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2년의 독립출판계, 크고 작은 단상들 - 성지은

2012. 12. 29. 17:13Review

 

2012년의 독립출판계 – 크고 작은 단상들

 

글_성지은

 

저는 인디언밥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시각문화와 관련된 글을 써 왔습니다. 그동안 전시나 독립잡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 글에서는 독립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독립출판에 대한 글을 두 편이나 썼고, 또한 올해는 가히 독립출판물의 해라고 할 만큼 그 씬이 풍부해졌기 때문입니다. 독립출판으로 시작한 이 글은 아마도 출판과 미술을 아우르는 시각문화에 대한 단상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당부 드릴 것은, 이것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저의 기억과 역사,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더 다양한 생각을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잡지’ 페이퍼 창간호 (1995년)

 

2012년 독립출판물의 경향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문득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독립출판물이 무엇이었지, 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페이퍼>일 것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처음에는 무가지였던 잡지입니다. 그 잡지가 어린 시절의 감성을 꽤나 강렬하게 건드렸기 때문에, 이후에 한 권에 3000원을 받고 판매하기 시작한 후에도 줄곧 사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페이퍼>가 보여준 태도와 여러 형식들이 지금의 독립잡지들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고, 좋아하는 것을 찍고,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편집이나 가격도 (물론 외부의, 사회적인 압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은) 모두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 안에서 보여주었던 시, 소설, 에세이, 문화행사 리뷰, 인터뷰, 그림, 사진뿐만 아니라 달력과 같은 다소 실용적인 페이지들까지, <페이퍼>가 그 모든 형식을 망라해놓았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무가지였다가 나중에 소액이라도 돈을 받고 판매하게 된 형식까지 말입니다.)

이렇게 <페이퍼>가 보여주고 지금의 독립출판물들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모든 독립예술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독립’ 예술이 무엇으로 정의되던지 간에, 주류의, 자본의, 유행의,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태도에는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창작물로 표현되는 과정으로는 독립출판이 가장 간편하지 않을까요. 요즈음 같은 시대에는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과 종이, 프린터만 있어도 독립출판물을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손과 연필, 종이만 있어도 가능합니다!)

 

"모이다展"  관련글, http://indienbob.tistory.com/642

 

그렇게 해서 독립출판, 더 정확히는 독립잡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창작자들은 주로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사진 등 시각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감성을 담아내고 보여주고 전달하기 위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미술가들이 음악을 엿보고 음악가들이 영화를 엿보는 등 서로 다른 장르간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이런 흐름이 그 전에는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디음악가들 중에는 원래 미술을 하던 사람들이 꽤 있지요. 다만 일방적인 이동이나 관심이 아닌 상호간의 교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더 생긴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창작 집단들이 생기면서 독립잡지의 주제는 더욱 다양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 독립출판물을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합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독립출판물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 리뷰에서도 논의된 바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약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왕고참격의, 다시 말해 정석을 보여주는 독립잡지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만의 감성을 자기만의 이야기와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문화운동집단들입니다. 이들은 딱히 주요 장르를 전제하지 않고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합니다. 세 번째는 순수창작자들입니다. 첫 번째 분류의 잡지들이 일정한 포맷이 있고 월간지, 계간지의 성격을 갖는 등 ‘잡지’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면, 순수창작물들은 좀 더 자신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순수회화보다는 일러스트 등의 영역이 눈에 띕니다. (제가 쓴 ‘언리미티드 에디션’ 리뷰에서는 특정 장르 전문 잡지나 전문적인 출판사 등을 마지막 범주로 묶었습니다. 이것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첫 번째와 세 번째 범주에 속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제4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관련글 http://indienbob.tistory.com/651

 

형식적인 부분과 더불어 내용에 있어서도 현재 독립출판계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왕고참격의 잡지들은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다루었습니다. 그 안에서 사회의 요구와 자신의 사고방식 사이의 충돌을 일상적인 일화들을 통해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독립예술가들, 독립출판가들의 삶이란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삶, 가치관과는 반대선상에 놓여있기 십상이었겠지요. 근래 들어 늘어난 독립잡지의 수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을 다루는 잡지들도 생겨났습니다. 일상에서의 고민들에서부터 시작해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자는 목소리들도 생겼고, 몇몇 안타까운 죽음에서부터 정부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따지는 목소리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동성애, 채식주의와 같은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잡지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다양성이 극도로 팽창한 지금, 미술평론가인 임근준씨는 이 시점에서 국가가 독립출판물 아카이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옛날 플럭서스의 희귀한 작품들을 그들의 한 친구가 모두 모아놓은 것처럼 말이죠. (자비를 들여 모은 그 작품들은 현재 뉴욕 모마 미술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이처럼 넓고 다양한 씬을 가지게 된 독립출판계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보여주는 기능과 창작품인 예술로서의 위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느 잡지와는 달리 상업성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국가의 지원 또는 보호가 필요합니다. 이들의 존속을 돕지 못한다면 적어도 역사에라도 남겨야겠죠. 시작한지 10년, 그리고 풍성해진지 4, 5년이 지난 지금이 분명 독립출판계에서 한 분기점이 될 것이고, 수집 및 분류 등 아카이빙의 적절한 시기일 것입니다. (게다가 어떤 집단이든 5년 그리고 10년이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현실의 무게가 열정보다 커지거나, 구성원들이 변화를 겪는 등 힘든 시기를 겪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많은 출판물들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계속 유통시킬 것인지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아카아빙이 이런 상황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독립출판계의 이런 상황에서, 저는 ‘삶과 예술의 통합’이라는 고리타분한 아방가르드의 기치가 떠올랐습니다. 예술이 삶과는 동떨어져있는 것을 반대하면서, 아방가르디스트들은 그 둘을 통합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삶 속에 예술이 들어가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삶이 예술을 닮아가는 것이었고, 예술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나 무용성 등의 가치들이 삶 속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점점 팍팍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무용성은 기껏해야 ‘무한도전’ 정도이겠지만, 독립잡지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야말로 아방가르드의 태도가 아닐까라고 감히 짚어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매일의 감성들에 충실하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지역-예술-운동 매거진 “얼룩진2호/특별호 표지사진”, 관련글 http://alllookzine.net

 

이와 더불어, 저는 최근 순수회화가 독립출판계를 기웃거리고 있는 현상 역시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립’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는 예술 범주에서 ‘미술’이 가장 뒤떨어져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사회, 주류,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기 위해서는 일면 사회, 주류, 자본과 붙어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미술은 애초부터 사회, 주류, 자본과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미술계 내에서 자본의 입김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음악처럼 수만장의 음반을 사고 파는 일도, 무용처럼 거금을 주고 공연을 보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보이는’ 미술에서 ‘독립’ 미술이라는 범주는 실현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실은 종속되어있는’ 미술이기에 그 종속을 뿌리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캔버스나 물감이 아닌 또 다른 매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화가는 필통이나 달력에 자신의 그림을 새깁니다. 어떤 화가는 인터넷 사이트의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돈이 적게 들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독립출판일 것입니다. 최근 화가 또는 사진가들이 자기들의 작품을 캡션, 전시서문과 함께 보여주는 도록이 아닌 마치 독립잡지와 같은 형식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그 형식은 더 자유로와서, 화가는 작업노트를 군데군데 끼워 넣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에 맞추어 한 편의 소설이나 시를 쓰기도 합니다. 자기 작업의 장르가 드로잉이라면 그림책과 같은 출판물을 여러 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미술가 또는 미술작품을 한 꼭지로 다루는 독립잡지뿐만 아니라, 독립잡지 형태를 가진 미술가의 도록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됩니다.

조금은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 보았습니다. 독립출판의 전문가도 아니고 종사자(?)도 아니지만, 나름의 애정과 관심으로 이 시점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해 보았습니다. 출판계의 과거와 미래를 보았을 때, 현재에는 다양한 접근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저는 여전히 해석보다는 작품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 얽매이기보다는, 이 글이 도움이 되어 여러 독립출판물들을 접하고 좋아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중요하니까요.

 

*본 기사는 2012년 인디언밥결산+필자WS(12.11~12.18)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글_성지은

소개_삶은 춤추듯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각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