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거리로 나온 예술인들 :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인들의 선언'을 바라보며

2014. 5. 15. 19:27Review

 

가.만.히.생.각.할.시.간.이.필.요.해.요

'거리로 나온 예술인들 :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인들의 선언'을 바라보며

 

글_김해연

 

좋아하는 일본 만화 '심야식당'의 단골손님, 만담가 엔추 선생님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한가하거든요. 만담회가 많이 중지돼서. 어찌된 건지, 괜찮은 일부터 없어진단 말이야.'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때를 배경으로 한 이 에피소드에서는, 기운을 잃은 손님들의 요청으로 짧은 만담이 펼쳐집니다. 이윽고 작은 식당에 소박한 웃음꽃이 피어나지요. 만담을 끝낸 선생님은 뒤이어 말합니다. '마스터, 소쿠리 꺼내와요. 입장료 모으게. / 자, 소쿠리 돌릴 거니까 되는 대로 넣어요. 성금에 보태자고요.' (8권 113화, '유부' 중에서.)

 

한국이 흔들립니다. 세월호와 보낸 한 달이 사람들은 물론, 옛 일과 머지않은 날도 흔듭니다.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말이 턱 막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온갖 감정과 사실이 쏟아져 나옵니다. 정보의 힘도 대단하였습니다. 초반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해양 전문가'로 만들더니, 지금은 나라를 걱정하는 '투사'들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저 만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까닭은, 이른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해 온 이가 마주한 또 하나의 상황 때문입니다.

나라 전체를 충격에 빠트리는 일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웃음과 즐거움을 감춥니다. 예능 프로그램과 음악 방송을 중단하고, 축제나 행사들도 취소 또는 연기를 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야외 일정이 많은 4,5월 중에 벌어진 일이어서 제일 왁자지껄할 때가 갑자기 조용해지니 어색하기만 합니다.

구조 활동이 난관과 오판, 회피와 전가에 휩쓸려 길어질수록 예술인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보입니다. '을'의 위치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은 예술인이, 제대로 된 추모문화를 준비할 의지가 없는 현실을 말이죠.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동감한 취소가 점점 취소를 통보받는 일방적인 상황이 되어갑니다. 공식적인 추모 자리에서는 엄숙과 형식의 벽을 세워 여러 예술로 풀어낸 애도의 표현들을 막습니다. 다른 상황을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때에 예술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 하는, 다락방에 올려 보내고 끝날 때까지 꼼짝 말고 있으라는 철부지 신세를 강요받는 일에 질문을 던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예술인도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따라야 하나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실 분 있나요?

 

 

이 분위기와 구조를 깨고 스스로 나서기를 제안한 한 음악인에서 출발한 일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지난 5월 5일, 즐겨 사용하는 SNS에 장문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이번달 공연이 여섯개 취소되었고, 정민아는 7월 공연까지 취소되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공연이 다 없어지고, 새로운 보릿고개의 시절에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다보니 누군가가 "니들은 방구석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만 같더군요. 이번 세월호참사 때문에, 가면과 두터운 화장 뒤에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맨 얼굴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이 엄청난 상실과 비통을 이겨내는 방법에 관해서는 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을까요?

(중략) 저는 지식인도 아니고 선생님도 못되는, 그저 시골에 사는 못난 음악가에 불과하지만, 이 어린이 날에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번만큼은 제발 가만히 있지 말자고. 금방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따지고, 힘을 모아 뭔가 바로잡아 보자고. 적어도 해보기는 하자고 말이죠. (중략) 압니다. 작은 음악가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엠프도 없이 노래나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죠. 하지만 뭐라도 해야하니까요.'

 

 

동료 음악인들의 동참을 제안한 '사이'의 글은 삽시간에 '좋아요'와 '공유하기' 기능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약 80여 음악인과 일부 다른 장르 예술인들이 모였고, 5월 10일 ~11일 오후, 서울 홍대앞 거리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인 공연과 시위를 하였습니다. 마땅한 장비도, 스탭도, 안내물도 없는, 축제보다 플래시몹에 가까운 이 돌발 행동들을 어떠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첫 날은 온라인에 모인 기록물들을, 둘째 날은 궂은 날씨 아래 펼쳐진 현장을 직접 보며 여러 생각이 밀려들어왔습니다. '같이 살자.' 라는 메시지에 응답하고 한 자리에 모인 유대감, 행동하는 예술인, 거리 예술과 거리 풍경의 딜레마, 오늘날 예술에 대한 바라봄에 대한 많은 생각이 밀려듭니다.

이 글을 통해 '제 생각이 맞았다.'를 주장하기보다는, 체감하고 느낀 바를 쓰려합니다. 홍대앞은 도심 어디에나 있는 번화가이자 해외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라지만, 거리 공연을 품던 유연함은 더 많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심하게는 거리예술이 해프닝, 잠깐의 구경 거리, 인증샷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 물론 개별들의 자발적인 모임임을 감안하더라도 온라인에서 붙은 불씨가 거리로 나서니 활활 타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적 재난에 목소리를 보태는 예술인들의 행동이 돈 쓸 곳에서 문화와 휴식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홍대앞이어야 할까요. 버스킹이 벌어져 온 곳이고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요. 이 진지한 공연과 시위가 지금의 홍대앞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나요. 아니면 유대감 확인, 예술인 개인들의 애도와 선언을 확인하는 자리면 되었을까요.

 

 

샛길이지만, 거리예술과 더불어 자발적인 문화행동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 이어나가겠습니다. 우리나라 도시에는 골목과 거리는 있어도 그 사이에 사람이 모일 만한 공간이 부족합니다. 인도까지 차지한 상가들의 진열장, 이용 제한이 있는 규격화된 공원들,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거쳐야하는 집회도 한 몫 합니다. 도시의 거리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머물 곳보다 지나칠 곳이 더 많습니다. 홍대앞 거리가 그러합니다. 예술과의 공존이 머무르던 곳이 점차 상업에 밀리고 있습니다. 문화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점점 걱정이 되는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마포구청에서 9시 이후로 거리공연 자제를 촉구하는 거리깃발이 내걸린 것까지 보았습니다. 거리는 허가와 통제의 공간인가요. 예술로 자유로이 표현하고 만나기 쉬운 공간이 아니었나요.

거리예술도 좀 더 많은 상상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인들의 선언'을 포함해 지금까지 봐 온 거리예술은 실내 공연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버스킹이 간단한 장비와 악기로 벌어지는 공연형태라고는 해도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야외의 특성상 실내공연과는 다른 느낌, 공연방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리 축제에의 자유로운 관람 독려 대신 통상적인 안내와 통제에 대한 고민도 같이했으면 합니다. 옛날엔 '마당놀이'라고 불리며 신분을 내려놓고 즐기던 잔치 문화가 분명 존재했는데, 지금은 예술인도, 지나던 시민이나 알고 찾은 관람객들도 온전히 마음을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우리네 '광장문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인들의 선언'으로 넘어갈게요. 그 전에 패턴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패턴인식에 능한 생명체라고 합니다. 패턴(형태, 양식, 틀, 구조, 약속)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면서 점차 잘 순환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인 물이 썩는다고, 너무 익숙해지면 느슨해지고 쉬쉬하게 되며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이를 고치기 위해 새로운 패턴을 제시하거나 주장하면 잔뜩 경계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어떠한 손익여부도 계산하지 않고 올곧이 바라보며 해석하고 새로운 변화 조짐을 '표현 (작품, 활동)'으로 드러내는 것은 예술이 제격이지 않은가요?

그러나 이번 추모 문화제들에서도 기존의 패턴만 보였습니다. '즐거운 분위기를 조장하면 안 된다.', '엄숙한 가운데 슬픔과 한을 드러낸다.', '추모에 가까운 예술 표현과 작품만 허용한다.', '공연, 참여 설치물 만들기' 이러한 것들이 펼쳐졌습니다. 때문에 홍대앞에 자발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모인 이번 일에 많은 기대를 가졌습니다. 새로운 추모, 시위와 관련한 문화 패턴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에 올라 온 리뷰들도 보고 잠시나마 현장으로 나섰습니다.

 

 

고백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술은 좋은 것이며, 사람들이 좋아해야하만 하는 이유를 저는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최근 들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암암리에 인정해 온 말을 거부하는 중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예술과 관련한, 새겨들을 문구와 의견을 인용할 기억력과 꼼꼼함도 부족합니다. 여러 모로 명쾌하지 못 해 죄송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설명하면 반감이 되고,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 하기에는 성의없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좋아하던 홍대앞, 홍대앞에 자유로운 문화가 있어왔으니 누구든지 뜻을 모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낡은 패턴으로 느껴집니다. 지금의 홍대앞은 상업과 관광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문화예술을 품어 줄 여건을 많이 잃었습니다. 거리로 나오고, 노래를 부르고, 다른 예술을 펼치고, 추모와 연결되어 있는 상징물(배, 종이비행기, 바람개비), 소신을 담은 피켓들이 홍대앞 거리를 채웠고, 예술인들의 진정어린 마음을 확인하였고, 심지어 그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제 안에 아주 깊은 공감과 울림이 밀려오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간의 결정과 준비과정보다도 변화한 홍대 앞을 제대로 인지하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거리예술이나 문화운동을 기획하는 전문단체 주관이 아닌, 개별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사실에 힘을 싣고 있는 힘껏 응원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말의 번화가로 많은 예술인이 나왔지만, 이 행사를 알고 있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1인 버스킹이나 시위로 보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알고 보는 사람인데도 수많은 인파와 상가, 주변 공사와 자동차의 소음에 묻혀 고립된 느낌을 가졌습니다. 동시다발적인 1인 버스킹 형태가 적합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요? 너무도 중요한 메시지와 의지를 보여주러 나온 자리이기에, 지나던 시민들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을 효과, 성과라 단정 짓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에 올라 온 사진이나 영상도 거의 참여한 예술인들의 공연 중심이고, 거리로 나서서 무엇을 나누었는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예술인 스스로 거리에 나와 표현을 했다는 확인으로만 마무리된 것은 아닌 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술인은 작품과 활동으로 마주하는 대상과 교감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예술인, 독립예술인들을 지지하고 함께 행동하는 영역에 있을 테지만 예술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시하며 행동하는 것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여도 끝까지 그 힘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쉽지 않지만, 예술도 분명히 그리해야 합니다. 버스킹 경험이 많아도, 홍대앞이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어도, 사람이 많은 곳으로 향하여도 철저한 준비와 실행력이 없이는 예술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흔적에 지나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여드름, 곰보 자국, 흉터로 가득합니다. 책임자를 문제 삼고, 덩달아 자기 자신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이면 좋은 것이고 시민을, 경제를 위해 공공과 상업 영역의 새 주소를 부여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는지요. 교육, 복지, 상품 영역이 아닌 창작 자체에서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지금도 많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그러한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글로, 노래로, 춤으로, 여러 표현들로 자신들의 작품으로 기꺼이 마음을 다친 이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위로와 분노의 언어가 공감을 얻어 함께 나라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생겨납니다. 아직 미미하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서두에 만화 심야식당을 소개한 이유는 현장에서의 커뮤니티에 대한 바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작은 식당은 거의 단골손님들이고, 약속을 따로 하지 않아도 언제든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슬픔 중에 한 예능인 덕분에 웃을 수 있고, 더욱 공감하며 마음을 모아 적게나마 성금도 모으는 장면이 무척이나 눈에 밟힙니다.

물론 우리도 모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로 온라인에서, 일부 대형 광장에서 한 목소리를 내었고, 늘 오래토록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도 편리한 인터넷과 스마트기기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끈끈한 관계를 보장하지 않음을 이제는 경험으로 알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리로, 광장으로, 현장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의 필요성은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쪽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다시 열어 줄 사람은 예술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주는 즐거움과 공감어린 작품들이 작은 만남들을 계속 이어지게 할 힘이라고 믿습니다. 

 

 

편히 모일 공간이 부족한 대신, 작은 규모의 예술(티케팅에 성공하는, 값비싼, 소비 영역의 예술의 반대)이 제가 생각하는 대안입니다. 그렇기에 이 자발적이고 간절한 예술인들이 바로 보여준 마음인 불씨들이 불붙었다 불꺼지고의 반복 대신 계속 타오르는 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실행까지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모일 수 있다는 것은 확인했으니까 그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해요. 너무 일적인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필요합니다. 예술이 응집력을 기반으로 함께 사람들 사이로의 확산과 시대를 해석하고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창작말고도 여러 영역의 예술인은 물론 타 분야와의 연대와 협업을 고민해야합니다. 일이지만, 더 좋은 예술을 위해 필요합니다.

무책임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으나, 저는 스스로에게 '가만히 생각할 시간'을 제안하였습니다. 너무 많은 감정과 정보, 사실이 넘쳐 흐르는 중에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대한 민낯을 바라보는 중입니다. 더욱 더 애정을 보내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할 시간을 조금만 더 갖겠습니다. ■

 

  필자_김해연

  소개_서울사람, 여자, 우주의 한 점, 블랙홀의 씨앗, 초콜릿과 고양이 사이에서 휴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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