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故 안현정 작가의 작품집 <달콤한 안녕>

2012. 5. 14. 15:14Review

나는 당신이 살아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 할 것이다

- 故 안현정 작가의 작품집 <달콤한 안녕>

글_조우

그 누구의 삶도 특별하지 않듯이 그 누구의 죽음도 특별할 것은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소멸되어가는 것이고, 그러므로 죽음이란 예상된 결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망자(亡者)가 어떠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라고 해서 절대 다를 것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다른 모든 죽음들에 대한 오만일 것이다. 허나 이 ‘달콤한 안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 ‘안현정’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날개에 새겨진 작가의 사진과 약력들을 보면서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흰 바탕의 검은 글씨로 쓰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또 죽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책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 글은 리뷰이되 리뷰가 되지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단순한 작품집이 아닌 작가 안현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책을 review하는 것은 가능하나, 인간을 review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 언어와 문자로 무엇인가를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에 대한 하나의 은유일지 모른다.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는 어떤 작가든 살아있는 동안 위대한 작가인 게 훨씬 행복한 일일 것이다. 허나 많은 작가들이 죽은 뒤에야 그 가치를 평가받고, 나아가서는 죽었기에 더 평가받는다. (물론 안현정 작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감상(感傷)이란 작가의 몫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맨 앞에 실린 ‘<달콤한 안녕>을 펴내며’라는 글 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안현정,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p.7)

허나 과연 그럴까? 故 안현정 작가가 쓴 수많은 뮤지컬 대본과 희곡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감상이란 절대 순진한 형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드시 그 다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달콤한 안녕’이라는 책을 읽는 데에 있어 작가 안현정의 죽음이 내게는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35세에 세상을 떠난 작가의 추모 작품집이라는 타이틀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 슬픔은 어느 순간 슬픔이 되지 못하고, 거대한 관념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심지어 독자의 감상(感想)까지도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다른 것을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작가’가 무엇이냐는 것.

작가는 무질서하고 인과관계 없는 삶 속에서 인생의 의미와 진리를 찾아 헤맨다. 질서 없는 이 세상사를 개연성 있게 재구성하니 어쩌면 신보다 더 위대한 게 작가다. 작가는 신이 엉망으로 무질서와 비논리로 만든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개연성을 만들어서 비록 현실을 바꾸진 못해도 인간의 상상 속에서 머릿속 세상에서 개연성 있는 세상을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 상상의 세상을 사람들에게 들려줘서 이 무질서한 세상의 고통을 견딜 힘을 준다. (p.12)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는 절대 위대하지 않고, 그렇다고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질서를 부여하는 건 독자 쪽이다. (개연성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세상에 있는 극히 일부분의 질서밖에 보지 못하며, 그것을 보고 난 뒤에도 그게 질서인지 혼돈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본 것이 너무나 거대하여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옮겨 적게 될 뿐이다. 여기서 작가가 하는 일은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을 만드는 것 또한 결국 없는 것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거짓말을 하고 규칙을 만들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그것이 마치 하나의 세계인양 내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상의 세상을 통해 무질서한 세상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건 절대 작가의 몫이 아니다. 작가의 역할은 작품의 마지막 문장 뒤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끝이 난다. 이후의 일들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몫이 된다. 허나 故 안현정 작가가 이런 문장을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절대 작가라는 직업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아마 작가로서 살아가기 위한, 작가이기를 포기하고 죽어버리지 않기 위한, 자기 자신을 향한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었으리라.

20대 때 난 식비를 아껴 가며 글을 썼고 그래서 작가가 되었지만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에게 여전히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세상을 보니 몸과 마음이 다 아프다. (p.19)

누군가 위 글의 첫 문장을 읽고, 아직까지 식비를 아껴가며 글을 쓰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작가에게 저런 삶을 살도록 강요하지 않았고, 어쩌면 작가는 다른 누구보다 더 자신의 삶에 만족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그 다음 문장이다. 작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세상. 여기서의 세상이란 폭넓은 의미에서의 세상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가 뮤지컬과 연극을 하면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시스템이다. 작가들은 알고 있다. 아니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알고 있다. 작가가 작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절대 앓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안현정 작가를 알지 못하고 그녀의 작품을 본 적도 없지만, 그녀가 이 모든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 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안현정의 작품 속에는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지극한 책임감이 담겨있다.

‘한 개의 알 속에 성을 쌓았네. 내가 가진 거라곤 오직 펜 하나. 허나 나의 펜은 나의 칼. 난 영원히 그 칼을 갈고 닦을지니. 내 입술, 내 혀, 내 자궁으로.’ 알겠어요, 서영 씬 서영 씨 펜대를 무기 삼아 가족한테 복수한 거예요. (p.571)

김작가가 생각 없이 휘두르는 펜대에 애먼한 사람들만 다친다구. (p.565)

어쩌면 이것은 작가를 바라보는 굉장히 순진한 태도일지 모른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비웃음거리가 된지 오래다. 시가 더 이상 시적일 수 없고, 이야기가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던질 수 없을 때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다른 두 작가의 글을 쓰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산문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다. 그런데 오웰은 이 중에서도 ‘정치적 목적’에 방점을 찍고 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있던 때였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p.300)

물론 이것은 특정한 작가의 개인적 태도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에서는 이런 태도가 별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오웰의 시대는 전쟁과 광기의 시대였고, 따지고 보면 어느 시대든 그렇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작가가 이러한 태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그 동기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극작가 ‘해롤드 핀터’가 한 학생연극제에서 한 연설문의 일부이다.

저는 할 수 있을 만한 때에 희곡을 쓸 뿐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 날씨가 어떤지에 따라, 하나의 발언도 최소한 스물네 가지도 넘는 다양한 방법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이 자리에 서기가 꺼려집니다. 저는 어떠한 단언적인 발언도 영원할 수 없으며 정형화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발언은 즉각적으로 스물세 가지의 다른 표현들로 수정되어질 테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제가 하는 발언 중 어떤 것도 궁극적이라거나 결정적인 것일 수 없습니다. (해롤드 핀터 『해롤드 핀터 전집1』 p.29)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관점을 정치적인 어조로 피력했던 조지 오웰과, 어떤 말을 하기에 앞서 그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해롤드 핀터 사이에 아마도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위치해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故 안현정 작가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그건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 안현정은, 그녀의 작품집은, 글로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에 주목하기보다는 작가라는 역할 자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이후에 더 많은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녀는 죽었고, 그렇기에 더 이상은 쓸 수 없다. 故 안현정 작가 쓴 뮤지컬 대본 속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너를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다면/너는 죽어도 죽은 게 아냐 (p.280)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했고 또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는 당신을 잊어버리고 당신을 그리워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작품집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란 그렇다. 모든 작가는 마침내 자기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작품이라는 존재로 남게 된다. 그 남겨짐이 서글프다면 그는 작가가 될 수 없다. 허나 남겨짐이라는 것도 실은 작가의 몫이 아닌 독자의 몫일 것이다. 세상의 시스템은 이런 식으로 작가를 더더욱 외롭게 만들 것이고, 어느 순간 작가는 더 이상 작가로 불리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느 곳에서 작가들은 계속 쓰고 또 쓸 것이며, 자신이 사용한 언어와 문자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그 사라짐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슬퍼할 이유는 없다. 다만 조용히 삶을, 혹은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소멸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와 작품과 시대와 사랑과 그 고통까지도 결국에는 망각되어 새로운 기억으로 덧씌워질 것이다. 이건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삶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몇 년 전에 쓴 일기를 우연히 꺼내보았을 때, 그것이 몹시도 낯설어 자신이 쓴 것임을 의심하게 되는 것처럼, 작품도 과거도 점점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신탁(神託)과도 같다. 물론 나도 그걸 알고 있다. 절절히 깨닫고 있다. 그럼에도 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기다린다. 가만히. 아무것도 기억되지 않을 것처럼.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것처럼.

 

 *사진출처 (1. 안현정 작가 유고집, <달콤한 안녕> 앞표지/ 2. 안현정 작가의 뮤지컬 <달콤한 안녕>포스터 / 3. 안현정 작가의 트위터 글 캡쳐 20110628   

  글_조우

  소개_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놀지만 취하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도 아직 중2병인 대한민국의 남자, 글쓰는 사람입니다.

  고 안형정 작가에 대하여

 극작가 안현정은 1977년2월15일에 태어나, 1999년 <어둠아기 빛아기>로 옥랑 희곡상을 받으며 등단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공연예술아카데미와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을 수료한 그녀는 많은 희곡과 뮤지컬 극본, 시와 동화를 남겼다. 그녀는 성실했고, 그녀의 작품에서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성실하고 따뜻했던 안현정 작가의 작품들은 옥랑 희곡상을 비롯, 차범석 희곡상, 대한민국콘텐츠공모전 장려상, 스토리뱅크 창작스토리 공모 당선, 영상작가교육원 시나리오 창작상 등 수많은 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으로 완성되는 안현정 작가의 희곡과 뮤지컬 극본들은 대부분 실제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진지한 작가 정신으로 성실하게 작품에 임하고, 열심히 사랑했던 그녀는 2011년8월4일에 충수암을 이기지 못하고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우리 곁에 남았다. 안현정 작가의 유작들이 무대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날을 기대해본다. (책 본문 발췌)

  유고집 <달콤한 안녕>에 대하여

 희곡과 뮤지컬 극본 양쪽 모두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탁월한 인재였던 작가 안현정은 35세의 나이로 충수암이라는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이 책은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던 그녀의 작품을 한 권에 담아낸 작품집으로, 공연된 작품에서부터 공모에 입상한 작품, 아직 덜 정리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냈다. 골라낸 작품들은 막으로 구성했다. 1막은 그녀를 추억하는 글과 작품을, 2막은 뮤지컬 대본을, 3막은 희곡 작품들, 4막에는 그녀를 추억하는 지인들의 메시지와 안현정 작가의 짧은 연보를 수록했다.  (책 본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