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nbob(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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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0회 어린이연극축제연습 <천사동심파괴>
지인으로부터 다짜고짜 공연예매 링크가 도착했다. 라니. 자고로 동심이란 지켜져야 하는 것이거늘. ‘제0회 어린이연극축제연습’의 타이틀이었다. SNS에 접속 후 ‘천사동심파괴’를 검색했다. 몇 가지 피드가 눈에 띄었다. 공개된 포스터에는 잔뜩 성나 보이는 날개 달린 토끼가 꽉 쥔 주먹으로 당근을 두 동강 내고, 그 옆엔 벌레 먹은 듯 듬성듬성 구멍 난 잎사귀 한 장을 들고 있는 개구리가 황망한 표정으로 눈물을 떨구며 앉아있었다. 강렬한 색감까지 더해져 긴장감이 돌았다. ‘힙하다!’라고 생각했다. 축제를 만든 사람들은 ‘칠더하기’ 라는 팀이었다. 그 팀의 계정으로 들어가 가장 첫 번째 피드를 읽었다. 칠더하기 7+ 는 어린이 연극을 연구하고 어린이를 위한 새로운 공연예술축제를 준비하는 창작자들의 신생 모임이..
2023.07.05 -
[인디언밥 4월 레터] 삶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도대체가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날 벌어먹여야 한다는 것이, 숨만 쉬어도 죄가 쌓여간다는 것이, 나를 겨냥하지 않지만 사실은 내게 칼날을 쏟아내는 혐오가 이렇게나 무거운데 어떻게들 살아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합니다. 어떤 세상의 질서라는 게 있고 저만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는 것을요. 얼마 전에는 기후위기 시대에 행동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챌린지에 지목받았습니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겁이 났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죠.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람보다 스스로를 부도덕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들을 더 미워하잖아요. 마녀사냥은 인류의 오래된 엔터테인먼트고, 채식 제품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에는 놀랄 만큼 조롱이 따라붙습니다. 각 분야의 운동가들을 향해 쏟아지는 냉소..
2023.04.09 -
[인디언밥 3월 레터]오겡끼데스카 와타시도 네 꿈을 꿔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 인디언밥 레터가 말 그대로 편지라는 것을 종종 까먹곤 하지만, 이번 레터는 괜히 새삼스러운 기분입니다. 영화와 를 보고, 일본 훗카이도의 작은 도시 오타루에 다녀와서 쓰는 레터거든요. 두 영화 모두 편지를 통해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 영화 속 대사인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 겡끼데스(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와 “추신, 나도 네 꿈을 꿔”를 섞어서 제목을 지어보았습니다. 이를 빌어 멀리의 독자분들께 안부를 묻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겨울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겨울이란 농한기의 배고픔을 견디는 시간이거나, 긴 밤의 지루함을 버티는 시간이어야하는데, 대신 그만큼 빈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채..
2023.03.04 -
[기고] 기꺼이, 시끄럽기를 선택한 극장 : 삼일로창고극장 기획사업 ‘창고포럼’
기꺼이, 시끄럽기를 선택한 극장 삼일로창고극장 기획사업 ‘창고포럼’ 임현진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삼일로창고극장은 참 오래된 극장이다.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기억과 이야기를 쌓아왔다. 올해의 기획사업 ‘창고개방’에서는 삼일로창고극장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며 ‘불사조’를 극장의 마스코트로 삼기도 했다. 민간과 공공이 함께 운영하는 극장이 되기까지 여러 변곡점을 거치며 재개관을 여러 번 거듭해왔다는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을까. 극장을 매번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올해의 ‘창고포럼’은 극장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한 대화의 자리를 열었다. 극장의 사람들은 극장을 참 사랑한다. 맹목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극장을 생각하고, 극장에 대한 꿈을 꾸고, 극장에 대..
2023.01.19 -
[리뷰]못 보낸 편지_민들레에게: 민수민정 <방안의 맘모스>
못 보낸 편지_민들레에게 민수민정 글_자림 당신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을 열면, 꼭 당신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차마 손을 뻗기도 전에, 나는 그것을 예감했습니다. 이상하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로 당신을 둘러싼 소문들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난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요. 기묘하게도, 내가 밟고 서 있는 이곳이 당신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만 같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는 '맘모스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던 청주 중앙시장 상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시다. 1970년대 구 청주역 인근의 집창..
2023.01.08 -
[인디언밥 12월 레터]우린 아직 알 수 없지만
12월입니다. 어떻게 한 해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잘 지내셨나요? 지난 한 달 간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년 간의 인사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레터를 적고 있는 이 카페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해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할 나이는 아니지만, 연말의 즐거움이란 이런 뜻 모를 기대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디언밥은 지난 한 해 동안 26편의 글을 발행했더라고요. 지원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던 작년보다는 적지만 선방한 한 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론 꼭 다루고 싶었던 장르를 기록할 수 있어 기뻤고, 새로운 필자님들과 연을 맺기도, 기고문을 제안받아 지면을 내어드릴 수도 있어 뿌듯했습니다. 아, 레터를 꾸준히 쓴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었어요. 1년에 한 번 ..
202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