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의 장면들2-박솔뫼 작<우리는 매일 오후에>,<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도미의 나라>

2014. 5. 12. 22:30Review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의 장면들 2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박솔뫼 작 <우리는 매일 오후에>,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도미의 나라>

 

글_유햅쌀

 

1. 박솔뫼 - 폐허 이후의 세계, 위태로움을 숨긴 우리의 일상

온통 폐허다. 최근에 일어난 무섭게 슬프고 아리게 비참한 사건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리원전을 재가동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발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망했다’가 지니는 감각은 전방위적으로 번져 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망’의 시공간에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거나, 착취하려는 발버둥이 ‘망’한 이 세계, 폐허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이지, 세계가 망해버린 것을 눈치채지 못해서 슬픈 것이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 순간부터 폐허에서 구원의 징후를 발견한다는 혹은 발견했다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폐허에서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구원되지 않을 세상에서, 우리는 이 쓸쓸한 폐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갈망하고, 다시 그 이야기는 폐허로부터 나오며, 폐허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폐허가 된 세계를 욕망한다. 몰락함과 동시에 재탄생하는 찌그러진 순환, 어떤 욕망의 이야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곳곳에 스며있다.

이 상황에서 박솔뫼의 소설은 이런 맥락의 주변부에 놓인 것 같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중심에 놓여 있다. 박솔뫼가 폐허가 된 세계에서 들려주려는 이야기들은 폐허를 다뤄왔던 장르, 혹은 서사가 공유하는 관습들에서 비켜나가 일상을 경유한다는 지점에서 다른데, ‘나’와는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는 파국의 사건들은-박솔뫼의 이번 단편들에서는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사건들의 중심축에 자리한다― 동시적, 혹은 비동시적으로 비선형적으로, 다발적으로 혼란스럽게 얽혀 다시금 ‘나’의 일상으로 침투한다.

말하자면 디스토피아 장르가 내포한 환상성은 박솔뫼의 <우리는 매일 오후에>에서처럼 ‘동거남이 작아졌다’는 식으로 귀엽게 변형되기도 하고, ‘꿈’과 ‘잠’의 이미지들은 ‘가상의 고리원전 사고 이후의 부산’이라는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처럼 ‘부산타워를 그리고 싶다’는 작고 사소한 바람으로 투영되기도 한다. 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위험천만한 재해의 시기에 간사이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도미의 나라> 속 ‘도미’는 지진이 일어난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시간과 동떨어진 공간만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도쿄전력 사장 ‘시미즈’의 이야기는 도미의 여행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전혀 무관하지 않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지점에서 박솔뫼의 ‘말’은 폐허의 징후가 일상 저 너머에서 발견될 때, 뉴스나 소문 같은 것으로 들려올 때의 일상사건, 그야말로 ‘여행’이 갖춘 ‘이벤트’ 같은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때문인지 박솔뫼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상 속에서 여행하고, 산책하고, 도시 속에 살면서 온갖 거대한 사건들의 주변부에 놓여 있다. 이방인 아닌 이방인처럼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솔뫼가 선택한 전략은 지독히 현실적인 무엇인지도 모른다. 속수무책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이 시기에 비참, 참혹과 같은 지금을 수식할만한 그런 말들이 더이상 침묵하는 슬픔 날카로운 비명 같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기에, 끊임없이 무감각해진 일상에서, 저 너머로 들려오는 ‘세계는 망해가고 있다’를 증명하는 사건들을 거리를 두고 서술하는 것 말이다. 덧붙여 그것이 일상과 무관함을 위태롭게 떠올리게 하는 방식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박솔뫼가 풀어 놓는 이야기가 그렇듯, 어쩌면 결코 ‘탈-’ 할 수 없는 사회에서, 그냥저냥 꾸밈없이 살아가는 얘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해체와 차이를 언급하며 끊임없이 ‘포스트-’, ‘탈-’하는 현상들에 대해 계속해서 상기한다고 하더라도 ‘망함’을 멈추지 않을 이 지난한 폐허에서 말이다. 쓸데없는 천진함이라고 투정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세계의 끝 이후의 별일 없는 일상에 대해 박솔뫼는 쓰고 있고, 말하고 있으므로, 나는 다시 한 번 박솔뫼가 냉혹한 현실주의자라고 믿고 싶다.

 

 

2. 산책하다 스치는 낯선 파국의 순간들_박솔뫼 작 <우리는 매일 오후에>_김한내 연출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서울 어느 골목의 어느 원룸에 사는 어느 여자의 어느 이틀에 대한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와 강아지보다 훨씬 작아져 버린 여자의 동거남과 그와의 섹스와 그와의 산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를 연출한 연출가 김한내는 미리 밝힌 ‘연출의도’에서 “이 공연은 소설의 안과 밖에서 제기된 아래의 두 질문에 대한 무대화된 답변”이라며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여자의 동거남은 왜 작아졌는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작가는 왜 고리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고라는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내었는가”이다. 연출가는 이 두 질문을 실상 하나의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관객들 사이에 앉아 있던 배우들이 하나둘 일어나 극이 시작되면 주인공 여자의 내면을 진술한 소설은 하나이면서 네 개인, 또 네 개이면서 수없이 많은 화자에게 맡겨져 읽힌다. 무대 중앙에 놓인 TV 스크린에서는 형체가 불분명하게 흔들리고 지지직거리는 변형된 자연재해가 등장하고, 화면은 때로 작아진 여자의 동거남의 ‘말’을 서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무대에 놓인 복잡하게 쌓인 상자들은 서울의 골목이었다가, 여자의 집이었다가, 일식집이었다가, 병원이었다가, 슈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사건들은 동시적이면서 비동시적인 사건이며, 동떨어져 있으면서 가까이에 있는 굉장히 복잡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여자는 남자와 밥을 먹고 섹스를 하고 씻고 밖으로 나와 산책한다. 어떤 서울의 ‘매일 오후’에 일어날법한 일상이 반복되는데, 작아진 남자와 산책을 하는 그때, 사라진 일본을 기념하는 것 같은 ‘기념엽서’와도 같은 일식집에서 카레를 먹을 때, 일상적으로 걷던 골목과 산책 중에 만나는 슈퍼와 병원이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 처음 보는 비밀스러운 텅 빈 집-양옥집 3층짜리 흰 건물-이 산책 중에 나타나고 몸을 숨기고 싶은 욕망이 들 때, 그때 드넓은 지구 어디선가는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남자는 작아졌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것’과, 그 길을 작아진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깨 위에 올려놓는 행위’를 파국의 세계에서 나타난 작고 때로는 귀엽고 특이한 증상들로 표현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사랑하는 두 남녀의 서울 산책은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압도적이다. 작고 커다란 사건들은 주인공 여자에게도, 작아진 남자에게도, 어디선가 거리를 거닐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각자의 사건이지만 얽히고설킨 모두의 사건이 된다.

 

 

이제 “미래를 묻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미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남자의 알 수 없는 말을 들여다보자. 이들이 사는 자연재해 발생 이후의 도시 서울은 이미 진행 중인 폐허이자,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파국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문득 숨고 싶어지는 순간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이러한 시공간은 이런 문제와 사건의 반복 속에서 작아진 동거남과 하는 섹스의 오묘한 감정들 사이에서도 발견되며, 산책하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산책 본연의 ‘낭만’이나 ‘정다움’을 넘어서는 감정 역시 느껴진다. 결국, 이 모든 사건과 그 사이의 감각들이 동일본 대지진과 가상으로 설정된 고리원전 사고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내면화된 감각인 ‘불안’으로 연결되면서, “여자의 동거남은 왜 작아졌는가”, “작가는 왜 고리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고라는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내었는가”라는 질문은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어떻게 일상을 살아내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매일 오후에>에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교묘하게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된다. 낭만과 불안, 폐허를 향해 달리는 재해의 세계에서 산책하는 우리들은 언제 불시에 다가오는 것인지조차 모를 파국을 피해 숨기를 바라지만 일상에서 ‘숨는 것’은 딱히 허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거리를 걷다가 사라진 일본을 기념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일식집’에 들어가는 것, 새하얀 집에 불안감을 감춘 채로 숨는 것, 이 길이 어제 본 병원과 슈퍼마켓이 아닌 것 같다고 믿는 것 혹은 그렇게 의심하는 것이 이들이,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서 쓴 글에서 한유주의 작품들을 들어 말한 이번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의 연출적 난관들은 박솔뫼의 작품을 무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무대와 객석, 그리고 공연장 너머,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을 오가며 비동시적이면서 동시적인 일상과 자연재해라는 사건들을 교차시키며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보여주는 것 같지만, 소설의 화자를 네 갈래로 나누어 사건을 이끌어가며 무대 위에 병치시키는 일련의 작업은 다소 어수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주인공 ‘여자’ 역을 맡은 배우들은 공통된 내면을 연기하고 있지만, 각자의 톤이 모두 다른 나머지 이질적으로 느껴지며, 오직 ‘여자’의 서술에 의해 작아진 ‘남자’를 맡은 배우만이 역할의 내면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세계의 끝’에 매달린 ‘숨고 싶어지는’ 감각의 영역은 무대 위에서 확장되지 못하고 어느 한 구석에 고여 버렸다. 박솔뫼의 이야기가 폐허가 된 세계에서의 부재와 상실에 대한 일상적이고 지독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무대 위에서 ‘극’의 형태로 ‘낭독’했을 때 옅어져 버리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이러한 당혹스러움과 난관은 이날 공연된 다른 작품인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3. “우리는 저런 것을 위해서였어요”_박솔뫼 작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_강민백 연출

‘부산 바로 옆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는 가상의 사건은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도 서사의 중심에 놓여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여기에 ‘야경’과 ‘랜드 마크’라는 일종의 ‘관광’이라는 목적을 위해 지구의 어느 주요 도시에나 있을 법한 ‘타워’에 대한 이야기를 더해-<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는 부산에 있는 ‘부산타워’에 관해- 어두운 밤, 잡히지 않지만 잡고 싶은 ‘흔들흔들’ 거리는 존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은 하나의 발화자를 여러 ‘몸’으로 나눠 ‘말’ 해온 앞의 작품과는 달리 화자를 남자와 여자, 둘로 나눠 그린다-사실 이 ‘낭독극’에서 왜 말하는 이들을 남자와 여자, 둘로 나누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는 선명하지 않다- 여자는 ‘부산타워’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계속해서 원하지만, 부산타워는 ‘아무래도 희미한 느낌’인 데다 여전히 ‘뿌옇고 잡히지 않는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우뚝 솟아 있는 잘 보이지 않는 타워가 떠오른 무대 뒤 대형 스크린 앞에는 작은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는데, TV 안에는 쏟아져 나오는 군중들이, 줄 맞춰 걷는 사람들이, 마라톤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몰려나오는 것, 쏟아지는 것, 규칙적인 것, 불규칙 적인 것, 일상을 경유하는 거대한 사건, 고리원전사고로 폐허가 된 이후에도 우뚝 솟아 있는 ‘부산타워’, 사고 이후 부산을 떠난 사람들, 예전처럼 빛나지 않는 야경, 이 모든 것들이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이 그려내는 ‘부산’의 이미지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여자는 흐릿하게만 다가오는 부산타워를 정확한 모습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한다. 그 일은 ‘부산타워를 그리는 꿈’으로 이어지며, 집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남자를 만나면서도, 여전히 계속된다. 이들이 흔들거리는 부산타워를 어떻게든 복기하려는 일은 사실 문장으로 표현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을 열심히 한다’, 그것도 계속해서 그것을 숙명처럼 여기면서.

이들이 떠올리고자 하는 ‘부산타워’는 방사능 유출로 이미 폐허가 된 파국의 상징이자 은유인 ‘부산’에서 점점 원래 설치된 목적인 ‘야경 감상’으로의 기능을 잃어가는 중심 상징이다. 망해버린 세계는 ‘타워’라는 껍데기만을 남겼다. 그럼에도 인물들이 부산 중심을 맴돌며 망해버린 세계에서 무대 위 상자 속에 들어있는 일상의 물건을 꺼내 놓는 것처럼 ‘일상’은 지속되며, “이천몇 년이 미래처럼 느껴지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도, 부산타워가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폐허의 세계에서 일상을 영유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시도 역시 지속된다.

 

 

4. 어쩌면 끝나지 않을 여행_박솔뫼 작 <도미의 나라>_성기웅 연출

성기웅이 연출한 <도미의 나라>는 이번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에서 ‘입체’적으로 ‘낭독’한다는 정해진 조건에 가장 들어맞으면서도 연출적 흥미까지 놓치지 않은 특기할만한 작품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박솔뫼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 두 작품 <우리는 매일 오후에>와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사이에 공연된 <도미의 나라>는,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났던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시기를 중심으로 주인공 여자 ‘도미’가 일본 간사이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 이야기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시기에 ‘나라호텔’로 휴식을 떠난 도쿄전력 시미즈 사장의 실화를 교차편집 해놓은 짧은 작품이다.

이 낭독극에서 주인공 여자 ‘도미’를 맡은 배우는 전문 배우가 아닌 SNS를 통해 모집한 관객으로 대체된다. 연극이 시작되기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전 처음 만난 이들은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박솔뫼의 최신작 <도미의 나라>의 일부를 보여주고 무대 위에서는 아이패드에 담긴 텍스트를 읽게 한다. ‘도미’는 무대 위에서 텍스트를 읽으며, 일본을 여행하면서 스치는 여러 인물을 표현한 두 연극배우의 도움을 받아 배낭을 메고 오사카 항의 대관람차에 오르기도 하고, 나라에서는 사슴에게 센베과자를 주기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여행을 회상하기도 한다. 이 간결한 텍스트 사이에 연출가는 소극장 외부에서 텍스트를 읽는 ‘도미’의 모습을 찍어 무대 위에 있는 스크린으로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고, 소설을 낭독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극 중간에 틀어놓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지진 이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도미를 걱정하는 그리 친하지 않은 지인들의 문자’를 읽게 하기도 하고, 관객을 사슴으로 설정해놓고는 ‘나라’를 여행 중인 도미로부터 센베과자를 받아먹게 하기도 하면서 ‘낭독’을 그저 읽는 것만이 아닌 연출적 요소를 입체적으로 활용해가며 극에 몰입하게 한다.

 

 

이에 덧붙여 무대 뒤 큰 스크린에서는 대지진 이후 간사이국제공항이 폐쇄되자 나고야 공항에서 자위대기를 탑승하고 ‘눈에 띄지 않게’ 도쿄로 돌아온 도쿄전력 시미즈 사장의 이야기를 함께 배치하는데, ‘도미의 일본 여행’, ‘나라 호텔에 머물다가 도쿄로 돌아가는 길이 없어 전전긍긍해 하는 시미즈 사장’,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에 대한 도쿄전력의 대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관객을 하나의 시공간에서 만나게 한다. 박솔뫼의 소설, 그것을 낭독하는 목소리, 연기하는 사람들, 이 모든 발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면서도 ‘연극’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마주치는 것이다. 텍스트는 즉흥적으로 낭독되며, 계획된 우연과 예기치 못했던 웃음들과 즐거운 당혹감이 만들어지면서 <도미의 나라>에서 묻고자 하는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도미는 간사이 지방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돌아가는 모든 길은 정겹고 짧아요”라며 떠나 있던 여행의 시간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도미의 시간은 박솔뫼가 천착하는 ‘도시’와 ‘여행’이라는 시공간적 소재들과 ‘원전사고’라는 종말을 불러일으키는 재해의 순간과 병기되면서 단순한 소회로 끝나버리지 않는다. 충돌하는 장면들, 일상적이고 시시콜콜 해 보이지만 어쩌면 커다란 사건 속에 놓여 있는 연속적인 사건들, 역사에 기록될 현재이자 미래인 이야기들, 그 사이의 장벽에 ‘도미’와, ‘도미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나’와, ‘우리들’이 살고 있다.

 

 

*사진제공_제12언어 연극스튜디오

**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2014’의 장면들에 대하여 1 리뷰 바로가기 

 

 필자_유햅쌀

 소개_시트콤같은인생살이를위해, 재미진무언가를찾습니다. 인간은유희적동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