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6회 서울재즈페스티벌 - 완벽한 주말

2012. 6. 5. 23:55Review

 

완벽한 주말

6회 서울재즈페스티벌

 

                                                                                                                              글_반디

 

 

햇빛도 찬란한 5월 중순, 저는 그간 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다시 백수가 된 것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음악과 자연과 자유가 함께한 주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곳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이었습니다. 다소 비싼 표 값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라인업과 완벽한 날씨 덕분인지 페스티벌이 열렸던 올림픽공원을 찾은 관중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사전구매로 조금 저렴한 양일권을 사 둔지라 비교적 부담 없이 이틀간의 축제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서울재즈페스티벌2012 라인업. 출처: 서울재즈페스티벌2012 공식홈페이지] 

 

19: 이곳이 천국인가?

1.     고상지 & 최고은

19일의 첫 공연은 수변공원에 꾸려진 Spring Garden에서 보았습니다. 호수를 등지고 세팅된 아담한 무대는 제천의 호반무대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적당한 나무그늘과 호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뜨거운 햇빛과 어우러져, 둘러앉은 관중의 마음을 잔뜩 흔들어놓았습니다.

고상지씨는 MBC 무한도전을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반도네온 연주자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반도네온은 아코디언을 닮은 악기로, 아르헨티나 탱고의 대표 악기라고 합니다. 같이 간 제 친구는 처음에 고상지씨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연륜 있는 할아버지 연주자인줄 알았다네요. 하지만 고상지씨는 정말 매력적인 젊은 여성분이십니다. 고상지씨와 그녀의 밴드(기타리스트가 19살이었던 것이 놀라웠어요)는 연주 전에 간단히 연주곡의 제목을 말해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멘트 없이 담백하게 탱고의 아찔함을 흘려주셨습니다. 오렌지색의 원피스에 같은 색의 스카프를 두른 최고은씨가 춤추듯 등장하며 무대의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소리에 공기만 90%인 듯한 홍대 여신들과는 달리 묵직한 울림이 있는 최고은씨의 노래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의 마무리는 최고은씨와 고상지씨의 합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냄새가 나는 그녀들은 수변공원과 함께 빛났습니다. 반도네온의 강렬한 리듬 위에 최고은씨의 목소리가 얹혀지고, 오렌지색의 스카프가 마이크스탠드에서 흩날릴 때 무대 뒤의 호수에서 분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단독 콘서트가 아닌 페스티벌에선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보석 같은 아티스트를 건져내는 재미가 있지요.

 

2.     리쌍 w/ 정인

고상지와 최고은의 공연이 끝나고 저와 제 친구들은 메인 무대였던 Jazz Forest로 이동했습니다. 저는 사실 여기저기서 리쌍의 공연을 좀 보았던지라 그들의 공연은 돗자리에 앉아서 듣기만 할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역시 아는 노래는 따라 부르고 싶은 맛이 있지요. 친구들과 스탠딩 석에서 닥치세요’, ‘갖고싶다 강개리등을 외치며 신나게 즐기고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들의 공연에 대해서는 조금 말이 많았습니다. 재즈페스티벌에서 힙합듀오인 리쌍이 공연을 하다니 재즈팬들에겐 불만일 만도 하지요. 하지만 그들과 함께한 밴드의 훈남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가 의외의 실력을 보여주며 불만을 조금 감쇄시켰습니다.

 

3.     Eric Benét

19일의 서브 헤드라이너는 바로 섹시한 이 남자, 에릭 베네(Eric Benét)였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진작에 맥주잔을 들고 스탠딩석의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뛰어나갔지요. 하지만 악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스태프들이 무대 위를 오가며 약 30분 가량 지체를 합니다. 안내 방송을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선 채로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만 한 관중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계만 바라보았지요. 관중석 여기저기서 불평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연보라색 셔츠에 까만 조끼를 입은 에릭 베네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여성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소리와 함께 불평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무대를 좌우로 뛰어다니다 못해 무대 앞쪽 스피커 위로 점프를 해대며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에릭 베네의 무대매너는 최고였습니다. 게다가 한 곡 한 곡 부르며 조금씩 상의를 벗어 제끼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약간 아찔하네요. 그런 테스토스테론의 향기가 뚝뚝 흘러 떨어지는 모습으로 K팝스타의 박지민양과 함께 <Spend My Life with You>를 불렀을 때는, 저를 포함한 여성분들의 질투 섞인 아우성이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사진: 섹시한 Eric Benét. 출처: 반디의 지인 직접 촬영] 

하지만 30분이나 늦게 시작된 에릭 베네의 공연이 끝나기는 제 시간에 끝나버려, 매력덩어리인 그의 모습을 40분밖에 볼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주최측에서도 현장 안내방송 없이 추후에 페이스북으로만 관련 소식을 전달해 관중들의 컴플레인이 이어졌습니다.

 

4.     Earth, Wind & Fire

하지만 이 모든 불평도 Earth, Wind & Fire의 등장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제 지인들 중에서는 Earth, Wind & Fire의 공연만 보기 위해 저녁이 다 되어서야 올림픽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Earth, Wind & Fire는 이번 서울재즈페스티벌의 가장 강력한 헤드라이너였습니다.

구름떼처럼 스탠딩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로도 모자라 잔디공원 전체가 스탠딩석이 되었습니다. <Boogie Wonderland>로 시작한 그들의 판타스틱한 무대는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올해로 함께한 지 41년이 되었다는 원년멤버 필립 베일리(Phillip Bailey), 버딘 화이트(Verdine White), 랄프 존슨(Ralph Johnson)의 모습은 수많은 지풍화(Earth, Wind & Fire의 애칭) 팬들에게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럽게 했지요. <After The Love Has Gone>, <Got To Get You Into My Life>, <Fantasy>를 거치며 무대는 절정으로 치달아 드디어 <September>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미떼같은 관중들이 두 유 리멤버를 외치며 뛰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겁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Intouchable)>에도 Earth, Wind & Fire의 음악이 종종 나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드리스(Omar Sy )는 클래식만 듣는 필립(François Cluzet )에게 Earth, Wind & Fire의 노래를 틀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음악은 당신을 춤추게 하는 거야! (Music is what makes you dance!)” 그렇죠! 지풍화의 음악처럼, 모두를 춤추게 하는 것이 음악이지요!

그렇게 한창을 신나서 떼창을 하며 춤추고 있을 때, 관중석 가운데 한 남자가 무대를 향해 죽지 마!”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요! 죽지 말아요 지풍화 오빠들! 당신들의 음악에 영원히 춤춰줄게요!

 

20: 기타의 향연

1.     박주원

둘째 날은 집시 기타로 유명한 박주원씨의 공연으로 시작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공연 시작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저희 일행은 공연장인 Spring Garden에 바로 입장하지 못하고 입구 앞에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박주원씨를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 사람이야말로 기타에 혼을 맡긴 기타맨이라 생각되어 꼭 꼭 보고 싶었는데, 저처럼 박주원씨를 기다린 사람이 많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다행히(?) 메인무대인 Jazz Forest에서 이병우씨의 공연이 시작할 때가 되어 관객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저는 그제서야 공연장으로 입장하여 기타의 질주를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기타만 쳤을 것이 분명한 박주원씨의 공연은 그의 입담과, 밴드의 위트 넘치는 연주 매너와 함께 아주 즐겁고 매력적으로 꾸며졌습니다.

박주원씨는 매 앨범에 축구와 관련된 곡을 싣는다고 합니다. 저희에게 연주해준 곡은 바로 <엘 끌라시꼬(El Clasico)>! 그 연주곡에 제 옆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 관객도 그만 환호성을 내뱉고 말았네요. 박주원씨의 공연이 끝나고 그에게서 꼭 사인을 받고 싶었지만, 거기에도 줄 선 사람이 많아 한참을 쳐다만 보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박주원씨 콘서트를 예매했어요.

 

2.     이병우

이병우씨가 연주하고 있는 Jazz Forest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박주원씨와 공연 시간이 겹쳐 많은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병우씨는 그가 직접 작업한 <장화, 홍련> <돌이킬 수 없는 걸음>, <마더> <>과 같은 영화 ost들로 관중들의 귀를 호강시켜 주고 있었습니다. 까만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기타를 잡은 것이 흡사 도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박주원씨와는 다른 차원의 기타맨인 것 같았습니다. 선릉 근처 어딘가에 그가 직접 운영하는 기타가게가 있다던데 언젠가 한 번 들러보고 싶네요.

앵콜이 한 번도 허용되지 않던 다른 연주자들과는 달리 이병우씨는 한 곡을 더 연주해 주셨습니다. 앵콜곡은 <자전거>. 정말 좋은 곡이죠. 날씨에 딱 맞는 아름다운 기타선율을 듣고 있자니 다시 한 번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3.     Al Di Meola

알 디 메올라(Al Di Meola)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만,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자동차로 치면 페라리, 람보르기니 급이라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지와 동년생이신데 그렇게 조지 클루니 저리 가라 하는 섹시한 멋을 풍기다니, 정말이지 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기타리스트를 동경하는 개인의 취향과는 별개의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기타 치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는 여성 팬을 위해 친절히 보면대를 낮추어 주는, 다정하기까지 한 그는 아마 그 기타와 손가락만으로도 수도 없는 여인들의 마음을 훔쳤을 테지요.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너른 잔디밭에 누워, 따뜻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봄 바람을 맞으며 섹시한 미중년 기타리스트의 사운드를 듣고 있자니 지난 날들의 우울과 피로가 씻은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이란 사실 너무 쉬운 거지요. 좋은 음악과 한 줌의 자유감, 그거면 충분하니까요. 꼭 돈을 들여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오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좋은 음악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사소한 여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있는 한은 언제든 행복은 내 것이니까요. 삶은 이렇게 사소한 행복들을 찾아 나를 위로하는 과정의 축적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Al Di Meola의 선율이 울려퍼지던 그 주말의 어스름]

 

4.     George Benson

해가 지고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헤드라이너, 기타 거장 조지 벤슨(George Benson)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Breezing>으로 시작한 조지 벤슨의 무대는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거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음악들로도 충분했지만 조지 벤슨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서툰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더 이끌어냈습니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In Your Eyes>, <Give Me The Night>, <The Greatest Love of All> 등등 한국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곡들이 나올 때엔 스탠딩석의 관중들이 코러스 부분을 모두 따라 부르며 떼창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지 벤슨은 최근 발매한 <Guitar Man>에 수록된 곡을 들려주며 기타리스트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지 벤슨의 연주곡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밴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밴드의 사운드가 정말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키보드가 심상치 않더니 키보드를 무려 데이빗 가필드(David Garfield)가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러머 오스카 시튼(Oscar Seaton)의 뛰어난 박자 감각과 파워는 정말 혼을 빠져나가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완벽한 주말이었습니다. 아직도 책상 위의 팔찌입장권을 보면 보름 전이 꿈만 같네요.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처럼 평생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세계적인 거장들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겠지요. 이제 바야흐로 뮤직 페스티벌의 계절이 다가왔으니까요.

자유롭되 질서정연한 분위기는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과 뮤지션들과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 무대를 볼 맛이 났습니다. 적절한 안내정보 제공 등을 포함하여 공연 서비스에 대한 조금의 보완이 있다면 내년에는 훨씬 좋은 페스티벌이 되겠지요. 내년 봄을 기다려봅니다. 또 한 번의 완벽한 주말을 기대해봅니다.

 

 

[사진: 제 6회 서울재즈페스티벌 양일권 팔찌입장권]

 

글_반디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만끽하며 미래를 낙관하는 여인.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