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백 씨어터> 2008년 8월 24일 일요일, 오후 8시 공연을 보고.

<플레이백 씨어터> 2008년 8월 24일 일요일, 오후 8시 공연을 보고.

  • 박선희
  • 조회수 700 / 2008.09.25

  나는 이 집단의 목적과 취지와 역사를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본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공연은 절반은 내 예상대로 절반은 내 예상과 완전 다르게 진행되었다. 아마도 자발적인 관객의 제안으로 장면을 만들것이며(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했다. 여러분들의 꿈을 이야기해 주시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설명했으니까. 그리고 어설프게 갖고 있던 지식으로 인해서 아마도 그 장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무언가 내재된 고통을 어루만져 주려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잠시 공연에 대해 언급하자면, 시작부터 공연은 완전 공연 같았다. 그러니까 플레이백이라는 말 때문에 나는 시작에서 그냥 관객과 풀어지기 놀기 이런 걸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목요일 오후 한시’(앞으로 ‘목한시’라고 줄여부르겠다)는 오프닝 자체가 하나의 갖추어진 공연이었다. 마치 여러 명의 꿈으로 이루어진 꼴라쥬 장면 같았다. 그들은 서로 강력한 연결고리는 없지만, 아무 근거 없는 꿈의 질서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서 관객들을 공연이라는 틀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전체적인 구조는 그렇게 단순했다. 관객에게 꿈(꿈은 밤에 꾸는 꿈도 현실 속에서 바라는 것도 꿈이니까 상관없었다)이 무엇이냐고 묻고, 관객 중에 쭈뼛쭈뼛 나서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의 꿈을 듣고 잠시 그들끼리 눈짓을 한 후 자신있는 목소리로 “보여드리겠습니다”를 외친 후, 그들은 관객의 이야기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꿈 속에서 날았다는 관객의 이야기를 가지고 날고 싶어 노력하는 한 아이(난 이상하게 그게 아이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어른은 날고 싶어하지 않을거라는 나의 편견 때문에, 동시에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어린 아이 같은 투로 말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기하게도 장면은 재미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고, 교훈도 없는 장면이었다. 사실 그자체로 본다면 한 아이가 정말 날고 싶어했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대각선 방향으로 팔을 쭉 뻗으면 날 수 있었다고 했다, 관객의 꿈 속에서)으로 날았다는 것 뿐이었다. 나의 궁금증은 더해갔다. 저렇게 그냥 사실만을 전달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관객들의 코드는 웃음에 집중되고 있는데, 웃음이 아닌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 나의 생각으로는 웃음만으로는 관객도 그 집단도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 말이다. 더불어서 그들이 교훈을 전달하려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작품이 정말 싫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영화촬영현장에 있는 한 사람의 모험이었다. 첫 번째 보다 다소 길고 장황하고 꿈답게 황당한 상황들이 마구 들어있는 이야기였다. 관객들도 점점 어라 이것들봐라? 이거 어떻게 만들어볼래, 싶은 듯 과감하게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파스텔톤의 큐빅 몇 개와 화려하거나 평범한 색깔의 천이 몇 개 있었다. 그들의 능력은 그런 단순한 도구들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든 풀어내는 것이었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할 만 했다. 대본도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사를 즉흥으로 뱉고 서로 주고 받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으니까.  “보여드리겠습니다”로 시작해서 “어떠십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어보았는데 만족하십니까?”로 마무리를 짓는데, 뭐가 되었건 이야기를 제시한 관객과 ‘목한시’는 한 팀이 되어서 공동작업을 하고 있었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끼리 말이다. 이 과정에서 아주 커다란 역할을 맡은 제 7의 인물은 바로 키보드 앞에 앉아있는 연주자였다. 꿈의 무드에 맞게 음악을 연주하고 배우들의 흐름을 통제하는 듯 보였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싶은 호흡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의 예상을 뒤엎는 작업이었다. 이렇게도 작품을 하는가 하고 말이다. 아무런 결론도 없고 아무런 자극도 없이, 그저 극으로 만들어내는 과정과 결과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줄 수 있다니. 연극을 할 때마다 과연 이게 할 만한 이야기인가, 관객들은 이걸 보고 싶어할까? 얼마나 이 이야기에 몰입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다 황당 대답을 주는 방식이었다. 무슨 상관이냐 그냥 하면 되지하는 대답. 나는 연신 배우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어떻게 서로 말없이 의논하는 걸까 그걸 알아내고 싶었다. 스파이처럼, 배우들의 눈빛과 얼굴을 보면서 저것이 즉흥인가 아니면 저들은 정말 많은 순간들을 연습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진실을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물론 참 이제 생각하면 웃기는 순간이었다. 그저 공연을 즐겼더래도 상관없었을텐데...

 

  어쨌든, 세 번째 꿈에서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는 객석의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내가 예상한 반응이 나왔다. , 공연자가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실 순 없나요? 결국 찾았나요? 관객은 이 질문에 대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 순간 내 느낌은 공연자가 관객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려다가 움찔한 것 같았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꿈에서 농촌에서 일을 했다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한 것 같았다. 원래 꿈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관객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거짓말을 했는지 정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선에서 질문은 정리되고 배우들은 더욱 더 상상의 나래를 펴서 장면을 만들었다. 사실, 점점 진행 될수록 꿈은 배우들에 의해서 해석되었다. 심지어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관객이 공짜표를 받고 공연보러가고 싶다고 하자 배우들은 극 속 캐릭터로서 “세상에 공짜는 없어”라고 이야기를 던졌다. 배우들은 어느만큼 관객의 이야기에 개입해도 되는지, , 해석을 하거나 비판을 해도 되는지 판단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았다. 그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목한시’팀에게는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관객들도 힘든 지점이었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꿈 속의 인물에게 “괜찮아”를 연거푸 건네는 배우는 따뜻했지만 뭔지 모르게 관객을 환자취급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방어본능이었다.  “소극장 예의 조그맣고 아늑한 공간은 따뜻했지만, 모두는 웃음으로 서로를 관대하게 바라볼 뿐, 깊이있는 소통은 없었다. 사실 꿈은 무의식의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그 꿈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인간은 자기검열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목한시’가 마련한 그 자리, 많아야 80명 남짓되는 사람들끼리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울림을 공유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물론 공연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소통을 원할 것이다. 영화나 tv와 다른 연극의 매체적 특성 자체가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서 안전하게 공연을 지켜보려던 욕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소통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말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갖고 모인 자리라면 달라질 수 있다. , 다섯 번째 이야기였던 외계인과의 만남을 예로 들더라도 만약 우리가 오래도록 작업을 해온 동료라거나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급조 팀이었다면, 제안한 관객을 보고 어떤 연민을 느끼고, 공감을 하고, 그저 이야기화 시키는 것만으로도 말로 표현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은 소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칫, 자기 맘대로 해석해버릴 위험도 있겠지만그러나 그게 꿈(dream)이 아니라 꿈(hope)이라고 말하는 관객을 보면서 그리고 제법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고 만족하면서 웃는 그 관객을 보면서 한껏 공유하던 기분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어떤 관객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객의 방어본능을 인정하면서 같이 공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순간 나는 내가 이 공연에 이용되고 있다는 이상한 불쾌감을 경험했다.(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공유할 수 있고 나를 내어보일 수 있는 다른 동료들하고만 있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어쨌든 한 시간 십 분여의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은 지금까지 만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의 종합선물상자처럼 엮어서 첫 장면의 그들의 꼴라쥬처럼 다른 이들의 꿈을 꼴라쥬화했다. 재미있었던 순간들을 다시 한 번 리마인드하면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는지 확인하는 엔딩이었다. 코드는 역시 웃음이었다.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보았다는 것을 함께 지긋이 눈짓하며 은밀한 신호를 보내는 마무리였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꿈을 함께 하고도 내 마음 속에서 울림은 없었다는게 아쉬웠다. 무엇을 하려다가 만 느낌이었다. 분명히 즐거웠고 놀라웠다. 배우들의 즉흥성과 관객과의 교감이라는 것들이 순간순간 깨어있게 만들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들은 객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멈칫거리며 방어를 할 때마다 손을 잡고 춤을 추다 놓아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 순간 가장 민감했을 사람들은 ‘목한시’ 팀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손을 가제트처럼 길게 뻗어 관객을 잡고 싶었을 것 같았다. 한 번의 경험은 즐거웠지만, 배우겸 작가였던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 즐거웠지만, 언젠가 다시 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더 편하고 가까운 이들과 함께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자리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폐쇄성 탓이겠지만, 할 수 없다.

 

보충설명

<꿈꾸는 플레이백씨어터>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8 실내공연예술제 참가작
연출 공동연출 | 악사 연리목 | 출연 오정, 덩이, 서리, 현수, 홀, 곱슬, 마뇨, 서진 | 기록촬영 늦잠

<목요일 오후 한 시>
극단 ‘목요일 오후 한 시’는 2004년 창단부터 연극과 무용, 퍼포먼스 등을 기반으로 한 즉흥연극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 활동을 하는 즉흥연극 전문 집단이다. 이들은 누구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숨은 개인들의 값지고 소중한 생활을 주목하면서 플레이백 씨어터를 '목요일 오후 한 시'만의 색깔로 재창조하고자 한다. 플레이백 씨어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척하면 척'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http://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필자소개

필자 박선희
<찰리브라운>,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 <플레이위드햄릿1,2,3,4>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