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리뷰] 야구장에서 극장을 생각해보다

 

<공간리뷰> 잠실야구장 LG vs 롯데 / 롯데 vs LG

야구장에서 극장을 생각해보다

리경

 

6월 23일 잠실 야구경기장을 찾았습니다. LG와 롯데, 아 아니 롯데 팬들이 있으니 롯데와 LG 아 아니 LG와 롯... 에, 아무튼 이 두 팀 경기가 있는 날이었어요. 나는 몇 번 LG를 응원하며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있었으나 롯데의 응원이 재밌다는 말이 자자하여 이 날은 롯데 쪽에 앉아볼 요량이었습니다. 특정 야구팀에 대한 지지도가 강하지 않기에 가능이나 한 생각이었겠지요. 어쨌든 이 날은 들어간 입구나 발견한 자리가 롯데 쪽이 되어, 나는 그날 롯데 팬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무대, 즉 경기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야구 중계에 맡기기로 하고, 나는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야구장은 원형경기장이지요. 그래서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무대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내야석에 앉았다면 공격팀에 가깝게 앉아 수비팀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관람하게 되기 쉬울 것이고, 그날의 나처럼 외야석에 앉았다면 상황은 그 반대에 가깝겠지요. 1루 쪽인지 3루 쪽인지에 따라 공격팀 선수를 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달라질 겁니다. 아무래도 3루 쪽보다는 1루에 선수들이 더 많이 나가니까요.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그날의 무대를 즐기는 방식과 포커스가 달라집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다소 분명하기를 기대하는 극장에서는 그만큼 관객석의 위치에 따른 전달이 균등해지도록 노력합니다. 야구장은 이에 비해 관객의 관람 스펙트럼이 더 넓지요. 그래서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서 부터 관람이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또 원형이다보니 온 사방에 있는 다른 관객들을 볼 수 있어요. 두 팀의 팬들이 반쪽씩 나눠 앉다보니 상대편 관객을 마주보고 앉게 되지요. 이런 조건은 응원할 때 그 특징이 잘 살아나는데, 뭔가 서로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예를 들어, 롯데 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LG팬들이 무대를 향해 “야!야!” 를 외칩니다. 그러면 롯데 팀 팬들이 LG팬들을 향해 “닥치고”를 외치지요. 무대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대사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사건발생이 일어난 후 이어지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무대에서 특정한 스토리가 시작되면 관객들이 그 스토리를 이어가는 거지요. 모르겠습니다. LG팬들이 닥치고에 이은 또 다른 대사를 만들어 갈지도.

운이 좋게도, 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앉은 뒤쪽에 저 두 분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둘이 친구 사이라는 걸 파악하게 되었어요. 그게 엄청 흥미롭더라구요. 롯데 쪽에 LG 응원 복을 입은 사람이 있는 것도 그렇고, 친구 사이에 각자 다른 팀을 응원하고 있는 것도 그렇구요. 사실상 나에겐 하나의 작은 무대였어요. 경기의 내용에 따라 둘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라졌고 서로 약을 올리기도 하고 은근히 위로하기도 하였어요. 나는 자연스럽게 경기 진행을 보고는 그 둘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어요. 무대의 스토리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어지니까 나는 예상할 수 있는 심적 상태를 저 둘이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궁금한 거예요. 어떤 대사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제스처로. 네, 즐겼죠. 주변의 많은 관객들이 그들을 즐거워했어요.

그러니 어떠한 관객이 내 주변에 앉느냐도 그날 관람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지요. 내가 어느 정도 관람 조건을 정하죠. 누구와 동행할지, 어느 팀 응원석에 앉을지, 어디 쯤에 앉을지 등. 그 이후에는 내 주변의 관객들과 그 날 야구장을 찾은 관객들의 전반적인 분위기 등에 따라 나는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극장에서도 그날의 관객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 공연 후에 그날의 관객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지만 야구장은 그런 부분이 매우 극대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경기가 진행되며 주변 관객들의 성향을 알아갑니다. 성격은 어떤지, 목소리는 어떤지, 같이 온 사람들 관계는 어떤지, 뭘 먹는지, 등을 금방 알 수 있죠. 응원을 안 한다고 해서 내가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응원 타이밍에 조용히 관전을 하는 내가 드러나게 되요. 야구장의 관객은 반응하는 자로서 그 날 경기에 하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극장은 내가 나서서 큰 소리 내지 않으면 나를 드러낼 일이 좀처럼 없습니다.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고 보는지, 공연 중간에 벨소리가 울리는지, 좀 크게 웃는지, 등의 수준까지만 관객이 드러납니다. 반면 야구장에서의 관객은 명확한 정체성을 입고 앉아 무대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캐릭터와 입장을 드러내게 되지요. 자연인의 그 상태이며, 동시에 특정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서요.

이렇게 관객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가집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여 관객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하나의 스토리로 작용하지요. 무대의 스토리는 관객의 스토리로 이어지며, 관객은 관객간의 스토리를 주고받으며 그 날 자신들의 무대를 다시 발생시킵니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야구의 특징 상 관객은 긴장과 이완의 트랙을 오고 가는데 이 완급조절 안에서 9회 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어느 배우(선수)에게 동화되기도 하고, 무대와 거리를 두고 경기 전반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묘한 긴장감과 터지는 해소감 사이에서 관객은 줄타기를 합니다. 줄타기 놀이가 지치거나 혹은 다른 일로 바쁠 때는 주저 없이 야구장 밖으로 나갈 수도 있지요.

야구장에서의 관객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어떠한 정체성을 입고 역할을 하는 관객으로서 존재합니다. 무대의 스토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됨으로써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일시적인 공동체를 경험하지요. 또 그것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발성을 통해서, 관찰을 통해서, 소통을 통해서, 관객에게는 일종의 해소가 일어납니다. 배우가 무대에서 겪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지요.

야구장에서 본 관객들은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 공간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자신에게 어떤 것이 기대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지요. 그래서 그 역할을 자신이 수행하고 싶을 때 혹은 할 수 있겠다고 여길 때 야구장에 옵니다. 극장에서 관객은 어떤 역할일까요. 극장에 올 때 관객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올까요. 극장에서 관객 자신들이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역할로서 존재한다면 공연을 창작하며 무엇을 생각해야할까요. 야구와 공연의 생리적 태생적 차이를 고려한다면, 반드시 야구장의 모습만이 정답은 아니겠지요. 다만 공연을 창작하며 관객이 무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흡수하기를 기대한다면, 관객을 먼저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자리를 비워보는 시도, 필요 한 것 같습니다.

나는 6월 23일 LG : 롯데 / 롯데 : LG 공연에서,

야구장에서 극장을 생각하는 인물을 수행했습니다.

다음 공연에는, 키스타임 전광판에 나오는 역할 한 번 노려보겠습니다. 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