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요 시(詩) 극장’ - SALON 바다비

2013. 2. 7. 17:12Review

 

‘일요 시(詩) 극장’ - SALON 바다비

- 홍대앞의 시가 빛나는 밤에

 

글_낭만떠돌이

 

▲살롱 바다비에 적혀있는 문구, 바다비 네버다이 

 

홍대에 어둠이 찾아온다. 불빛에 모여드는 하루살이 떼처럼 사람들이 홍대 거리에 쏟아진다. 마음을 흔드는 화려한 옷들과 구두, 액세서리. 코와 침샘을 자극하는 다국적의 음식들. 보기만 해도 코가 삐뚤어질 것 같은 술병들. 구석 구석 들려오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연주자의 음악소리. 그 모든 것을 정글 속 헤매듯 가다 언덕을 지나게 되면 숨통 가득 시원한 공기가 들어온다. 주변의 고요함이 어색하여 잠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이내 어둠에 적응하여 산울림 소극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윤곽만 지닌 다리를 지나면 ‘SALON 바다비’(이하 바다비) 간판이 호롱불빛처럼 은은하게 어둠을 밝힌다. 바다비, 바다에 내리는 비. 비는 소나기든 부슬비든 땅에 닿는 순간 요란하게 자신을 알린다. 하지만 어떤 비든 바다에 닿는 순간 정적이다. 마치 엄마의 품에 잠든 아기마냥 비는 온순해진다. 그 포근한 침묵이 ‘SALON 바다비’를 감싸고 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일요 시 극장’. 한 달에 한번 시 낭송 회를 라이브 클럽에서 한다고 한다. 인디음악만을 연주하는 라이브 클럽에서 시 낭송회?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시는 문학의 꽃. 음악의 소금. 마음의 고백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더 이상 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몸살을 앓을 때, 생채기에 덧날 때 우리는 그저 끼적여 보지만, 대부분 편한 것, 빠른 것만을 선호하는 요즘 이들에게 시는 암모나이트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한 켠의 꿈이 되어버렸다. 그 아련한 꿈을 다시 기억하듯 조심스럽게 바다 비의 계단을 밟는다.

바다 비 안으로 들어가니 누구는 분주히 무대를 오고 가고, 누구는 기타 튜닝을 하고, 누구는 음향을 확인하고 있다. 의자들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그 자리를 모두 채워주고 싶지만 나와 내 친구는 두 자리만 채울 뿐이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사람들이 들어온다. 공간이 조금씩 따뜻해져 간다. 묵직한 스피커에서 기타를 둘러맨 김광석 오라버니가 나온다. 바다 비 안의 사람들은 시를 마음 한 켠에서 꺼내어 본다.

매달 마지막 일요일마다 열리는 ‘일요 시 극장’. 시의 길을 마음껏 노닐어 보는 이 날은 누구나 자작시건, 좋아하는 시건 실컷 떠들 수 있다. 정해진 주제는 없으나 주인장 마음이다. 작년 겨울, 마을버스 안에서 반 고흐 전 포스터를 보고 마냥 끌렸다던 바다 비의 주인장. 작년 겨울 내내 가슴 깊이 고흐를 담아두었다. 1월 말에 꺼내어 보았다 한다. 1월 27일 마지막 일요일의 주제는 그래서 고흐다. 각자 고흐를 품은 4명의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오른다.

 

▲시를 낭송하는 기타맨(위)과 김비글(아래)

 

호리한 몸으로 기타를 한껏 보듬는 처절한 기타맨. 살포시 그의 시가 담긴 종이가 보면대 위에 오르면서 그의 손가락은 기타 위를 걷는다. 고흐는 그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카산드라를 불러온다. 카산드라는 고흐의 비루한 사랑 이야길 가져오고, 비루함은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울린다. 그의 시나 음악은 겸손하리만치 차분하다. 무대나 객석이나 하염없이 쓸쓸해진다. (다음 낭송자였던, 김비글에게 매우 미안하다. 나는 고흐처럼 귀가 좋지 않아 목소리가 작은 그의 시를 자세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로 된 멜로디는 감성이 풍부한 여인이다. 음을 하나씩 튕길 때마다, 시어를 읊을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처음엔 눈물의 코드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왜 저리 우나 싶었는데 무대든 객석이든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 눈물을 흘리는 그 마음이 예쁘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만들어 자신의 옆에 두고 이카루스의 시를 읊는 여인. 한 자 한자엔 눈물을 꾹꾹 누른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계란장수는 맥북과 아이패드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시 낭송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구나 혼자 생각한다. 그는 고흐의 일기 중, 화가로서 자부심 있고 색채에 대한 환희로 가득 찬 고흐의 마음을 읽어준다. 컴퓨터 화면 위로 고흐의 그림이 강물처럼 흐른다. 계란장수가 읽어주는 고흐의 일기를 듣고 있으니 고흐의 그림이 달리 보인다. 곧 이어 이어지는 계란장수의 디지털 음악. 색을 음악으로 끄집어낸 그의 기계음들은 낯설고도 반가웠다. 고흐를 떠올릴 땐 어둡다. 하지만 낯설게 활발한 기계음처럼 고흐에게도 기쁨이 있었겠지, 그도 인간으로서 즐겁고, 배꼽 빠지는 순간이 있었겠지. 계란장수의 음악과 함께 그의 희로애락을 상상해 본다.

 

 ▲시를 낭송하는 말이 된 멜로디(위)와 계란장수(아래)

 

예정엔 없었던 듯싶은데 바다비 주인장 우중독보행이 시를 들고 나온다. 종이가 아닌 스마트 폰에 그의 시가 담겨 있다. 광경들이 참으로 재미난다. 그는 시 하나 읊겠다 한다. 하나를 읊었다. 재미가 있는지 또 하나를 읊겠다 한다. 그렇게 네 편의 시를 읊는다. 그도 우리도 이런 즉흥에 하나가 된다. 주인장은 아이 마냥 시를 즐기고 있다. 마지막 그의 애작 시인 연변 처녀를 끝으로 나나 그나 아쉬운 마음으로 무대를 본다. 그는 관객들 중에서 시를 읊을 이들을 찾으나 나는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고 용기 있게 손을 들지 못한다. 하지만 다음엔 나도 시를 써봐야겠다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나는 고등학생 때 몇 번 시 낭송회를 다닌 적이 있다. 시와 어울리는 조용한 BGM, 시인이 앉을 책상과 그 옆에 놓여있는 꽃이 담긴 병. 그때 시 낭송회는 내게 수업의 연장이었고 시를 못 쓴다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열심히 들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난 시 낭송회가 싫었다. 내가 바다 위에서 찾고 싶었던 건 그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달콤한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책상과 꽃 따윈 보고 싶지 않았다. 바다 위 카페에 가 보면 주인장은 시를 마음껏 표현하고 스스로에게 맘껏 허용하라 한다. 도깨비 극장처럼 정해진 형식이나 시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시 판을 벌리는 바다비와 맘씨처럼 풍성하게 자리 잡은 그의 턱수염을 한 동안 잊지 못하겠다.

낭송회가 끝나자 고흐는 우리 현실 끝에 추를 단다. 우리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 밑바닥에서 자신들을 들춰본다. 낭송자도 관객도 한 동안 조용하다. 바다 위에 내리는 비처럼 고흐는 조용히 우리의 가슴에 물감을 뿌린다.

 

  필자_낭만떠돌이

  소개_그리스인 조르바같은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정체성 없는 여인.

 

  

  ♥ 살롱 바다비의 ‘일요 시 극장’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시인이 되는 때가 있으셨을겁니다.  그순간 느낌들을 살며시 시로 표현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들을 스스로에게 맘껏 허용해 보세요

  ♥ 시도 (((시의 길을 맘껏 노닐어 보다 ))) 詩道

 *본인의 시 또는 좋아하는 시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기도합니다. 누구나 (등단,비등단,독립시인,쟝르별 예술가,시민 모두 ) 발표를 원하시는 분은 참여가능합니다. 자작 시 1~3편 . 수필 1편 (10분이내 // 10분 이상은 협의 가능) . 낭독 형식 자유.

원하시는 분에 한해 가벼운 뒷풀이 자리에서 자유로운 이야기도 주고 받습니다 (비용 각출 ^^) 살롱 바다비의 ‘일요 시 극장’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밤 자율기부후원제로 운영됩니다.

 **내용출처 살롱바다비 웹페이지 >>>  http://cafe.daum.net/badab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