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5. 09:13ㆍLetter
평행우주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봅니다. 한 장의 사진은 2004년 홍대앞 복합예술공연장 “씨어터제로” 폐관과 관련하여 홍대앞 예술가들이 만장을 들고 추모 퍼레이드를 하는 사진입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2014년, “당인리선” 이라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벌어진 퍼레이드입니다. 옛날 기차가 달리던 철로를 기억하며 길을 따라 노래하며 행진하는 집단 퍼포먼스라 할 수 있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두 개의 사진 속에서 보여지는 기시감(旣視感)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두 편의 글을 나란히 읽어 봅니다. 앞선 글은 1993년 봄, 문화과학 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시 홍대 앞에 벌어진 변화의 양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어진 글은 2004년 가을, 문화과학 29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그러니까 두 편의 글은 각각 지금으로부터 20년전, 그리고 10년 전의 홍대앞 풍경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지요.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두 편의 글은 지금 다시 읽어도 그다지 무리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시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요.
올해 여름 일민미술관에서 행했던 전시 “다음문장을 읽으시오” 를 살펴봅니다. 이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섹션 1 파트에서 행했던 ‘모더니티의 평행 우주’ 라는 테마였습니다. ‘근대화’ 라는 기치아래 1930년대, 1960년대 그리고 1980년대 행해졌던 국가로부터의 ‘교육’ 이 얼마나 유사했던가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일제에 의한 문화통치,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한 국가교육, 전두환 군부정권에 의한 국민교육 등은 시간을 뛰어넘어 매우 유사한 이미지들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기시감 혹은 데자뷰(deja vu) 라는 말에서 deja는 '이미(already)', vu는 '보았다(seen)'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4년에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을 보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우리가 지난 시절에 '이미' 겪었던 일들을 아니었을까. 우린 그것을 극복하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나? 그런데 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갑자기 많은 상념과 무력감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따지고 보면 냉철해져야 하는데, 이처럼 감상적으로 변하는 게 문제 같기도 합니다)
만약, 지난 시절 잘 대응했더라면 우리의 예술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평행우주’ 의 이론을 생각하며, 조금은 더 나아졌을 ‘홍대 앞’ 과 ‘대학로’ 등지를 떠올려봅니다. 은하계 너머 '그' 곳에 서식하는 예술가들과 관객들은 서로를 잘 섬기면서 공생(共生)하고 있을까? 먹이사슬로 변한 지금의 예술계와는 다르다면 어떤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을까? (살만하다면 그곳으로 도망가고 싶다... 는 비겁한 생각도 해봅니다) 최선의 한국과 최악의 한국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우주에서 기거하고 있을까요.
돌아오는 ‘2024년’ 에도 동일하게 ‘비극적인’ 현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은 힘을 내야겠습니다. (다소 민망한 언술이지만) 역사를 바꾸는 것은 ‘우리’ 일 수 밖에 없겠지요. 살펴보면, 예술계는 ‘각성한’ 젊은 예술가들이 주기적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제도를 바꾸려했던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 독립예술제(지금의 서울프린지 페스티벌)와 혜화동1번지 페스티벌과 변방연극제가 그러했듯이. 2014년에도 주류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혹은 20대들끼리, 그리고 뭐든 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인디언밥의 11월 주제는 “평행우주”입니다. 인디언밥은 지난 세월과 지금, 여기의 모습이 여전함을 증명하는 여러분의 사진과 제보글을 받고자 합니다. 혹은 우리의 '새로운' 우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 또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공공기금의 지원신청 마감이 돌아오는 이 계절은 작년과 재작년과 그 전전해와의 기시감과 피로감으로 더욱 충만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하니 모쪼록, 건승과 건강을 바랍니다.
2014년 11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정진삼
(사진출처 1_스트리트H 1_당인리선 페이스북페이지 3_일민미술관 홈페이지 4_28 페스티벌 포스터 5_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997.12.30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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