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가다] 차지량의 <뉴홈> ― 둥지를 찾아서

2012. 7. 25. 01:08Review

 

▲ 사진출처 : 변방연극제 제공

 

차지량의 <뉴홈> ― 둥지를 찾아서

 

글_전강희

 

<뉴홈>은 잠옷과 베개를 지참해야 하는 일명 취침 퍼포먼스다. 공연은 저녁 8시에 시작하여 다음 날 아침 6시에 끝이 난다. 무려 10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관객은 차지량과 스태프들과 함께 ‘뉴홈’을 찾아 떠난다. 첫 번째는 영상을 통해, 두 번째는 전세버스로 이동해서, 세 번째는 직접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면서 한 밤의 여행을 함께 한다. 여행은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려면 언젠가는 집을 마련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다.

공연은 인천아트플랫홈에서 시작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입장권 대신 손목에 ‘검’자 도장을 찍어준다. 도장이 찍히는 순간, 관객들은 안면이 있건 없건, 다음 날 동틀 무렵까지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 사진출처 : 변방연극제 제공

 

# 뉴홈

저녁 8시, 공연의 서문은 영상으로 시작한다. 영상은 일년동안 작가와 그의 지인들, 또는 작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함께했던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영상에는 총 세 종류의 집이 나온다.

늦은 여름, 서울 어느 동네의 다세대 주택

가을, 수도권 지역의 도시형 원룸

겨울과 봄, 매립지 위에 지어진 신도시

모두가 새집이다. 이미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곳에서도, 손바닥 크기만큼의 틈새라도 보이면 새 건물이 올라간다. 테트리스 게임하듯이 작은 틈이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건물들이 채워진다. 1년 내내 도시는 공사 중이다. ‘뉴홈’의 의미는 어느 순간 새로 지은 건물, 말쑥하고 깨끗한 건물의 개념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도 건물 자체가 집이 된다. 인간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곳도 집이다. 차지량은 “사람이 집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이, 도시가, 국가가 그저 공기가 집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와 친구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온기를 남기려는 시도를 한다. Midnight Terror가 일어난다.

고급스러운 다세대 주택에 들어간 이들은 원래 집안에 있어야 할 것과 거리에 있어야 할 것의 위치를 바꾼다. 버려진 테이블, 선풍기 같은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원래 기능을 떠나 집안 여기저기에 놓인다. 대신 집안에 있던 물건들이 거리 구석구석에 놓인다. 이 순간 집과 거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무엇이 어느 장소의 주인이라고 누가 정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테러를 감행한 젊은이들의 처지도 낡은 것들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들이 보기 전에 아침 일찍 그곳을 나와야 하지만, 일시적인 점유일지라도 그들의 온기가 집에 남아있을 때에만 집은 비로써 제 역할을 해낸다. 투자 대상이 아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차지량과 친구들이 두 번째 테러를 벌인 곳은 원룸 건물이다. 이곳에서도 이들은 온기를 남기려는 시도를 한다. 아직 아무것도 들어와 있지 않은 곳에 이들은 야광봉으로 자신들의 흔적을 새긴다. 각자가 원하는 집의 분위기를 야광봉으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야광봉의 빛이 점점 미약해지며 끝을 맞이하듯이 이들의 일시적인 공간 점유도 동이 터올 무렵 끝을 맺는다. 이들이 거주했던 잠시 동안 그 건물은 온기를 품은 집이 되었지만, 이내 다시 텅 빈 공간으로, 돈을 지불할 주인을 기다리는 공간으로 돌아온다. 누군가의 온기가 계속 전해지기를 기대하면서 차지량과 친구들은 희망의 씨앗과, 소원을 들어주는 종이학을 접어서 남겼지만, 그들의 염원은 거대한 자본의 세계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세 번째 영상은 인천의 청라 신도시를 보여준다. 아파트가 땅에서 솟아오른 것 같다는 차지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파트는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것처럼 넓은 땅 곳곳에서 솟아나 있다. 그 많은 집들이 사람의 온기 없이 그저 서있을 뿐이다. 이곳으로 차지량 무리들이 테러를 벌이러 간다. 하지만 정작 테러의 주범은 아파트이다. 그곳에 아파트를 짓게 한 것은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다. 아파트는 그 땅의 일부인 듯 자신을 위장하고 있지만 자연의 침입자일 뿐이다. 아파트가 생겨난 곳에는 원주인인 숲이 사라졌다. 철새들도 더 이상 둥지를 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곳도 아니다. 그곳을 일시적으로 점유하기 위해 방문한 이들도 이곳을 구매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이곳은 텅 비어있는 땅이 되어 버렸다.

 

▲ 사진출처 : 변방연극제 제공

 

# 비어있는 땅으로

12시가 넘은 시간. 영상이 끝나면 잠깐 휴식을 취한 후 관객들은 모두 전세버스에 오른다. 세 번째 영상에서 보았던 비어있는 땅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는 또 다른 영상이 상연된다. 이 영상 안에는 무수히 많은 종이학들이 있다. 관객들은 한때 이 새들이 살았을 곳으로 떠난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인천 청라 신도시이다. 밤이라서 눈에 보이는 것은 멀리 우뚝 서있는 아파트의 불빛뿐이다. 아파트까지 걸어서 닿는 길은 흡사 잘 정돈된 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아파트가 올라가기 위해서 사각형으로 구획된 빈 땅일 뿐이다.

 

▲ 사진출처 : 변방연극제 제공

 

관객들은 이 땅을 가로질러 영상에 나왔던 아파트로 향한다. 관객들이 가는 길 곳곳에는 커다란 종이학이 놓여있다. 보물찾기 하듯이 이것들을 찾아 나선다. 이 퍼포먼스의 퍼포머는 관객들이 된다.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의 구분이 없다. 적극적으로 공간을 탐색하는 동안 관객은 원래는 새가 살아야할 땅 위에 흉물스럽게 서 있는 아파트를 마주한다. 영상에서 보았던 시멘트 발라진 새를 떠올리며 이곳이 누구의 홈이었지 되새긴다. 다른 영상에서 본 것처럼 인간과 새가 함께 살 수 없을까? 이 둘의 온기만으로 집이 만들어 질 수 없을까? 둘을 갈라놓는 시멘트 벽 없었다면 함께 홈을 공유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관객들이 시위대처럼 무리지어 다니며 살펴본 아파트 단지는 도시라는 이름을 붙이기 무색할 정도로 적막이 흐른다. 원래 주인을 쫒아내고 만들어진 집은 새로운 주인이 들지 않는다. 생명이 탄생하는 둥지가 아닌,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계속 부추기기 위해 무한 증식하는 이 건물들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 보인다. 관객들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조롱이나 하듯이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들의 시위에는 청년다운 경쾌함이 있다. 비록 88만원 세대로 이곳을 구매할 능력은 되지 않으나, 거침없이 활보하는 그들의 움직임 가운데에 근엄한 회색빛으로 우뚝 서있는 아파트의 존재는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자본의 힘도 맥을 추지 못하나 보다.

  

▲ 사진출처 : 차지량 아티스트 제공(上),  변방연극제 제공(下)

 

유령 도시처럼 변해 버린 신도시에서 한 가지 희망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개구리 울음소리이다. 황소개구리가 아닌 어릴 적 시골에서 듣던 개구리 소리이다. 이 척박해진 곳에서도 생명이 이어지고 있다.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파트를 휘젓고 다니는 젊은 시위대가 개구리들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설적이게도 홈은 아파트 안이 아니라 밖이다.

연극이 프로시니엄 무대가 주는 환영을 일깨우려 노력하고 있듯이, 차지량의 공연은 자본주의가 주는 허상을 걷어내려는 목표가 있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몇 가지 단초들을 던져 놓을 뿐이다. 의미를 찾아내고 계속 생성해 가는 것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청라 신도시에서 한 밤중 테러를 감행한 후 인천아트플랫홈으로 돌아오면 달력의 날짜는 7월 7일에서 7월 8일로 넘어가 있다. 처음 영상을 상영했던 이곳은 이제 새로운 공간이 되어있다. 청라에서 보았던 커다란 은색 새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관객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누울 자리를 마련한다. 이 공간에서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온기만으로 집이 만들어진다.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새와 사람이 한데 엉켜 휴식을 취한다.

 

▲ 사진출처 : 변방연극제 제공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 걸> 밴드가 피곤에 지친 관객들을 위해 공연을 시작하면, 하나 둘씩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공연은 새벽 두시를 훌쩍 뛰어넘는 시간까지 계속된다. 잠이 오는 소리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 밴드가 부르는 <떠나는 철새>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뉴홈>이 막을 내린 시간은 거의 아침 6시이다. 공연은 동틀 무렵 들려오던 녹음된 인터뷰의 내용이 끝나는 순간에 마침표를 찍는다. 인터뷰의 음성은 영상 속 친구들의 음성이다.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주거 형태, 어렸을 때 집 때문에 겪었던 기억, 지금 드는 집에 대한 생각을 들려준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듣는 이들의 목소리는 어제와 오늘의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는다. 어제의 경험을 오늘로 가져와 여전히 생생하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뉴홈은 어떤 곳일까?

  

▲ 사진출처 : 차지량 아티스트 제공

 

필자_winnie

소개_읽고, 보고, 쓸 수 있어 기쁩니다(^^)  

 사진출처 - 1.2.3.4.5.6.7.8.10.11 변방연극제 제공 / 9.12 차지량 제공

 

공연일시

2012. 7. 7 (토) 오후 8시 ~ 7.8 (일) 오전 6시 | 인천아트플랫폼 C동 ~버스이동 ~빈땅
2012. 7.14 (토) 오후 8시 ~ | 인천아트플랫폼 C동

작품소개

new home. 헌것을 부수고 새것을 만든다. 집은 빠르게 층을 올려가며 공사를 진행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곧, 새집이라는 이름으로 완성을 바라본다. new homing. ‘사람이 집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이, 도시가, 국가가, 그저 공기가 집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잠든, 잠들지 못한 새벽 공사현장을 찾아가 주거를 욕망하는 사람들이 떠올린다. new homeless. 새집에서 자는 기분은 어떨까? 그들은 뉴홈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 자리는 옮겨진다.
new homework. 일시적 주거의 행위는 ‘하우스’에 들어가 ‘홈’으로 접근하는 과정이다. 뉴홈을 경험하고 감상하여 도달한 둥지는 성장하는 세대의 새로운 생존법으로 상상적 제안을 제시한다. <new home>은 뉴타운, 뉴시티 문화 및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성장하는 세대의 생존과 관련한 도시주거문화 갈망 행위다.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으로 성장하는 세대의 새로운 둥지를 모색하는 작품이다.

작품내용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완공을 앞 둔 새집에 사람들이 들어간다.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다세대주택과 도시형 원룸오피스텔, 새롭게 계획되는 도시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들은 시간을 보낸다. 온기를 남기고 씨앗을 심고 획일화된 형태에는 다양성을 제안한다. 아침. 그곳을 나온 성장하는 세대들은 어디론가 이동하여 새로운 둥지를 만든다. 새 둥지엔 관객을 초대한다.

차지량

 차지량은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시적기업(2011) / www.일시적기업.com , 세대독립클럽(2010) / www.세대독립.com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미디어아트 및 실험영화제에 참여하였다.

출처_14회 서울변방연극제 공식 초청작 : 차지량 <뉴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