하는 이야기는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 누가 누군지 혼동할 수도 있을거야. 그들은 극중에서 딱히 이름이 없거든. 이 연극은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겨온 작품이야. 일본의 유명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세 개를 엮었다고 해. 그런데 왜 이름이 없냐구? 이야기는 나는...’ 이라고 시작되는 1인칭의 소설이야. 화자의 이름은 거의 불리워지지 않아. 그저 무대 중심에 선 배우가 바로 인 셈이지. 배우란 사람도 세 명이나 되니, 그 만큼의 가 있는 거겠지. 관객들도 그 에 몰입하여 자신의 이야기로 알아들으니 극장에서는 수많은 나가 있었지. 편의상 배우들을 양배우, 손배우, 그리고 여배우라고 부르도록 할게.

 



나리. 첫 번째 에피소드는 주인어른의 아들인 나와 우리 집 하녀인 오케이에 대한 이야기야. 손배우가 나와서 오케이를 때리고 못살게 구는 역할을 했었지. 남은 두 배우는 손배우를 거드는 역할을 했고. 오케이는 나, 그러니까 손배우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게 돼. 나는, 아니 손배우는 오케이가 만사에 느릿느릿, 굼뜬 모습이 보기 싫었던 거야. 하인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맞아도 싸!, 라고 생각했더래. 허나 오케이는 집에서도 이렇게 맞은 적이 없다며 하염없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지.

세월이 흘러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르지) 나는 보잘 것 없는 소설가가 되었고, 오케이는 번듯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 그래, 우린 마주치게 돼. 물론 나를 발견한 것은 오케이의 남편이었고, 그 남편은 내 앞에 서서 아는 척을 하지. 이젠 움츠러드는 쪽은 바로 나야. 허나 오케이를 패고, 굴욕을 주고, 울음을 터뜨리게 만든 장본인에게 오케이의 남편은 깍듯이 대했지. 기껏해야 못나가는 소설가인 나에게 오케이를 지도해주셔서 고맙다고, 대단한 분이라고, 주말에 찾아뵙겠다고 나를 더욱 황송하게 만들었지. 뒤바뀐 관계가 주는 아이러니가 참 재미있었지. 그 극적인 상황이 주는 여운이 묘하더라구.


 


나리
. 두 째 이야기는 나와 개의 이야기야. 두 번째 작품도 뭔가 백수건달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었지. 과대망상에 겨운 것을 보니 마치 글을 쓰는 사람 같더라. 개를 맹수라고 무서워하며 자신만의 맹수론을 설파해나갔는데... 그 와중에 저가 본 개의 모습을 묘사하고, 흉내 내고, 들려주는 모양새가 제법 공감이 되고 우스꽝스러웠어. 어쩜 그렇게 능청스럽지. 뭐랄까 굉장한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편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거야.

나리. 멍멍 짖는 개소리들과 흥겨운 배경음악으로 무대 위는 이내 왁자지껄 해지지. 한 배우가 호들갑스럽게 설명을 하고나면 나머지 두 명의 배우가 이를 재현하고, 그러면서 무대는 연상 작용으로 인해 계속해서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기를 반복했어. 세 명의 해설자들의 서로 치고 나오면서 사건을 설명할 때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고, 맨발로 지팡이를 짚고 사뿐사뿐 무대를 걸을 때는 마치 어릿광대들 같았어. 군데군데 적절한 마임과 디테일한 움직임 등으로 다양한 연기양식들을 선보였지. 그 전까지 연극은 배우들이 배우들끼리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서 이번 무대가 참 신기했어. 마치 소설가가 직접 나와서 관객이랑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콩트처럼 풀어서 보여주는 것 같았으니까.


, 그들의 연기에는 뭔가 특이한 점이 있었어. 맞아, 그들의 연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어. 그러니까 원래 배우들은 연기가 있잖아. 그런데 저들은 옛날 연극, 혹은 사극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연기법 대신에, 그냥 자연스럽게 화내고, 칭얼대고, 소리 지르, 웃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내뱉는 모습이었지. 생각해보니까 그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말과 행동과 흡사했지. 그러니까 저 양-손 배우들이 실제 생활에서도 그러하듯이. 그래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졌지. 일상에서는 그런 모습이 다반사지만, 무대에서는 그런 표현이 많이 없으니까.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묘하게 몰입과 공감을 더해 주었던 것 같아. 게다가 뭐랄까, 뭔가 반복되고 발전되는 말의 진행이랄까? , 연극에도 리듬이란 게 있다면, 저들은 다양하게 박자를 타고 변주하면서 관객들을 지치지 않게 배려해주는 클럽의 DJ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다음에 또 만난다면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그때 거기의 무대에서는 그 흐름에 매료될 수밖에 없더라구. 내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내가 다 신기할 노릇이네.

 

 


나리
,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게. 개를 싫어하던 나는 어느 날 어린 강아지를 발견해. 그리고는 자기 집까지 쫓아온 그 강아지를 쫓아버리는 대신에 또치라는 이름을 지어주지. 또치의 성장이 재미있어. 세월이 흘러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르지) 또치는 큼지막한 개가 되지. 개를 키워본 주인이라면 공감이 갈 법한 디테일한 변화를 잘 포착해서 보여준 손배우 덕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지. 물론, 점점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준 양배우와 여배우의 모습에서 웃음이 터졌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연극성이라는 게 있잖아. 연극성, 연극을 연극답게 만드는 성질이겠지. 내 눈앞에 뭔가 없는 데 있다고 믿게 되고, 가짜라는 걸 알지만 진짜로 속아줄 수 있는 그 것.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관객들이 뭔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빠져들게 되고, 또 그것이 다 지나간 다음엔 그러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순간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문학성이 연극성으로 변이되는 과정도 재미있고.


, 두 번째 에피소드는 그 막을 내리면서 비굴한 개연기를 하던 양배우의 표정이 압권이었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미소 짓는 주인을 흉내 내며 씁쓸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던 모습. 더 이상 맹수가 아닌 가축으로 길들여진 그의 모습. 인간화된 짐승들의 아이러니한 내면이랄까. 야성이 인성을 만나면 굴종과 불순을 감수해야하는 걸까.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거겠지. 개는 맹수다! 라고 말하는 쪽의 나약함과 그 속에 감추어진 잔인함이 엿보였지. 타인을 학대하는 자는 결국 자신도 학대당한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었던 거 같아. 강자와 약자를 대면하면서 모습을 바꾸는 인간의 모습. 이 배우들이 일본의 근대 소설가를 택한 이유도 그러한 공감에서부터였겠지. 그렇게 보면, 단편소설을 극장에서 만나는 이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텍스트를 거울삼아 관객이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기회인 거 같아. 관객들은 두 번째 에피소드가 좋았나 봐. 시종일관 깔깔대며 극의 리듬에 동참하더라구. 내 생각엔 배우들의 연기도 맛깔났지만 원작의 인물들에게서 보여 지는 현대적인 느낌, 허풍과 과장이 섞인 소시민적인 모습이 우리에게 잘 맞는 게 아닌가 싶어. , 연기에 이어서 작품의 의미까지 논하다니, 정말 내가 할 말이 많았던 연극인가 봐, 나리.

 

 

, 이제 마지막 이야기야, 나리. 열두 개의 의자가 무대를 향하고 한 사람들의 독백을 기다리고 있어. 두 배우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독백하는 그 사나이를 향해 귀를 기울여. 열두 명, 그 중에 하나. 나중에 극을 보면서 알게 되지만 이번엔 역사적 실존인물 유다의 이야기야. 그러니까 나와 하녀, 나와 개의 이야기를 지나 이번엔 나와 예수의 이야기지. 우리 관객들도 이번엔 역할이 있었어. 무대 위 나의 고해를 판단하는 심판자였던 거야. 우리 앞에서 유다는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호소하지. 무대 위엔 3명의 유다들이 끊임없이 독백을 하고 있었어. 유다의 나이가 서른셋이라더군. 예수와 동갑이었지. 그러고 보니, 무대 위 양배우도 서른셋 정도 되어 보였어. 그래서일까, 어쩌면 그 나이 그대로 유다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모습이 더욱 실감을 자아냈어. 이천년 전 서른 세 살의 유다와 예수와 양배우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리,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거기의 연극이 내 속에 있는 뭔가를 자꾸 건드려. 처음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언제부턴가 거기서 벗어나 배우 그 자체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끔 된 거야. 연기라는 게 뭘까, 연극이라는 걸 왜 하는 걸까. 무대와 객석은 무엇이 다를까. 나리, 신기하지. 어떤 작품을 보면 멀쩡해 보이던 자기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지. 엉망진창 우겨넣고 살았던 내 속내가 무대 위에 나타나는 거지. 이런 것들을 저 배우들이 했다고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야. 저들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최소한 나를 변화시키고는 있잖아.

 

나리, 유다의 눈에 비친 예수는 애증의 대상이었어. 유다는 존경과 동시에 경멸을 보냈었지. 심리가 복잡했어. 동갑내기 구원자에 대한 질투가, 남성에 대한 질투로 변하기도 했지. 어느덧 집착과 소유욕으로 변질되어 버린 유다의 신앙. 인정받지 못한 자가 이렇게까지 추악해질 수 있다니. 결국 예수를 팔아버릴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 유다는 자신의 고독함을 숨기지 못하지. 허나 예수는 그 마저도 쓸쓸함을 왜 그리 드러내느냐, 위에 계신 아버지가 알아주실 텐. 그리고 쓸쓸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매몰차게 말하지. 유다의 반발감과 부끄러움은 극으로 치닫게 돼. 그래서 결국 유다는 예수를 죽게하지.




나리. 빈 무대는 어느덧 의자로 포개어지고, 높이 쌓여나가며 권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어. 높아지면서 위태로움도 표현되었지. 열 두 개의 의자가 제자들의 자리가 되기도 했고, 제일 끝으로 밀려난 유다의 기분을 절묘하게 표하기도 했지. 마지막엔 눈부실 정도의 조명이 무대를 비추더라. 어두움과 그늘을 없애버리는 강렬한 빛의 내림. 그 구원의 빛줄기 아래 죄 많은 자는 도저히 자기의 몸을 감출 곳 없어 방황하지. 그 와중에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건 쿵하고 떨어지는 돈뭉치 소리였어. 그제야 나도 정신을 차렸지. 그 소리는 작품 중간중간 들려왔던 효과음이기도 했어. 무엇을 의미하고자 했을까.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 혹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 단지 돈뭉치가 떨어지는 소리였을 뿐인데, 내 마음을 오래도록 울리다니.

나리. 강렬한 몰입 때문인지 한 시간 반은 쏜살같이 흘러가. 배우들에게 확 붙들렸다가 다시 놓여난 기분이야. 궁금해. 연기자란 어떤 것일까. 저런 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도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 하녀도 되었다가, 개도 되었다가, 예수도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빈곤함과 몰인정 속에, 마치 그 시대 예수가 아닌 유다처럼 분투하는 저 배우들의 모습을 보니, 이 세계에서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나한테 그 임무는 어려울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나리 

그래. 나리 나도 저런 걸 하고 싶어. 나에게 저런 게 허락될까? 기회가 있을까? 답이 안 나오. 그러나 무대 위에 선 저들도 처음부터 연극을 한건 아닐거야. 저들도 나와같은 순간을 맞이했겠지. 무대를 동경하고, 존경하고, 질투하게 만든 그 순간. 내가 나를 변화시키고, 또 남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면... 정말이지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 이런 말까지 하다니... 연극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어주는군. 골치 아프게.

, 여기까지. 그때 거기서 내가 보고 느낀 걸 지금 여기의 너에게 들려줬어.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다음에 또 해줄게. 그럼 이만, 나리.

 


양손프로젝트 - 양종욱, 손상규

양손프로젝트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드라마에 가장 정확한 형태의 공연을 창조해내고, 어떠한 형식이든 유연하게 적응해낼 수 있는 훈련된 배우중심의 연극그룹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대다수의 극단들이 연출주도의 작업방식과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가는 것과는 달리, 배우들이 기획단계부터 참여하고 작품선정과 공연의 형식을 포함한 방향성까지도 결정, 주도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 주요활동
2009 서울프린지 참가작 「십이분의 일」 @포스트극장
2009 프로젝트 빅보이 선정 「십이분의 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2011 단편소설 극장전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 개는 맹수다」 @산울림 소극장



단편소설극장전
양손프로젝트 - 개는맹수다
2011 0615 - 0619  산울림소극장

양손프로젝트의 ‘다자이오사무 단편선 <개는 맹수다>’ 는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중기 단편 인「황금풍경」 「축견담」, 「직소」 세 개의 단편을, 각각의 에피소드에 적확한 서로 다른 연극형식들로 담아내고자 한다. 한국의 이상과 비견되는, 일본 젊은 천재작가가 남긴 치열한 자기고백과 같은 소설 텍스트의 색다른 변주를 모색한다.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하여 여러 역할을 오가면서, 작가의 독특한 감수성과 개성 있는 필력으로 그려낸 인물의 심리를 밀도 있게 구현하고 재창조하고 있다.

원작 - 다자이오사무
각색, 출연 - 양손프로젝트
연출 - 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