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허대욱의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

2014. 5. 7. 13:51Review

 

연주되는 이야기

허대욱의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

LIG아트홀, 2014 협력아티스트

 

글_박다솔

 

나는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할 수 있다. 음악은, 잘 알지 못하지만 자주 듣는 것이며, 무한히 반복해 들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때때로 달리 들리는 것이고, 내게 음악은 언어를 대신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은 내게 이야기이기 보다는, 감성에 더 가까운 것이다. 오선지 위의 음표와 마디를 읽을 줄 모르는 내가 이제부터 적어 내려가는 글은 자유분방한(제멋대로인) 음악 애호가(‘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가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며 쓰는 글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허대욱의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이야기의 힘을 빌려 탁월하게 들려주는 음악가를 즐겁게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의 태도와 방식이 그의 음악을 한층 더 주의 깊고 세밀하게 들을 수 있도록 관객의 태도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허대욱은 곡을 연주하기 전, 객석을 향해 허물없이 말을 걸어왔다. 객석에 앉아 그가 들려주는 피아노 선율을 고상하고 편안하게 감상할 생각이었던 나는 자세(태도)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허대욱은 각각의 곡을 연주하기 전, 자신이 연주할 곡이 어떤 곡인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자신이 이 곡을 쓸 때 어떤 상태였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악상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예술가 혹은 생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각각의 곡이 끝난 뒤에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길 원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음악이 관객에게 온전히 가 닿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허대욱은 자신의 음악을 관객이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음악이 들려주는 말들을 더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매개로 관객을 유인하고 있었다. 감상에 머무르려 했던 관극의 태도는 어느새 적극적인 듣기의 태도로 자연스레 바뀌고 있었다.

첫 곡은 ‘Trigram1.2.3’으로, ‘Trigram’은 태극기의 괘(卦)를 뜻한다. 2006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오랜 시간 타지에서 살아가며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음악을 하고 있지만, 동양의 사상과 근본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해, 또한 알리기 위해 동양의 소리를 피아노 선율에 담아내고자 했다. ‘Trigram’은 공연의 전체 구성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는데, 이 곡을 통해 이 공연의 제목이 어째서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인지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를 건반으로 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랜드 피아노의 현을 술대로 치는 탄현 기법으로 연주하기도 하고, 현 사이에 책받침과 쇠막대를 끼워 넣어 이질적인 타악음을 만들기도 하며, 현 위에 놋쇠그릇을 올려 공명음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피아노의 여음이 퍼지는 동안 간간히 종을 울렸다.

 

 

총 3부로 이뤄진 ‘Trigram’을 연주하는 내내 그는 분주히, 그러나 진지하게 음악을 구성해나갔다. 고음과 저음을 극단적으로 빠르게 오가는 피아노의 주선율 위에 동양의 관/현/악의 소리를 얹었다. 공연의 제목에 ‘피아노를 위한’ 혹은 ‘독주를 위한’이 아닌, ‘피아노, 독주를 향한’이라는 지향적인 제목을 붙인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라는 목표점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이 곡을 연주하는 내내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고, 페달링을 하다가도 몇 번이나 소도구를 바꾸는 허대욱의 모습은 열정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꽤 인상적이었고, 개성적인 연주를 마친 허대욱은 자신의 첫 곡이 어떤 관객에게는 난해하고 어려웠을 것이라 얘기하며 다음 곡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곡은 ‘From my father’s song(나의 아버지로부터)’라는 곡으로,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음악을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곤 했던 기억을 되새겨 만들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관객에게 곡 어디엔가 놓이는 휘파람 소리를 잘 찾아 들어보라 말하며 연주를 시작한다. 허대욱의 이런 ‘사전 설명’은 ‘음악 듣기 설명서‘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건조한 설명이 아니라 따뜻하고 친밀한 대화에 가까웠다. 그리고 시작되는 연주를 통해 간간히 휘파람처럼 들려오는 어떤 선율을 느끼는 것으로 관객은 그 이야기에 기꺼이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거칠고 실험적이었던 첫 곡에서 땀을 뚝뚝 흘리던 그의 태도와는 달리, 서정적이고 섬세한 두 번째 곡을 연주하는 허대욱의 표정도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허대욱은 공연 전 날 사고가 나서 다리를 다쳤는데, 이 때문에 프랑스로 출국하는 날을 늦추게 되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다고 말하며 ‘To the west(서쪽으로)’라는 세 번째 곡을 들려주었다. 적절한 위트가 섞인 호흡은 관객의 긴장도 함께 풀어주기 마련이다. 다음으로 허대욱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애도의 곡으로 ‘Intermezzo(간주곡)’를 연주했다. 자신이 음악인이기에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슬픔을 함께하려 한다는 말과 함께.

다섯 번째 곡은 ‘Ttan ttun song(딴뚠송)’으로, ‘딴뚠’은 자신의 조카가 자신을 부르는 발음을 그대로 적은 제목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조카 한 명이 있는데, 음악가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음악가인 누나, 피아니스트인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조카가 음악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려 했었다고 한다. 조카를 피아노 의자에 앉혀놓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가르치는데 아무리 가르쳐줘도 ‘미’와 ‘솔’ 건반만 치고 앉아있기에, 자신이 조카를 위해 ‘미’와 ‘솔’이 주선율인 음악을 만들었다고. 그 음악이 바로 ‘Ttan ttun song’이다. ‘미’와 ‘솔’밖에 모르는 조카를 위해 만든 음악. 관객들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한 곡의 피아노 선율에서 ‘미’와 ‘솔’을 발견해가며 음악을 듣게 된다.

이런 듣기의 과정이 흥미롭다. 관객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음악이라는 결과물로 듣게 되고, 그 음악에서 이야기를 다시 추출해내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와 음악이 순환되는 과정은 연주자와 관객의 사이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마지막 곡은 ‘Resistance(저항)’로, 예술가이자 생활인으로서의 고민이 녹아든 곡이다. 허대욱은 “사람은 누구나 저항하며 살아간다.”고 말하며 자신의 유학생활 중 가장 가난하고 어려웠던 초기 3년간의 시절을 돌이켰다. 피아노도 없던 지하 골방에서 살아가며, 처절한 심정으로 만든 곡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 곡에 자신의 ‘저항’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곡은 앞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려주었던 것과 대비되며 강렬하고 거친 음색으로 표출됐다. 그는 마치 고되었던 지하골방에서의 생활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은 표정으로, 거칠고 빠른 타건으로 연주를 계속했다. 그는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최대한 자신 스스로도 이야기에 몰입하여 연주한다.

허대욱은 [To The West], [Trigram] 등 총 4개의 앨범을 발매한 뮤지션으로, 그는 클래식 작곡을 기반으로 재즈의 즉흥 연주를 적극 활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큰 골격이 클래식의 서정성(주제)이라고 한다면, 그 이야기에 살점을 붙여나가는 무대 위의 자신의 현 상태가 재즈의 자유로운 즉흥성(변주)의 성격을 갖는다. 허대욱은 공연 중 관객에게 악보 한 장을 보여주었는데, 그곳엔 단촐한 음표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뼈대였고, 곡의 주제였다.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여러 곡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는 개인의 삶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다만, ‘Trigram’을 제외하고는 다른 곡들이 서정적인 성격의 음악에 머물러 있었고,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라는 주제가 전체적으로 관통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허대욱은 ‘이야기꾼’의 기질을 갖은 음악가이다. 자신이 음악에 써내려간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는 자연스레 ‘이야기하기’의 방식을 택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이야기를 시도한 점으로도 충분히 그의 음악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가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에 있는 음악인이라 평가 받는다고 어디선가 보았다. 적어도 그의 공연은 ‘어려운’ 클래식과 ‘난해한’ 재즈 사이에서 유쾌한 이야기였고, 음악의 적극적인 구애의 현장이었다.

 

 

*사진제공_LIG아트홀

**LIG아트홀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ligarthall.com 

 필자_박다솔

 소개_예술경영을 공부했고, 공연 기획을 하고 있다. 혼자 읽고 혼자 쓰다가 누군가에게 그 즐거움을 들켰다. 들켰는데 기뻤다. 아름답고 쓸쓸한 것들을 좋아한다.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

서울│2014년 4월 25일 (금) 8pm LIG아트홀ㆍ강남

부산│2014년 4월 27일 (일) 5pm LIG아트홀ㆍ부산

 

 

 허대욱은 프랑스와 한국을 가로지르며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작곡가이자 재즈 피아니스트다. 8살에 피아노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추계예술대학 작곡과로 진학하며 작곡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음악에 심취해있던 그는 인상주의와 재즈를 관통하는 음악적 특징에 매료되어,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재즈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열었고 2005년에는 한국 최대의 재즈 페스티벌인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초대되기도 하였다. 이후 2006년에 자작곡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피아노 트리오 앨범, <To The West>(2006)를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재즈계에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라벨, 드뷔시 등의 인상주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새로운 예술적 경험에 대한 열망에 힘입어, 그는 첫 앨범이 나온 해인 2006년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에브리 음악원(Conservatoire d’Evry)에서 재즈 피아노 공부를 마쳤고 2007년에 필립 라카리에르(Philippe Lacarrière)와 함께 자신의 두 번째 피아노 트리오 앨범 <Le Moment dispersé>(2007)를 발표했다. 이어 2010년에는 다소 긴 공백만큼 더 깊고 섬세한 선율로 다가오는 자신의 첫 피아노 솔로 앨범 <Trigram>(2010)을 발매했고, 2012년에 요니 젤닉(Yoni Zelnik), 마티유 샤자렝(Matthieu Chazarenc)과 함께 한 세 번째 피아노 트리오 앨범, <Interval Of Parallel >(2012)을 발매했다. 프랑스에서 허대욱의 독창적인 음악은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그의 감수성에 깊은 흔적을 남긴 클래식에 대한 애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인상주의 클래식 작곡을 기반으로 하면서 재즈의 즉흥 연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업을 통해,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독특한 색채의 보편적인 음악을 얻어내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 2014년에는 LIG문화재단의 협력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피아노, 독주를 향한 오케스트라>와 <재즈 트리오와 스트링 체임버>라는 타이틀로 총 두 차례에 걸쳐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