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3월 레터] 심사에 대한 심사

2015. 3. 11. 19:47Letter

 

관-심사에 대한 (관)심사

 

아마도

당신은 행정가들로부터

심사에 참여해줄 수 있겠냐는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처음에

당신은 그 요청에 대해

완곡하게 마다하며

거절하는 입장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결국엔 그 자리에서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심사자들과

무수한 지원서들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나마

당신은 유망한 기획이 이견없이

선정되었을 때 안심했고,

무리한 기획이 분분하게

논의 되었을 때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엇비슷한 작품들을 보며

예술계의 지금을 걱정했고,

그럼에도 가려진 옥석을 보며

예술계의 나중에 작은 기대를 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그 자리에 가장 늦게 왔거나

혹은 가장 연장자라는 (혹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심사 경위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사인도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심사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보며

흡족해할 수 도 있고

고개를 내저을 수도 있다.

 

어쨌든

당신은 심사의 불가피성과

심사의 불가사의와

심사의 불가항력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우리의 존중과 신뢰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부디 그럴 것이다.

-----------------------------------------------------------------------------------------------------------------------------

▲ 예술계 제도개선을 위한 공공의 노력, “대학로 X포럼” 모임 전단

 

지원 제도가 해를 거듭하며 발전해갈수록, 주변의 예술가들 또한 진화해가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신청서' 를 쓰는 일에 대해 - 마치 수학의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듯 - 머리를 쥐어짜던 이들이, 이젠 며칠 만에 척척 써내고 언제 떨어졌냐는 듯 착착 수혜를 받으니까요. 한편으로 기관의 행정가들이 예술가의 접근성과 편의를 위해 애쓴 부분도 있겠지요. 당락의 과정에서 드러난 동료 예술가의 관심사, 지원심사에 대한 전문평, 동시대 예술의 경향성 등등을 서로 배우고 학습한 결과이기도 하지요.

지원금 제도는 창작자와 지원기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공공-예술행정 절차입니다. 그 안에는 예술가와 행정가들, 그리고 심사자라는 수행 주체들이 있지요. 예술도, 행정도, 심사도 그 주체가 '사람' 이기에, '불안정' 과 '불확실' 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수정과 개선을 필요로 합니다. 낙방한 예술가가 지원서를 ‘보충’하고, 문제점을 발견한 행정가는 시스템을 ‘보완’ 하겠지요.

그렇다면, 심사자들은 무엇을 할까요. 공정성과 전문성을 ‘보장’ 하는 심사의 자격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혹은 그 ‘노력’ 을 꼭 해야만 하는 걸까요) 시스템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심사자들은 무엇을 제안했을까요. 이런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왜 ‘심사’ 를 언제나 거스를 수 없는 권위(믿음)의 영역에 머물러있게 하고 있나요.

한편으로, 이런 의문도 가져봅니다. 심사의 전체 내용과 토론을 완벽하게 공개할 수는 없을까? ‘열린 형식’ 으로 심사가 진행될 수는 없을까? 더 나아가, 예술가들은 선별된 ‘결과’ 에만 주목하고, 그 ‘과정’ 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심사를 심사할 수는 없을까. 이런 저런 복잡하고 뒤틀린 ‘심사’ 로 인해, 한편의 시(詩)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급조된 시는 심사자들에게 전하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어느덧, 세계최고가 되어버린, 한국의 지원금 제도, 우리는 이제 무엇을/누구를 개선해야 할까요.

 

2015년 3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정진삼

 

▲ 예술계 관행개선을 위한 고발 사이트, “아트리크스”  (www.fb.com/artleaks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