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6. 00:00ㆍLetter
축제 1 - 축제의 축제성
Max Beckmann, Carnival, 1943
러시아의 문학이론가 바흐친에 따르면, 중세나 르네상스의 카니발은 엄숙한 지배 문화를 유쾌하게 희화화하여 전복적인 파괴 및 창조적인 생성 양자를 풍성하게 발생시켰던 민중들의 축제였습니다. 애초에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제 역시, 풍요로운 수확을 기리며 자유와 도취에 열광하던 농부들의 축제였고요. 생명력, 피, 포도주, 정액 등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는 누구보다 그들 민중에, 땅에 가까운 신이었습니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신도들>에서 여인들은 산 제물을 갈기갈기 잘라 날로 먹는 행위를 통해 신과의 합일을 꾀하고 오랜 억압과 금기로부터 해방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비극의 원형인 디티람보스는 희생 제물을 바치는 순간, 집단적인 엑스터시를 강화하기 위해 추는 윤무였고요. 헌데 그랬던 축제는 기원전 550년경 아테네의 지배자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도시 국가의 행정권 안으로 편입됩니다. 그리고 이제 ‘시민’이라는 선택받은 소수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통해 억압된 욕망을 해소한 뒤 다시 삶의 영역으로 돌아가 불평 없이 그 도리를 다하게끔 만들기 위한, 도시 국가의 목적성 안으로, 축제는 가둬집니다.
그러나 축제라는 것은 마치 스스로 살아 꿈틀대는 어떤 생명체 같아서, 가두려 해도 다시 발산하고, 떨어뜨리려 해도 다시 민중에게로 돌아가는 특유의 관성을 지닌 듯합니다. 가령 해마다 7월이면 전 세계 연극인들이 모여드는 아비뇽 페스티벌의 경우에도, 압도적인 것은 ‘연극’이라기보다 그 너머에 꿈틀대는 생생한 ‘삶’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로 성벽 안의 모든 골목골목을 활기찬 북적거림으로 물들이는 힘은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요. 삶 속에서 삶과 더불어 자연스레 획득된,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정직하고 맑은 시선들. 그 여유로움이 태양 볕에 드러난 그들의 살결에서 한껏 빛나는 것을 봅니다. 그리하여 예컨대 밤의 교황청에서, 극도로 난해한 개막공연을 본 후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내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착각하지 마, 저건 쓰레기야” 하고 야유하며 쿵쾅쿵쾅 공연장을 떠나는 사람들. 아름다운 것은, 어느 쪽에 속한 사람들이건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이나 시선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술 앞에서 결코 오그라들지 않는 삶. 그런 삶들의 축제 속에서, 연극 또한 무한히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열기 넘치는 축제의 도시도, 골목도, 풍요와 생명력을 향한 간절한 발산도, 때로는 어떤 것을 향해 거침없이 쓰레기라고 말할 자유도 없습니다. 대신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해버린 각종 축제들이, ‘삶과 더불어’ 라는 모토를 내걸면서 동시에 삶을 배제하고, ‘관객이 주인인 축제’를 운운하며 동시에 관객을 소외시키는 안타까운 세태를 마주할 뿐이지요. 지식과 개념이 난무하는 권위적인 축제, 그리하여 주최 측의 목적이 참여 관객의 여흥을 억압하는 축제, 또는 가난과 소외를 앞세워 끼리끼리 판을 벌이는 비생산적인 축제 ㅡ 이런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로, 오늘의 축제들을 호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변방연극제는 ‘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 라는 주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 같은 개념을 내세웠다는 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어떻게 예술로써 융화시켰는지에 있는 까닭에, 우선은 마냥 비판하기에 앞서 당분간 퍽 긍정적인 자세로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감히 요청하건대, 비단 변방연극제 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푸른 여름을 점유하는 수많은 7월의 축제들은, ‘축제 없는 축제, 여흥 없는 여흥’으로 전락해버리지 않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2012년 7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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