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

2014. 4. 17. 18:46Review

 

VaQi의 <남산 도큐멘타> 

- 나열된 기록들

 

글_김연재

남산에 대한 기록을 본다. 남산에 있는 극장, 드라마센터에서. 관객은 관객이 현존하는 그곳에 대한 기록을 본다. 지금, 우리가 함께 존재하는 여기에 대하여. 마치 자신의 조상신을 차례대로, 시초부터 되짚어보듯이 남산 도큐멘타는 극장과 남산 곳곳에 묻어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극 연습을 위한 준비 작업

햄릿 역할을 맡은 배우가 등장하고,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는 햄릿을 연기한다. 연기가 이뤄지는 무대 뒤편에서 갑자기 소음이 들리고, 한 무리가 등장한다. 무리의 정체는 남산 일대를 둘러보고 온 유령 산책관객 일행이다. 연극의 극적 관습은 여기서 깨진다. 무대 위에는 현실로 착각할 만한 드라마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뒤에서 우리와 같은 관객이 등장하고, 우리가 함께 있는 이 곳이 극장이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안내를 맡은 배우는 관객을 일자로 세워놓고, 극장 구석구석을 설명한다. 반원형과 프로시니엄을 합쳐놓은 한국 최초의 현대 극장. 이렇게 연극은 시작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햄릿과 햄릿 역할을 맡은 배우와,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 무대 위 관객을 바라보는 관객, 그리고 남산 드라마센터라는 극장의 소개와 함께 연극은 시작한다.

 

나열된 기록들

관객과 배우라는, 객석과 무대라는 경계가 정리되고 극은 시작한다.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배우들이 등장해서 선언을 한다. ‘우리의 연극은이라는 말을 붙여 남산 도큐멘타를 여러 가지로 정의한다. ‘우리의 연극은 주인공이 극장이고, ‘연출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연출은 없었고, 주인공은 극장인지 남산인지 헷갈린다.

드라마를 위한 플롯보다는 남산예술센터의 연대기를 따라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남산예술센터의 설립자인 유치진, 이후 관계당국의 협약에 따라서 연습장으로도 쓰이고,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다용도로 쓰였다는 사실을 가볍고 빠르게 보여준다.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했던 주요 작품을 과장되게 재연해보기도 했고, 중간중간 극장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준다. 그리고 극장 밖, 남산에서 이뤄졌던 고문을 재현해보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작품들을 보여주며, 한국연극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재정 문제로 공연장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게 된 것을 보며, 한국 연극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가 가진 상징성을 보여주는 듯 했는데, 고문 장면이 등장했다.

극장 옆에 있던 안기부 건물에서 고문이 이뤄졌던 때가 있었다. 남산예술센터 뿐만 아니라, 극장이 자리하고 있는 터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는 욕망이 보이지만 혼란만 가중시킨 것 같다. 1962년부터 2014년까지 남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들으며 드는 생각. ‘이건 도대체 무슨 장르지?’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혼란스러워진다. 남산예술센터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남산에 대해서 다뤘겠지만, 박물관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건지,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서울시의 홍보물을 보고 있는건지 헷갈린다.

이 혼란은 사건들을 늘어놓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도 중심이란게 있다. 그런데 남산 도큐멘타는 사물의 존재를 제시하는데 그쳤다. ‘남산이라는 키워드로 브레인스토밍을 한 후에 그대로 보여준 상태. 브레인스토밍한 것을 엮지 않고 제시하는 방법으로 보여줬다. 큰 가지와 작은 가지를 구분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모아둔 자료들을 무대 위에 다 던져버렸다. ‘남산관련 키워드를 어떻게 재구성할까라는 기대는 처참히 배반 당했다. ‘재구성이라는 것은 연출 컨셉인데, 연출 컨셉이 그저 보여주기와 극장 안에서 할 수 있는 시도를 시도하는 것에 그쳤다 

 

 

연극성-공간에 대한 고민

처음에 연극에 대한 기대치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극장 안팎을 샅샅이 보여주려는 시도가 마치 생선살을 발라 앙상한 뼈대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 뒤편이 공개되면서 다른 시공간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일이 무대 뒤편까지, 그리고 객석까지 환하게 조명을 비추어 보여주고, 일부러 햄릿 연기를 하던 배우가 퇴장할 때 조명 하나를 직접 떼어내 극장의 부분을 보여주었다.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행위들을 모두 해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시도들은 이내 진부한 시도들로 지워졌다.

객석과 무대 경계를 없애기 위해 흔히 하는 방법은 객석에서 배우가 등장하는 방법, 그리고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어서 관객이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것, 또는 영상으로 관객들 얼굴 비춰주기 등등이 있다. VaQi도 사용했다. 배우 두 명이 관객석으로 등장하며 객석에 불이 켜진다. 배우는 남산이라는 단어로 2행시를 짓도록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겨준다. 우리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2행시 시제를 통해 다시 한 번 환기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경계를 허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장을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일환, 극장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시도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극에서 영상을 사용할 때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자칫하면 영상이 연극성을 쉽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VaQi는 인터뷰 영상과 극장을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우선 인터뷰 영상은 남산을 오르는 시민과 남산 주변 상인들을 인터뷰한 자료이다. 극단에서 공연을 만들기 위한 자료의 일환으로 간직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인터뷰 자료를 보여주었다. 생생한 증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터뷰이들을 또 하나의 남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장소를 이루고 있는 산 역사를 만나려는 의미? ‘도큐멘타라는 공연명에 충실한 말하기 방법? 여러 갈래로 생각해봤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극장공간을 찍은 영상도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기 위한 편리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공연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신문자료들도 마찬가지로 남산에 대한 기록을 꼭 남산예술센터에서 봐야하는지 의문을 품게 했다.

 

 

그것이 문제로다

남산예술센터 개관기념 공연인 햄릿의 일부 장면을 공연 앞뒤에 배치하고, 남산예술센터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연기하거나 보여주거나 말해주었다. 햄릿은 존재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는 극장 안에 존재할 것인가, 밖에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동시에 남산예술센터의 과거 역사를 왜 보여줬는지 단번에 설명해주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위기들을 겪고 어떤 방식으로 이 자리를 지켜왔는지를 보고, 앞으로 남산예술센터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질문을 담는 의미있는 작품으로서 햄릿은 기능했다. 개관기념 공연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해냈다.

대부분의 공연팀은 텍스트를 완성시킨 뒤에 배우들과 리딩을 하고, 장면을 만들어나간다. VaQi는 공간에서 공연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들었다. VaQi가 남산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남산이 아닌 또 다른 남산을 볼 수 있을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VaQi만의 방식대로 남산에 대해 얘기한다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궁금했다.

VaQi는 새로운 방식으로 공연성에 부딪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극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보다 새로운 시도를 할 줄 아는 정신때문에 VaQi를 주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박한 연극계를 보여주는 슬픈 얘기다.

분명 극장공간과 시간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시도들이 보이긴 하지만 형식 뿐이다. 정확히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시각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정리하기에 급급했다. 부족한 내용물을 화려한 포장지로 보완하려는 공연으로 보지 않도록, 좀더 집중과 깊이를 가져가길 바란다.

 

필자_김연재

소개_연극은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