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2013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를 걱정하며

2013. 12. 31. 22:57Feature

 

응답할까? 2014

: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의 새로운 도전

 

글_김해연

 

나라에 바람 잘 날이 없다. 홍대앞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홍대앞은 최근까지도 조용한 편이었다. 각자의 체감이자 몫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부는 거친 바람은 알게 모르게 변화를 요구한다. 서울의 마포구에 위치한 대표적인 문화예술 생태계 중 한 곳인 홍대앞도 ‘생존’과 ‘지속성’을 위해 다시금 목소리들이 모이고 있다. 본 글은 2013년 하반기 홍대앞에 흐르는 여론을 정리하면서, 독립예술축제인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서교예술실험센터 첫 공동운영단 활동을 경험한 개인의 의견을 덧붙여 작성하였다.

 

▲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관련 행정기관들. 마포구,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1. 관련 행정기관들의 서교예술실험센터 지원 중단 통보

여론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에서 시작된다. 2013년 9월, 서교예술실험센터가 내년부터 운영이 중단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건물 소유주인 마포구청이 공간 무상임대 재계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운영비를 지원하는 서울시도 예산을 편성하지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위탁·운영하는 서울문화재단과 홍대앞 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된 공동운영단은 모든 하반기 활동을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의 아쉬움은, 현 운영주체와 홍대앞 예술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행정기관에서 재정적 어려움과 가시적인 성과의 부족함을 이유로 일방적인 결정을 한 점이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 창작공간 중 하나로, 서울 컬처노믹스 정책에 따른 ‘도심 재생 프로젝트’로써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활성과 지역 예술인의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공공 공간이다. 2009년 6월, 옛 서교동사무소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새로이 문을 연 서교예술실험센터는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와 교류하며 여러 지원과 협력 프로젝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보다 적절한 역할을 고민하며 오랜 기간 홍대앞 문화예술인들과 다양한 형태로 대화하며 논의한 끝에, ‘민·관 거버넌스’라는 협의체로 현장성을 투입시켜 민간 예술인의 의견이 반영된 유연한 운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첫 시도가 예상했으나 결코 바라지 않았던 상황으로 인해 전복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 지원중단 통보를 받고 긴급모임을 가진 홍대앞 예술가, 기획자 그룹 (출처 : 온라인 경향신문)

 

2. 서교예술실험센터 지속을 위한 캠페인 진행

공동운영단은 수차례 회의를 한 끝에, 본 상황을 공론화하고 행정기관 관계자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기로 결정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서교예술실험센터 살리기’였으나, 서교예술실험센터가 갖는 공공성과 더불어 하나 둘 사라지는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를 퍼트리는 데 의의가 있었다. 온라인에 관련 성명서를 게시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페이지를 개설하였고, 약 2,000여 명의 네티즌들이 동의와 응원을 보냈다. (https://www.facebook.com/saveseogyo), 마포구청 홈페이지에 공동운영단과의 대화를 촉구하는 민원을 넣기도 하였으며, 긴급 라운드 테이블을 열어 홍대앞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들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공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과 여러 의견 수렴이 가능한 공동운영단 형태를 긍정하는 의견이 높았다. 당장은 임대 계약 종료 결정을 한 관과 공식대화를 통해 홍대앞의 공적 자산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시키고 유지하는 방향을 이끌어내고, 나아가서는 자생과 자립이 가능한 운영체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홍대앞 협의체 조성’은 이때부터 또 다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공동운영단을 확장하여 홍대앞 활성을 위한 조직체에 대한 구성도 거론되었다.

몇 몇 언론에서 이 상황을 보도하였고, 11월 1일 마포구청에 진행된 서울시 시장 현장실 때 찾아가 현 상황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다. 그제야 소극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던 서울시와 마포구청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시장 현장실에서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구두 상으로 ‘서교예술실험센터 1년 계약 연장 및 예산 지원’이라는 답을 들었다.

 

▲ 홍대앞 문화예술생태계를 위한 서울시장 청책토론회 포스터

 

3. 서울시 제안으로 열린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 활성을 위한 청책토론회’

약속은 이행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 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관과 보다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였다. 고민은 쉽게 풀렸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서울시에서 먼저 청책토론회를 제안한 것이었다. 12월 4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렸다. 약 100 여 명의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 행정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지정발제와 자유발언, 박원순 서울시장 발언을 중심으로 진행된 청책토론회의 주요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구 사항>

- 홍대앞 공공공간 공동관리 민관 거버넌스 구축과 예술인들의 참여

- 홍대앞 문화백현상 억제 위한 ‘임대인, 임차인 협의체’ 구성과 정책과 지원 마련

- 서교예술실험센터와 같은 예술활동 공공 공간 필요 및 지속

- 소규모 문화공간 및 축제와 같은 예술 프로젝트 지원

*문화백화현상 : 도심공동화현상처럼 지역이나 상권, 골목 등에 생성되었던

문화와 예술이 소멸되는 현상 (김남균 그 문화 갤러리 대표 발제 참조)

<제안 사항>

- 홍대앞 문화예술생태계 참여형 협의 TF구성

- 홍대앞 문화예술생태계 기본 연구 추진

-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 부동산과 인포메이션 센터 개설

- 서울시와 마포구, 홍대앞 문화예술인 협의체 간 문화협약 체결

<시장 답변>

-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의 중요성 인지, 예술인 활동 보장하는 문화행정 필요

- 관과 민간의 수평적 구조인 거버넌스 구축 제안

- 홍대앞 협의체와 적극 논의하며 정책 실행하겠음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기에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지만, 관이 먼저 홍대앞을 재조명하고자 귀 기울인 것은 또 다른 시작임에 분명하다. 청책토론회를 통해 공론화된 2013년 홍대앞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상업화와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 공공·개별 문화공간들의 ‘몸살앓이’였다. 이에 따른 위축은 예술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다양성이 줄어들고 이주하게 만드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거침없는 자본의 물살은 개인과 민간 단위에서 해결할 수위를 넘어섰다. 이제는 명백하게도 공공의 영역도 함께 머리를 맞대어 ‘문화백화현상’을 타진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관은 최근 수익성을 염두에 둔 관광산업 활성화 이전에 문화의 토대를 만들어 온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의 존속 방법부터 찾아야 두 마리 토끼를 다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청책토론회 리뷰 http://mayor.seoul.go.kr/archives/19360?ca_no=2677

 

 ▲ 청책토론회 현장 사진 (출처 : 서교예술실험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4.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활동보고와 홍대앞 협의체 구성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

이를 이어 12월 19일에는 서교예술실험센터 2차 라운드 테이블이 열렸다.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의 활동은 ‘공간과 교류, 지원’을 중심으로 1층 공간 리모델링 (개방형 오픈공간), 작은 예술 지원 사업, 홍대앞 문화예술공간 조사와 인터뷰, 토크와 공연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며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운영방식을 실험하였다. 대부분 운영주체였던 서울문화재단에서 확장된 이 운영체제를 통해 교류가 활발해진 점을 긍정하였다.

홍대앞 협의체의 필요성은 청책토론회에 이어 시대의 화두이자 홍대앞이 직면한 과제로 간주되는 분위기였다. 이는 단순한 교류의 차원을 넘어 홍대앞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단일창구와 홍대앞 활성을 위한 협업을 이끌어내는 실질적인 조직을 주장하였다. 이 날의 주요 의견을 간추려보았다.

- 다양한 이해관계자 (예술인, 상인, 주민, 행정가 등)로 구성된 조직 구성

- 새로운 예술인 발굴과 참여 문턱 낮추는 전략 필요

- 기획자 중심의 대표 조직 대신 장르, 역할별로 분과를 나누어 현장 의견 적극 반영

- 행정기관 (마포구, 서울시)의 이해관계를 높이고, 적극 협조할 것을 요청

- 홍대앞 외부에도 지속적인 홍보 필요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앞날을 걱정하는 확장 라운드테이블 구성원 모임 포스터

 

5. 2014년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모집

여기까지가 현재 2013년 하반기 홍대앞에서 공론화된 내용이다. 활성을 모색하는 과정은 사실 생존과 지속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 공간을 유지하고, 예술 활동을 보장하는 문화지구로서 수평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러한 수평적인 관계망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소하는 데 시간을 더디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다.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수직적인 구조가 이로울 지도 모른다. 그래서 홍대앞 문화예술 기본 토대를 재조명하는 기본연구와 사람들을 찾는 장기적인 목표와 현안들을 해결하는 단기적인 목표를 동시에 수행하는 협의체라는 구체적인 의견으로 점차 좁혀지고 있다.

홍대앞의 협의체 구성은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도, 2,000년대 중반 문화지구 관련 논의 때에도, 2011년 홍대앞 문화예술단체들로 주축이 된 사단법인 ‘홍대앞문화예술회의’가 발족했을 때에도 협의체는 꾸준히 모색되어왔다.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협의체는 대표성에 더불어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과 현안을 모아서 한 목소리로 풀어내고자 하는 데에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누구나 동의하나 누구도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몇 번의 이야기만으로 갑자기 협의체의 틀이 만들어 질 리도 없다. 또한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모르고 있다. 협의체 조성을 위한 준비모임도, 예산도 당장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홍대앞에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다른 문화예술 생태계와 달리 실체도, 범위도 가변성이 큰 홍대앞은 개별이면서 전체의 합이기도 한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력과 형태에 묶이지 않고, 몇 십년에 걸친 자유로운 유입으로 인해 예술의 다양성과 자생성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생태계가 되었다. 또한 개인이나 단체의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합심하여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서온 곳이 홍대앞이었다. 그러한 곳이 이제는 호소만으로는 지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의 가치를 더욱 잘 드러내면서도, 여러 내·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며 현안을 해결하고 장기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범연대 체계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무엇부터 해나가야 할까?

 

▲더 넓은 라운드 테이블 현장사진

 

우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거점이 필요하다. 거점은 이미 있다. 공적 플랫폼을 자처하는 서교예술실험센터이다. 민과 관이 모여 소통하는 구심점으로서 적합하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올해부터 공동운영단과 함께 기존의 소극적인 지원과 대관, 일부 자체 프로그램 제작에서 확장하여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와 만나고 교류를 해오고 있다. 현안을 공론화하고 홍대앞 문화예술 자원들을 조사하며, 실질적인 협의체 구성에 대한 논의를 이끄는 소통 창구 역할로 서교예술실험센터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창구이자 홍대앞을 지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홍대앞 문화예술인들이 개입하고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는 여의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상호 간의 이해를 기반으로 질서를 바로잡는 데에는 홍대앞과 같은 커뮤니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를 향해 정당성을 요구하는 역할에는 자격조건이 없다. 당신이 홍대앞에서 활동하고, 살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형태가 될지 모르는 이 협의체 만들기 과정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

가장 먼저, 이러한 소통창구 역할을 해나갈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2014년 공동운영단을 모집한다. 첫 번째 운영단보다 훨씬 더 고되고 벅찬 역할을 맡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뜻이 있다면 자신을 기꺼이 드러내주었으면 한다. 공동운영단은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 운영단 활동을 통해 예술 외의 영역을 읽으며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게 될 좋은 기회이다. 공적 영역의 조직체인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이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가 연대하고자 하는 이상을 실체화하는 씨앗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본 활동을 적극 권장한다.

2014년은 이러한 홍대앞의 바람에 응답할까? 이제는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눈앞에 떨어진, 풀어낼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필자_김해연

 소개_서울사람, 여자, 우주의 한 점, 블랙홀의 씨앗, 초콜릿과 고양이 사이에서 휴식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