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정한 락앤롤의 향연, “크라잉넛쇼”

2013. 2. 1. 10:38Review

 

진정한 락앤롤의 향연, “크라잉넛쇼”

 

글_나그네

 

2013년 새해 첫 크라잉넛 쇼에 다녀왔다.

크라잉넛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늘 새로운 게스트와 색다른 컨셉으로 '크라잉넛 쇼'를 선보여왔는데, 올 해는 계사년인 만큼 '크라잉 뱀쇼'라는 타이틀로 새해 첫 공연의 컨셉을 잡았다. 이번 공연에는 '강산에, 국카스텐, 로큰롤 라디오'라는 여느 락페 라인업 못지 않은 게스트들이 함께하여 크라잉넛 쇼의 열기를 더욱 달궈주었다.

 

 

장소는 홍대 프리즘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연장이라 그런지 길을 조금 헤맸는데(공연장은 굉장히 찾기 쉬운 곳에 있지만, 나는 워낙 길눈이 어둡기 때문에), 날씨가 많이 추웠어서 공연장에 들어선 이후에도 한 동안 움츠러들어 있었다. 슬슬 추위가 잊혀지면서 공연장 안을 둘러보기 시작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규모가 작아서 어느 곳에서 보아도 무대가 잘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또 대부분의 공연은 20대 여성 관객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곤 하는데, 관객 구성의 폭이 그렇게 넓은 것도 처음 본 것 같다. 남녀 비율도 비슷했고, 연령대에 있어서도 3-40대 관객들이 부부끼리 혹은 친구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거나 나이가 좀 지긋하진 분들이 아직 늦지 않은 청춘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어, 공연을 보는 중에 한 번씩 객석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10대 어린 친구들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까지 음악을 즐기는 모습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 순간에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참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다.

오늘의 첫 팀은 ‘로큰롤 라디오’. 이름은 몇 번 들어보았지만, 라이브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음반도 한 장 제작한 바 없는 이 파릇파릇한 밴드는 꽤 노련하게 관객들을 휘어잡기 시작했고, 천천히, 하지만 강하게 그들의 매력을 발산해나갔다.

 

 

처음에는 정말 라디오를 틀면 나올 법한 락앤롤 음악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들이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점점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라디오에서 연주 중이던 락밴드가 현실의 무대로 뛰쳐나와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내 눈에 그들은 어느새 ‘라디오 스타’가 되어있었다. 경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우리들은 젊다"고 외치는 듯한 그들의 연주는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첫 순서 만에 공연장 안을 채우고 있던 한기는 녹아내리고, 그 자리를 그 무엇보다 뜨거운 열기가 채워주었다.

이번 공연에서의 새로운 발견, 그리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팀 ‘로큰롤 라디오’.

올 해는 그들의 음악을 음반으로 세상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로큰롤 라디오'가 무대를 떠나고, 두 번째 순서로 무대 위에 오른 것은 바로 요즘 대세인 ‘국카스텐’. 그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객석은 흥분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나 역시 국카스텐을 이런 소규모 클럽에서 보는 것은 거의 1년 반 만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악기 셋팅이 끝나고 ‘클럽 공연이 정말 오랜만이다’ 라며 객석을 한번 스윽 둘러보는 하현우. 그의 눈빛에는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이 묻어나 있었다. 좋은 곳에서 공연을 할 기회가 많이 생겼겠지만, 그래도 이런 좁고 낮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미칠 수 있는 무대는 그들에겐 잊지 못 할 고향과도 같을 것이다.

대형 기획사로 소속을 옮기고,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게 되었음에도 그 뜨거운 마음을 잊지 않고 언제나 친근하면서도 열정 넘치는 국카스텐의 처음 모습 그대로 무대에서 에너지를 발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여태 수백번이 넘도록 공연을 해 온 그들인 만큼 익숙하게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국카스텐. 관객들은 다 함께 손을 뻗고 뛰어대기 시작했고, 나도 그 속에 함께 하며 그 뜨거운 열기에 녹아버리는 듯 했다. 그들의 대표곡으로 유명한 ‘거울’을 연주할 때에는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봤을 때 모습이 무대 위로 오버랩되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의 팬으로 응원해온 것이 흐뭇해짐과 동시에 앞으로도 쭉 승승장구 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또 내 청춘에 충실하여 이렇게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안겨 준 것에 참 고맙다는 생각도.

 

 

국카스텐의 대표 앵콜곡 셋트 ‘싱크홀-꼬리’를 마지막으로 국카스텐은 무대를 떠났고, 이미 공연장 안은 뜨거워질대로 뜨거워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피아노 세션과 단 둘이서만 무대에 오른 '강산에'. 앞의 두 팀은 꽉 찬 사운드와 함께 에너지로 가득 찬 분위기를 이끌어 주었다면, 이번엔 통기타 하나 잡고 노래를 부르며 비교적 차분하고 감성적인 무대로 잔뜩 들뜬 공연장을 한결 가라앉혀 주었다.

정말 ‘기승전결’이 있는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연령대가 그렇게 다양하였던 것이 강산에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공연장 내에 많은 중년 관객 분들은 눈을 감고 공연에 집중하여 그들이 조금 더 젊었을 적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 했고, 그들 뿐 아니라 많은 젊은 관객들도 이전과는 또 다른 감동에 젖어들고 있었다. 관객과 대화하는 듯 노래를 이야기 하던 강산에는 이제 어느덧 마지막 곡의 순서를 앞두고 있다고 하며 가장 많은 관객이 원하는 곡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많은 관객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곡을 외쳐대기 시작했고, 나는 속으로 ‘라구요’를 불러 주셨음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의견 통합에 실패한 강산에는 그럼 그냥 내가 원하는 곡을 부르겠다고 하였고, 이윽고 잔잔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시작된 마지막 곡은 바로 ‘라구요’. 그 때 감동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던 공연장은 어느새 피아노 소리와 강산에의 목소리로만 메워져가고 있었고, 절정에 다다른 목소리로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라며 목놓아 노래하는 강산에를 비롯한 우리들의 눈가는 알 수 없는 아련함으로 촉촉해졌다. 노랫말에 공감을 하는 어른 분들과, 그리고 완전히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부모님 세대의 아픔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는 우리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 ‘크라잉 넛’.

멤버 하나 하나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대단했다.

강산에 형님이 노래했듯 우리 나라가 어서 통일이 되어 두만강도 가보고 흥남부두도 가보았음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그들, 그리고 곧이어 우리 함께 룩셈부르크도 가보자며 또 다시 개구쟁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들이 누구보다 멋진 락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공연장 안은 열기가 넘치다 못해 폭발! 관객들은 공연장 이곳 저곳에서 미친듯이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였고, 락앤롤을 외치며 점프를 하기도 하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했다. 크라잉넛 공연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정말 재밌게 잘 논다’는 것. 사람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묘한 긍정의 파워가 있는 팀이다. 그들은 때로는 락커가, 때로는 친구가, 때로는 주술사가 되어 ‘이게 진정한 크라잉넛 쇼’ 임을 보여주었다. 올해는 새 음반도 낼 계획이라고 하는 이들의 음악적인 행보가 영원히 계속되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정 ‘기승전결’이 있는 공연이었다.

그런 만큼 공연이 끝날 즈음엔 다들 음악이 주는 열정 속에 푹 빠져있었고, 지금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락공연이라 하면 보통 여름이라는 계절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겨울에 어울리는 장르 역시 락이라고 생각한다. 춥다고 집에서 이불만 두르고 있는 것보다 이렇게 락공연을 보는 것이 확실히 추위를 잊고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안성맞춤인 듯하다. 그렇게 추위에 떨며 공연장을 들어섰던 나는, 뜨거운 에너지를 품은 채 벌개진 얼굴로 공연장을 나섰다.

한팀 한팀 각기 다른 에너지와 감동으로 소통하였던 공연이었고, 추위로 잠시 잊고 있던 내 안의 락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공연이었다. 한파가 차츰 꺾인다고는 하지만, 아직 겨울이 완전히 돌아서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다.

남은 겨울, 한 번쯤 이런 에너지 넘치는 공연에 찾아가 겨울용 ‘힐링’을 받고 오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