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동네박물관 - 코끼리들이 웃는다

동네의 시학, 박의 미학

<동네 박물관>

코끼리들이 웃는다

글_정진삼

바야흐로 거리예술의 계절이다. 좀 더 보태면 거리 예술의 시대다. 주관객층인 일반시민들을 배후로 지역과 축제에서 존재이유를 증명하더니, 최근에는 커뮤니티 아트라는 동시대 화두와 결합하여 기세가 등등하다. 물론, 그만큼 책임과 고민의 폭도 깊어진다. 현장성, 흥행성에 충실함으로 그 임무를 완수했던 거리예술이 이제는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고려해야 지점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지역과 소통이 가능한가, 축제의 맥락과 어울리는가, 진정한 의미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기본 질문은 작품이 상연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특정 장소에서 거리 예술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공공성, 공익성과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만만하게 뵈지만, 속으로는 대내외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대 거리예술의 숙명이 되리라.

지난 4월, 청계천에서 있었던 한편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청계천’ 이 공연예술의 공간이 된지 오래지만, 이번에는 가시적인 ‘장소’ 로서가 아니라, 숨겨진 ‘공간’ 으로서 ‘을지로3가, 입정동, 산림동’(이하 입정동)이 그 대상이다. “코끼리들이 웃는다” 라는 특이한 팀명의 이 그룹은 지난 겨울, 마을잔치 <동동冬動)>을 벌이더니, 올 봄에 본격적으로 전시와 이동식 퍼포먼스를 결합한 <동네 박물관>을 선보였다.

 

1. 을지로 3가 혹은 입정동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입정동이라는 생소한 공간에 대해 알아보자. 이 곳은 큰 길과 개천 사이, 을지로와 청계천 중간에 자리하고 있으며, 금속과 주물, 공업사 등이 밀집되어 있는 철공동네다. 독립적인 작업장으로 운영되는 가게들은 디자인과 수요에 맞추어 제품들 - 이를테면 큰 설비 내부에 들어가는 정교한 기계부속 - 을 수작업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 면에서 동네 사람들은 나름대로 ‘장인(匠人)’ 인 셈이다. ‘입정동’ 이라는 명칭에 ‘갓을 만드는 집의 우물(笠井洞)’ 이라는 유래가 있으므로, 역사적으로도 그런 동네가 맞을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라인에 맞추어 관련업체와 음식점과 다방, 구멍가게 등의 점포들도 이어져 있다. 거리를 누비는 이동식 노점상도 작업에 필요한 생활용품 등을 취급한다. 배달커피는 천원, 다방에서 마시면 2천원이라는 특유의 계산법이 있을 만큼, 복잡다단함 속에서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갖는다.

철물과 제작을 주된 업으로 한다는 점에서 문래동과 비슷하나, 입정동은 비교적 넓고 위치가 드러나 있는 문래동과는 다른 미학적 지평을 갖는다. 트럭이 너끈히 오가는 거리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골목의 너비에서 비견되는 것은 생산량만은 아닐것이다. 장소에 따라 규정되는 거리예술 작품의 특성상 두 동네는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유치한 간판이름, 쇠를 가르는 소음과 철을 태우는 냄새. 좁고 빽빽한 골목을 따라 신경을 자극하는 공감각들이 해소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거리. 이것이 입정동의 첫 인상이었다. 한 블록 뒤 청계천의 정리된 미관과는 사뭇 다르다. 얼핏 보아도 공연 장소로서 불편함을 갖는 공간임에 분명하다. 지역이 갖는 폐쇄성, 은밀함, 어수선함 등에는 이유가 있을 터, 이 곳은 작업에서 발생하는 공해가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내면화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난점들을 ‘코끼리들이 웃는다’ 팀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들은 외부인들에게 심미적 감각을 해치는 자극들이 거주민들 입장에선 불가피한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자극들과 노쇠함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활기’ 를 잃지 않으려는 공간의 분위기를 감지하였다. 구성원의 2/3 이상이 남자들이고, 섬세하면서도 육체적인 노동을 수행한다는 점을 동네의 개성으로 주목한 것이다. 나아가 코끼리 팀은 기존의 청계천 아트 프로젝트의 미적인 채색이나, 지적인 유희와도 거리를 둔다. 소박하면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입정동 스타일의 철제수공예 - 이동식 박물관/극장을 자체 제작한 것이다.

 

2. 밀고 끄는, “동네 박물관”

지하철 3호선 을지로 3가, 6번 출구를 나와 몇 미터 떨어진 골목의 어귀에 주차(?) 되어 있던 동네 박물관이 서서히 움직한다. 검은 복장에 진분홍 가운을 쓴 사람들이 수레를 운전한다. 둔중한 물체가 아스팔트 길을 덜덜거리며 나아간다. 밀고 끄는 행위 속에서 매끈한 운동이 아니라 힘겨운 노동이 발생한다.

골목 안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서니 철물을 가공하는 엔진소리, 커팅소리가 여과없이 귓가에 파고든다. 동네 박물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인분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또 왔어?” 하며 말을 보태기도 한다. 좁은 골목을 조금 더 갔을까, 작은 공업사 가게와 가게 사이, 누구의 앞마당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자리에 박물관이 멈춰 섰다. 이를 따르던 사람들의 발길도 멈추고, 근처에서 작업하던 손길도 멎었다. 신기한 듯 사람들도 몰려든다.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두근두근 블라인드 막이 올라간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님과 함께" 아가씨 버전이다. 이에 맞추어 손가락 인형의 등장. 코끼리팀 멤버들의 얼굴가면을 쓰고 깜찍한 포즈를 취한다. “오빠~응응” 의 추임새에 맞추어 이어지는 “겟 올라잇~”의 후렴구가 낯간지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인형극이 끝나면 이제 남진 버전의 원곡이 흘러나온다. 40년 전 히트곡 가사의 내용이 새삼 의미심장하다. 좁다랗고 답답한 현실이 아니라,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과 사랑하는 ‘님’ 을 꿈꾸었던 옛 입정동 청년들의 모습이 어렴풋 떠오른다.

첫 번째 장에서 '손'을 썼다면, 이번에 '발'이 프레임 안에 등장한다. 남진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던 건들거림인지, 혈기왕성했던 지난 날의 춤사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즈려 밟는 스탭이 정겹다. 중간에 다리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쑤욱 나타나는데, 동네 아저씨의 얼굴이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나오자 웃음을 터뜨렸고, 얼굴의 장본인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호모루덴스의 배우인 김유진이 보여주었던 움직임은 강렬하고 압축적이다. 세 번째 장에서는 기계소리를 연상케 하는 비트에 맞추어, 기계를 운용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반신으로 형상화했다. 선반 장치를 가동하는 제스처가 이어진다. 돌리고, 조이고, 풀고, 밟고 하는 반복적인 동작은 입정동을 상징하는 ‘액션’ 들을 정리하여 풀어내었는데, 관객들은 그 익숙한(?) 광경을 오히려 신기한 듯 몰입하여 바라본다. 다시 블라인드가 닫히면, 손이 쑥 나와서, 입정동의 지도위에 놓인 자석을 이리저리 옮겨놓기도 한다.

동네 관객들은 극에 집중하는 동시에 간섭도 자유로웠는데, 이를테면 지도를 보고 저거 예전에 중국집에 배달 지도였다면서 웃거나, 그 가게가 망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혀를 차는 식이었다. 외부에서 온 관객들에게 정보를 주어 이해를 돕는 현지 가이드가 된 격. 뿐만 아니라 박물관 안에서 움직임을 행하는 배우를 보고 “떨어져, 조심해” 하는 괜한 걱정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우고는 잠시 기다려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찾아온 사람이나 맞이한 사람이나 두루두루 친밀하게 얽혀드는 야릇하고 유쾌한 체험. 물리적으로 좁은 거리는 사람들간의 심리적 거리 또한 좁히게 만들었다.   

곧이어 배우는 몸을 거꾸로 뉘어 좁은 공간에서 전신을 드러낸다. 작은 프레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 관객들은 경탄과 우려를 동시에 표한다. 무대의 뒷벽과 바닥을 쓸면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정지된 물구나무서기 상태에서 되레 관객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광대의 표정. 사지로 사방을 지탱한 배우는 눈빛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유롭게 이를 수행해낸다. 거리예술가에게 필요한 덕목이 지구력과 근력(?)임을 실감케 한다. 관객들은 퍼포먼스를 마친 배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본격적으로 박물관을 둘러 볼 차례. 네모반듯한 박물관은 상하좌우로 파트가 나뉘어져 있고, 층층과 겹겹의 구조로 되어 있다. <동네 박물관>이라는 공연 타이틀 그대로 '지역' 을 '압축' 한 셈이다. 팀을 이끌고 있는 연출가 이진엽이 디자인 설계를 맡고, 제작은 이 동네의 사장님(여긴 모두가 사장님)이 했단다. 상호 분업화된 협업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입정동의 방식을 온전히 승계한 작품이다.

코끼리팀은 기존의 박물관식 관람법을 지양하는 대신,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를 의도하였다. 서랍식의 공간 내부에는 관객들의 서프라이즈한 반응을 기다리듯 꼭꼭 숨어 있다. 폐쇄적이고 은밀한 동네의 부정적 특징을 박물관을 즐기는 방식으로 응용한 것이다. 소장품은 무엇일까? 왼쪽 상단 구역의 철제문을 열면, 또 다시 목재 서랍장이 나타난다. 무엇일까, 호기심을 갖고 열어보면, 웬걸 오래된 구식 라디오와 사진과 그림들, 지금은 사라진 다방의 연락처다.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그 물건들이 다시 보인다. 하나같이 휴식과 여유에 대한 소박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 옆에는 크기대로 맞추어진 기계 부속들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다. 흩어져 있을 때는 어떤 미적인 원리도 발산하기 어려웠지만, 한 자리씩 채우며 들어서 있는 철제 부속들은 뭔가 신선한 미감을 뽐낸다. 나사 구멍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니, 빛을 못봐 그늘진 입정동 거리가 선명한 마이크로 필름과 조명효과로 환하게 밝아져 있다. 훔쳐보는 시선으로 가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장님들의 모습과 맞닥뜨리니, 한숨과 웃음이 교차되는 재치만점의 전시방식이다.

서랍을 열어보니 이번엔 미술관이다. 작은 사이즈 캔버스에 색색으로 곱게 칠해진 공구들이 나타난다. 그림은 죽은 대상(情物)이 아닌, 살아있는 의미로써 정물화가 된다. 이 그림은 워크샵 기간동안 동네 사장님들이 직접 채색했다고 한다. 입체적 일상 오브제가 다시 평면으로 미술품으로 돌아간다는 역설이 재미있다. 역설은 이것만이 아니다. 두번째 서랍을 열어보면 한손에 쥘 수 있는 앙증맞은 금은색 소품들이 귀금속마냥 곱게 놓여져 있다. 자세히 보니 남성용 소변기다. 숫적으로 다수를 점하는 이 동네 남성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은 마치 보석같이 귀하다는 의미와 하루빨리 화장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있다.

극장의 좌우측면에는 미디어장치를 이용하여 입정동의 지난 시간들을 현장에서 느낄수 있게 해준다. 15분간의 전시 동안 아저씨와 아줌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어서 소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아저씨의 자부심 섞인 말이 뇌리에 남는다. 소장품 가운데 가장 돋보였던 작품은 한 아주머니가 입정동 삶에 대해 원고지에 풀어쓴 <개미들의 삶>과 <인생사>라는 제목의 시(詩)였다.

하단의 수조는 입정동의 폐허를 들추어 발견한 적재물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30년 동안 잠들어있던 물건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이 버려졌을 빈 터의 시간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무가치하고 너무나 빤한 것들에 맥락을 부여하고, 의미를 발생시키는 작업을 통해 입정동의 면면이 재구성되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박물관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산보하는 듯 느린 속도감으로 주위를 살피면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21세기를 사는 입정동 만보객들은 산업화의 공간에 어중간하게 서있는 자기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공연 중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정지’ 와 ‘사이’ 도 예술과 일상의 조화에 대해 거듭하여 고민하게 해주었다. 어느덧 입정동은 예술체험의 공간에서 사유의 공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3. 거리 위에 시詩를 쓰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외젠 아트제는 자신의 사진 속의 지저분하고 낯선 도시 풍경에 대해서 그것이야말로 도시의 참모습이라고 말했다. 꾸미지 않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의미다. 친숙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도시의 뒷골목을 마주하면서, 압축 성장해왔던 지난 근대화의 시간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된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도시근로자의 저임금과 근면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을테고, 열악한 환경을 묵묵히 감내해온 이들의 일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그런 점을 떠올려보면, 입정동 동네사람들의 사정과 취향을 부정하지 않고, 그 존재감을 되살려준 코끼리 팀의 방식이 더욱 의미있다. 섬김의 자세가 지역/공공 예술의 기본임을 이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수공업자인 지역민들을 예술가로 만드는 ‘기획’ 을 통해, 미학과 참여라는 상충되는 공공예술의 과제를 해결해냈다. 한편으로 관객층의 다수를 점한 동네 사람들을 고려하여, 그들의 사연과 염원을 담은 스토리텔링은 전시와 퍼포먼스에 담아내었다. 

이 작업의 의의는 그간 ‘눈에 띄지 않았던’ 입정동이라는 공간을 발굴하여, 이를 소개한데 있을 것이다. 수많은 극장을 건축해서 새로운 예술 공간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숨겨진 공간을 찾아냄으로써 예술의 영토가 넓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지역민들은 자존감이 더해지고, 외부에서 온 일반인들과 특별한 유대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동네를 압축한 전시장’ 이라는 문화인류학적 기획만큼이나 '움직이는 극장' 이라는 공연예술적 아이디어도 뛰어났다. 거리예술 관객들은 관극을 방해하는 외부적 요소들에 대하여 불쾌감을 갖게 마련인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의외성을 통해 심리적 불안감을 잠재웠다. '코끼리들이 웃는다' 는 기상천외한 이름에 걸맞는 재기발랄함과 장난스러움도 유쾌함을 더해주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네 거리예술에는 난장과 벌림의 미학만이 아니라, 압축과 소박의 미학도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좁다란 골목이든, 감추어진 거리든, 내면화된 공간이든, 어디든지 찾아가서, 자세를 낮추어 귀기울이는 방물장수 방식이 한국형 거리예술의 새로운 모델임을 증명해낸 것이다.

누군가 거리예술에 대해 ‘거리 위에 쓴 시(詩)’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그 표현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서울> 이라는 책을 꺼내어 오랜 시간을 접혀져 있었던 한 페이지를 바로 놓는다. 지면위에 새겨진 ‘입정동’ 이라는 제목. 이제야 비로소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한편의 아름다운 시였음을 알게 되었다. 거리예술 만세!

** <동네박물관> 공연 영상 보러가기 >>>>> http://vimeo.com/42062012 

***사진_1. 동네박물관 포스터 / 2. 입정동 항공사진(daum.net 거리뷰 참고) / 16. 동동동 거리잔치 포스터 / 3~15. photo = jin3

 

 

"코끼리들이 웃는다" 는 연출가가 이진엽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흥미롭고 독특한 방법론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려고 한다. 공연장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 대중들과 만난다. 그들의 공연에서 관객은 객석에서의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공연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작품을 함께 완성해 나간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공간에서 공연예술을 발전시키는 것, 삶과 예술이 공존하는 환경, 이런 것들을 지향하는 단체이다. 2011년 하이서울 페스티벌에서 플래쉬몹 퍼포먼스 <글로벌 리버 프로젝트 를를를> 을 선보였다. 작년부터 입정동 프로젝트를 시도하여, 12월 동네 잔치 <동동동>을  시작으로 <동네 박물관>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