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말하다] 서울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모-래」후기

▲ <모-래> 공연의 실질적인 주연 역할을 한 내성천의 모래들 (출처:리슨투더시티 페이스북페이지)

 

‘모-래’는 뭐래?

-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 공식 초청장 「모-래」 후기

 

글_김종우

 

후기는 후일담이다. 후일담은 추억담이고, 추억은 늘 그렇듯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창작자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데, 후일담을 통해 작품을 포장하고 그 포장을 그럴듯하게 내세운다는 것은 속된 말로 뭔가 찌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이 ‘모-래’라는 공연처럼 관객이 100명도 들지 않은 하루짜리 공연에서는 더더욱. 나는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실린 ‘모-래’ 공연의 리뷰를 읽었다. 이 리뷰의 작성자인 ‘김민관’씨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리뷰를 굉장히 자세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 공연보다 훨씬 더 멋드러지게 써주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연을 보지 못하고 이 리뷰만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나는 굉장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만든 공연보다 이 리뷰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나도 안다. 굳이 이런저런 철학자들의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작품은 관객에게서 완성되는 것이고, 오독 또한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내가 부끄러운 것은 그런 식의 오독 때문이 아니다. 그건 온전히 나 자신 때문이다.

▲<모-래>공연에 참여한 관객들 (사진제공:서울변방연극제)

 

공연이 끝나고 나면 늘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공연을 하게 되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아주 중요한 부분에까지 계속 선택을 하게 된다. 아니,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쨌든 이 선택들이 모여 결국 공연이라는 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 ‘모-래’라는 공연이 협업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나 또한 이 선택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쯤, 나는 그 선택들을 반추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 공연이 끝나면 나는 그 선택들을 되짚어보면서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이 비뚤어지고, 최대한 내가 좋을 대로 모든 것을 해석한다. ‘그래,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라든가, ‘그건 걔네들이 뭘 잘 몰라서 그래’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을 탓하는 데에까지 이른다.

▲<모-래>공연을 설명하고 있는 리슨투더시티 (사진제공:서울변방연극제)

 

남 탓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연이 끝나고 이런저런 피드백을 받는 동안에는 내 좁아터진 마음이 자꾸만 내가 했던 선택들을 정당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한바탕 뒷담화를 까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 순간 이상한 자괴감이 또 나를 짓누른다. 오히려 후회는 그 뒤에 일어난다. 어쩌면 그건 공연 자체에 대한 후회보다는 나라는 개인에 대한 윤리적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헌데 이 부끄러움이라는 감각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부끄러움이 나쁘게 되는 순간은 그것을 감추거나, 혹은 그 부끄러움이 가시가 되어 타인을 공격하게 될 때이다. 반대로 부끄러움이 순수하게 되는 순간은 그것을 고백할 때이다. 그럴 때 부끄러움은 하나의 인식으로까지 나아가 결국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다. 허나 내가 여기에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으로써 내 선택에 대한 면죄부를 얻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부끄러움이라는 감각을 느낌으로써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뻔하지만 또 한 번 더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 뿐이다.

▲<모-래>공연 퍼포먼스 (사진제공:서울변방연극제)

 

여기까지가 내가 쓰려는 후일담의 전부이다. 나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없다고 해놓고 나니 정말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 글은 굉장히 심심해질 것이다. 이왕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도대체 뭐가 부끄러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먼저, 마지막 퍼포먼스를 해준 일본 친구 류세이오 류에게 부끄럽다. 나는 처음 그가 왜 이 공연에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를 만났을 때에, 그에게 확신 없는 나를 속이고 확신이 있는 척 이야기했다. 그것이 심히 부끄럽다. 두 번째로 함께 작업했던 박은선씨와 고헌에게 부끄럽다. 나는 이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모-래’라는 공연 자체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간혹 그들의 감각을 무시하고 내 감각을 내세웠다.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기실 내 감각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그냥 아닌 척 하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마지막으로 25톤 트럭에 실려 내성천에서 한강에까지 온 ‘모래’에게 부끄럽다.

 

▲<모-래>공연 퍼포먼스 (사진제공:서울변방연극제)

 

나는 공연을 올리기 일주일 전, 내성천에 갔다 왔다. 내성천은 참으로 먼 곳이었지만,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공연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가서 내성천을 보고 그곳의 모래를 맨발로 밟으면서도, 나는 단 한 순간도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그건 아마도 뻔뻔한 가식일 것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모래’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단 한 번도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했다. ‘모래’는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모-래>공연 중 영상 시연 (사진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 글을 끝마치기 전에 ‘변방’이라는 말에 대해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공연 ‘모-래’는 이번 변방연극제의 참가작이기도 한데, 나는 무의식중에 이 변방이라는 말에 일종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변방은 변방에 있음으로서 그 가치가 있는 것인데, 나는 공연을 만드는 내내 이 변방이라는 말의 권위에 짓눌려 있었다. 변방은 밀려났기 때문에 변방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변방을 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변방이라는 말에 권위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번 공연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이것이다. 좀 더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 좀 더 놀지 못했다는 것. 나는 나를 부끄러워해도, 변방은 절대 변방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변방이 변방이기 위해선 바로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쓴 김종우는 제14회 서울 변방연극제 참가작 <모-래>의 공동 연출가 중 한명입니다. 인디언밥은 축제의 공연에 참여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축제를 말하다" 코너를 통해 내부의 시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번 작품은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리슨투더시티와 진동젤리(고헌, 김종우)가 협업하여 만들었습니다.

 

 

 


공연일시2012. 7. 15(일) 오후 7시 22분 | 한강 반포지구

구분│복합 초연/신작│초연 소요시간│80 관람연령│제한없음 티켓 │무료

Artists
공동창작_리슨투더시티, 진동젤리

작품소개 모래는 이주한다. 강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그리고 강에서 아스팔트로, 강에서 아파트로. 현대 모래의 이주는 돌아갈 고향을 상실한 이산이다. 이주민들로 구성된 도시, 디아스포라의 성전인 도시. 도시는 자신의 스펙터클 속에 이주민들을 감춘다. 모래는 차갑고 매끈한 시멘트 속에 묻혀 고층 아파트가 된다. 모래는 감춰진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여기 이곳에 존재했다. 따라서 도시인인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구성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유령존재들. 있으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 보이나 보지 않는 존재들. 유령존재들을 사유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고향, 그러나 언젠가 도래할 시온에 대한 기다림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잊었던 감각들의 복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향에 대한 감각이 남아있기나 할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한강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작품내용 ‘모-래’는 모래를 잃어버린 강 한강에서 ‘강-모래’를 다시 맞이하는 순간을 배경으로 한다. 거대한 트럭에 실려 오는 모래를 보면서 다섯 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모래를 보고 강의 죽음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가 있다. 모래의 아름다움은 미학적으로 표현해야한다는 예술가가 있고, 강은 개발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트윗으로 중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모래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섯 명의 기다림은 끝나게 될 것인가?

리슨투더시티 리슨투더시티는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리슨투더시티는 예술 외부적 조건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사유하기 위해 조직된 창작/비평 공동체 이자 예술가들이 좀 더 자발적으로 사유하고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장치이다. 2009년부터 강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시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다. 도시에 대한 리서치를 하면서 강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독립예술공간 스페이스 모래를 운영하고 있고, 독립 도시건축잡지 어반드로잉스를 발간하고 있다. www.listentothecity.org

진동젤리 진동젤리는 사람과 사람,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현대인의 도시적 삶에 균열을 내기 위한 작업들을 시도하고 있다. 동네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시도 읽고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텅 빈 주차장을 채우려 노력하는 한편, 요즘은 도시 구석구석에 틀어박혀있는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작지만 의미 있는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출처 제 14회 서울변방연극제 홈페이지

서울변방연극제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mtfestival.com 

<모-래> 공연 리뷰(김민관) 바로가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8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