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디다큐영화 <백 만 번 산 고양이>, <씨 없는 수박 김대중>, <그림 그리는 해녀>

2014. 4. 24. 14:16Review

 

삶, 오오, 사람

<백 만 번 산 고양이>, <씨 없는 수박 김대중>, <그림 그리는 해녀>

인디다큐페스티발2014

 

 

글_김혜연

 

세 작품을 고른 이유가 있다. 지지하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열혈 시청을 잠시 쉬기 위해서였다. 시청하면 할 수록 온갖 '감'들-정의감, 배신감, 자괴감이 넘쳐흘러서 벅차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사람이라봤자 '나쁜 시스템 안의 나쁜 사람과 상처입은 사람' 이다. 지금은 세상을 삿대질 하는 이야기의 시대이다. 게다가 분노가 앞서 소화가 덜 된 날 반죽의 이야기들이 빠르게 퍼지고 빠르게 잊혀진다. 청개구리 마냥 세상에서 사람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의 길고 깊은 이야기가 고팠다. 당신은 안녕하신지.

인디다큐페스티발 홍보물을 펼치고 숨은그림찾기를 흉내내며 세 작품을 찾았다. 앞선 밝힌 이유에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좋아하는 그림책', '좋아하는 뮤지션', '좋아하는 장소'. 고인이 된 일본의 노작가, 삼십대 중반을 달리는 음악인, 그리고 제주도 해녀 할머니들께 화만 가득한 청년이 갈구하는 숨구멍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본 다큐멘터리들에 근엄한 평을 달 생각은 없다. 독립예술이라고 찬사만을 선물로 보낼 의도도 없다. 독립다큐멘터리는 관객과의 자유로운 만남에 있어 많은 관문이 있다. 국내작들은 다른 영화제에도 출품을 할 예정이라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리뷰를 쓰는 목적은 여기에 있다. 인디다큐페스티발과 같은 자발적인 예술축제와 독립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글로, 그리하여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는, 연장선이 되고 싶다. 또한 보고 느낀 바를 곱씹은 후, '카더라'를 넘어 '이랬다 하여 이러한 느낌을 받았는데, 어찌 생각하세요?' 를 글 쓰는 중에 놓치지 않고 싶다.

 

▲<백 만 번 산 고양이> 영화중 한 장면 (사진출처 :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

 

<백 만 번 산 고양이>(아시아의 초점4)는 30여 년 전 일본에서 출간된 그림책으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사노 요코의 작품이다. 여러 사람의 고양이로, 때로는 길고양이로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얼룩고양이의 이야기가 죽음을 앞둔 작가, 어머니가 된 독자들, 세대별 여성들의 이야기에 맞물려 담담히 펼쳐진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국내신작전 20)은 늦깎이 블루스 포크 뮤지션의 이야기이다. 미국 블루스 작명법(신체, 과일, 전직 대통령 순서) 씨 없는 수박과 진짜로 본명이라는 김대중을 내걸고 2013년에 생애 첫 앨범을 녹음하고, 발매하고, 공연하는 모습을 담았다. 가사에 더불어 미처 못 담은 자신의 이야기가 걸걸하니 기타와 하모니카 선율 위를 노닌다.

<그림 그리는 해녀>(국내신작전 20)는 제주도의 작은 마을인 남원리 해녀, 바다 할머니들의 일상과 그림그리기 수업에서 벌어진 일들을 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할머니들의 진득한 속마음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눈치채셨을라나? 혀 끝에 어떤 맛들이 맴돌았다. 담백하고 정갈한 맛에 먹는다는 일본 음식과 진하고 정(푸근함)으로 먹는 한국 음식을 맛보았다. 운명이나 삶, 죽음이란 말을 일상 언어로 쓰는 일본의 정서, 미국 음악과 접신한 한국 아저씨의 관조, 오늘 벌 만큼 잡고 내일도 바다에 나서기를 바라는 할망들의 염원을 붙잡은 감독들은 이들과 함께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카메라에 담지 않았을까? 모두 점심시간과 가까운 때에 관람한 인연까지 더해져 뱃속도 그렇고 생각주머니도 허기짐에 시달렸다. 이 사람들에게서 원했고, 끄집어내기를 바란 문장들이 있었는데 운명처럼 낚시에 성공하였다. 간신히 요리한 세 문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군침이 도는 냄새가 났으면 한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영화중 한 장면 (사진출처 :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

 

"외로워도 슬퍼도 웃고 맙니다."

들장미 소녀 캔디는 악바리 근성으로 울지 않고 견뎌내지만, 그것이야말로 멘토들의 판타지이다. 아니면 펑펑 울면서 다 털어내고 다음으로 나아가라 한다. 정말 그리하였으면 좋겠다. 그게 안 되니깐 누군가의 매뉴얼과 성공 신화가 계속 돌고 도는 것은 아닌가? 인정하기와 미련 끊기는 누가 알려 줄 방법이 아니다. 내가 안다 하여도 잘 안 된다. 이 다큐멘터리들에선 멘토 대신 맨, 우먼, 그냥 사람이 나온다. '일단 살아봅시다. 좀 더 살아봅시다. 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가장 나이 많은 제주 해녀들은 일상과 특별한 체험(미술 수업) 중에 살아 온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천대받았던 '물질'을 시작하면서, 엄마의 따스한 인사, 풋풋한 처녀 시절의 연애, 아이를 기르던 때, 집도 사고 밭도 샀던 때를 떠올리며 수줍게 미소짓는다. 사노 요코 작가 또한 어둡고 괴로웠던 시간들을, 할머니가 어린 손주에게 들려주는 구연동화 마냥 상냥하고 흥이 느껴지는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림 그리는 해녀> 영화중 한 장면 (사진출처 :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이야말로 반 캔디파이다. 한 때 무심히 칙칙한 생활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유행이었다. 이 뮤지션은 그 경우와는 범주가 다르다. 우선 정말 웃긴다. 사실 웃을 일이 아니다. 온전한 집을 살 돈은 없고, 그 와중에 평양냉면이 생각나고, 불효를 일삼고, 애인은 바람을 폈다. 노래 부르는 이는 웃지 않는데 듣는 이는 피식 웃게 되는 마법의 비밀은 흥겹고도 끈적끈적한 멜로디에 찰싹 붙은 저음&자폭 김대중, 넋두리가 아닌 넋놀이로 승화시키는 데에 있다. 울적할 틈이 없다. 딱히 긍정의 에너지도 아니다. '아이고, 그냥 살련다.'가 밉지 않게 전해온다.

이 태도들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 살아봤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젊은)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는 매뉴얼북을 툭 던지지 않는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준다. 내 이야기, 견딜 만한 고통이라면 밀어내려 발버둥치는 쪽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지금의 나'를 받아들여 온 내 삶에 집중한다. 웃고 마는 것은 회피나 체념이 아니다. 삶을 붙잡아 온 시간들이 하나 둘 모여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결과일 테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이를 존중하여 해설은 거두었다. 그저다 그들이 무슨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감독들은 가만히 지켜보거나 종종 물어볼 뿐이다.

 

"죽음 냄새야 피할 까닭이 없지요."

이 다큐멘터리들에서의 다른 공통점은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2010년, 투병 중에 70세로 생을 마감한 사노 요코 작가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여보세요. 뇌로 암이 전이되었대요. 일상적인 말은 가능해요.' 지인과의 통화 중에 작가는 남 이야기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치 당신의 얼룩고양이가 동화 속에서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말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게다가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도 어린 시절에 동경하던 오빠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백 만 번 산 고양이> 영화중 한 장면 (사진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아직 젊은 뮤지션인 씨 없는 수박 김대중도 죽음에 가까이 있다. 가족이 요양원을 운영 중이며, 본인 또한 사회복지사 일을 했다고 한다. '요양원 블루스'라는 곡에서는 노인의 즉흥 노래부터 흘러나온다. '다 살았네, 다 살았어. 나이는 많고 다 살았네. 죽을 날만 기다리니 얼쑤! 이놈의 사람은 쓸 데가 없응께 저승으로 데려가덜 않습니다.'

해녀 할머니들은 오죽하실까. 바다에서 죽은 사람을 건져 올리기도 하고, 여든 가까이 나이를 먹으니 죽음은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짙다. 나에게서 나기도 하고 남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백 만 번 산 고양이'에서는 작가 뿐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이,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받은 이들도 짤막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사노 요코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대신 어린 시절과 장례식장에서 쓰인 사진으로만 얼굴이 나온다. 왜 목소리 인터뷰만 담았는 지는 모르지만, 추측해보면 동화를 만나는 세대별, 국가별 (작가의 고향은 중국 베이징이다.) 여성 독자들이 작가를 아우르는 세계관, 공감의 조각들은 아닐까?

 

▲포크가수 김대중의 1집 <씨없는 수박> 앨범쟈켓 (사진출처 : 붕가붕가레코드 홈페이지)

 

'씨 없는 수박 김대중'에서는 요양원을 나서는 모습과 쓸쓸한 한강 둔치에서 '요양원 블루스'를 부르며 생각에 잠긴 주인공을 보여준다. 인터뷰 장면은 흑백으로 변한다. 짙은 원색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와는 너무도 다르다. 그 바람에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묘한 거리감이 생긴다. 본인이 본인2라는 분신을 무덤덤히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그러하게 전해왔다. 할머니와 달리 자기 파트에서 빠른 비트로 노래하는 '요양원 블루스'나 '틀니 블루스', '불효자는 놉니다'에서 노인에 대한 공경과 동정 대신 '새삼 남 일도 아니고, 언젠가 내 일이 될 텐데.'라며 장난을 걸며 늙어가는 이들을 위로한다.

'그림 그리는 해녀'에서는 쇠약해진 몸을 약으로 달래며 바다로 향하는, 희끗희끗하고 쭈글쭈글한 할머니들 그 자체에서 줄어드는 시간을 느낀다. 예전에는 끄떡 없었는데 이제는 두통이 밀려와서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해초를 이용하여 귀마개로 쓰는 할머니, 오랜 해녀 생활로 바닷가의 울퉁불퉁한 바위를 닮은 두 손으로 투박하니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들은 바다는 고된 육지 생활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위안의 터전이라 한다.

이 죽음의 냄새는 막는다고 안 찾아올 리 없다. 생로병사의 이치에 따라 누구나 나이가 들면, 병에 걸리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건은 당연하다. 겪어보지 않으면 너무 아득하고 두렵다. 그러나 이들은 첫 번째 문장의 '웃고 만다.'를 여기에도 적용한다. '일단 살아봅시다. 살 날까지 좀 더 살아봅시다. 살다 보면 죽는 것도 일과 중 하나이겠죠.'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나입니다."

유난히 계속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다.

- 백 만 년 산 고양이-

사노 요코 작가의 장례식 장면이다. 얼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작가가 느닷없이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미술 도구들과 작품집들 위에 걸린 대형 사진의 미소가 너무도 환하다. 흐느끼는 사람 하나 없이 정중하게 치뤄지는 장례식은 묵념 후 관은 장례식장을 빠져나간다. 직원들은 빠르게 뒷정리를 한다. 작가의 사진은 돌돌 말아 따로 둔다.

- 씨 없는 수박 김대중-

녹음실에서의 인터뷰 장면이다. 주인공은 막걸리에 구운 계란을 먹으며 엔지니어에게 평소 공연하는 대로 털털하니 녹음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가 핀잔을 듣는다. 엔지니어는 라이브는 라이브답게, 앨범은 앨범답게 공들여야 한다는 눈뜨고 코베인의 깜악귀이다. 잠시 옥상에서 쉬는 중에 감독이 소감을 묻는다. '첫 앨범인데 유작같아요.'

- 그림 그리는 해녀-

그림 수업은 '손 그리기, 바다 그리기, 가족 그리기, 나 그리기' 순서대로 진행한다. 해녀들이 그린 '나'는 쭈글쭈글한 모습이 아니라 두 볼이 붉그스름하고 곱게 옷을 차려입은 열 여덟, 열 아홉 처녀 모습을 그린다.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젊은 나의 이야기를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마지막 아침,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에게 아들, 손자뻘 되는 감독이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어머니, 잘 다녀오세요.' , '빠이빠이.'

 

<그림 그리는 해녀> 영화중 한 장면 (사진출처 :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

 

한 때 별명이 '개코'여서 그런지 죽음이 아닌 다른 냄새들도 맡았다. 세 작품 모두 기억해두면 좋은 메시지들을 품고 있긴 하다. 삶을 사는 긍정어린 방법-가족과 남을 사랑하며 살기, 시간이 약이다, 있는 것에 감사하고 욕심내지 않기, 즐겁게 살기-과 같은 부류 말이다. 그것을 알고 싶어서 관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외, 허무와 같은 씁쓸하고 비린 냄새들이 났다. 유명인도 장례문화산업에서는 고객에 지나지 않고, 깡따구 있어보이는 사내도 여린 마음이 있고, 할머니는 늙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설레던 시절의 연장이다. 이러한 냄새들을 맡으면 안심도 되고 눈물도 난다.

사노 요코 작가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은 '그리기 쉬워서'였다. 그리고 홀로 있는 고양이의 고독한 눈빛을 좋아했다고 한다. 작가는 매번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을 그리며 작품을 만들었다. 고양이 한 마리와 10년 가까이 같이 살아보니 무슨 말인 지 알겠다. 간단한 곡선과 직선으로 이뤄진 몸매와 할 이야기가 많은데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더러는 숨겨둔 깊은 눈빛이 말그대로 고독해보인다. 그러나 작가와 다른 생각은, 아무 고양이를 그려도 그 고양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양이들은 눈과 털 색깔, 무늬, 성격, 상처에 따라 다 다르다. 사람도 그러하다. 이 다큐멘터리들에서 만난 사람들은 꼭 고양이를 닮았다. 몸 구석구석에 인연과 세월이라는 이야기가 그득하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지만 동시에 특별하기도 한 이야기꾼은 아닐까?

어린 소녀 독자의 낮잠자는 모습, 오늘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뮤지션, 어김없이 해녀를 품는 아침 바다. 마지막 장면들이다. 감독들은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열린 결말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삶에 잠시 이야기를 들으러 간 사람의 배려로 다가온다. Life goes on.

 

 필자_김해연

 소개_서울사람, 여자, 우주의 한 점, 블랙홀의 씨앗, 초콜릿과 고양이 사이에서 휴식중

 

 

 인디다큐페스티발2014

Seoul Independent Documentary Film & Video Festival 2014

 일시 2014년 4월 10일(목) ~ 4월 16일(수)

 장소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주최 (사)한국독립영화협회

 주관 인디다큐페스티발2014 집행위원회

 국내 독립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제작자 발굴과 흐름을 주도해온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실험, 진보, 대화' 라는 슬로건으로,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성취를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자, 연구자, 관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의 부흥기를 만들어나가고자,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통해 관객과 독립다큐멘러리 제작자들에게 다가갈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