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3월 레터] 지속하면서 살기

2017. 3. 13. 13:03Letter

 

지속하면서 살기

 

-최근 몇 달간 말과 글에 대한 몇 개의 짧은 글을 읽었어요. 첫번째는 번역기의 기능에 대한 것으로, 한글로 ‘띵작’을 입력하면 ‘rnasterpiece’라는 답을 줄 정도로 그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과 정확성이 높아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선 ‘번역기가 발달했다고 해서 통번역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직업을 잃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봤습니다. 세 번째론 힐러리 클린턴이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던 때 백악관 비서실장이 그를 두고 “문단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문장들이 아니라 하나의 문단으로”라고 말했다는 글을 읽었고, 마지막으론 어떤 웹소설 플랫폼에서 대사 옆에 캐릭터 일러스트를 삽입하는 이유가 독자들이 누가 하는 말인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미래에서 말과 글을 어떻게 다루게 될지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줄어들수록 번역기는 수집해야 하는 데이터가 줄어들 테니까 점점 더 명쾌해지고 사람은 모국어건 외국어건 점점 덜 훈련해도 괜찮아지면서 점점 더 언어구사를 불확실하게 하며, 번역기의 능력을 말장난이나 각종 드립에만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번역기는 재치가 늘고 번역기의 재치를 실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우스갯소리만 잘하게 되고, 뭐 그러저러한, SF가 되기엔 설익은 궤변을 말이지요. 그러다가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일이 점점 더 소홀히 여겨지는 때 열심히 언어를 벼려두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상했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은 모든 곳에 있겠지만, 여기에도 많을 거라고요.

 

 

<기생하는 구조들>의 MP3 트랙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더니 눈앞에 나타난 기둥

 

 

-삼월의 첫 주말엔 갤러리팩토리에서 김보람 작가의 전시 <기생하는 구조들>을 보았습니다. 전시장 쇼윈도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고, 간헐적으로 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소라껍데기 삼아 만날 적마다 눈을 감고 귀를 가져다대고, 옷깃에 기호를 골라 단 뒤 벽 곳곳에 단단히 붙어 있는 기호들에 손을 대면서 가상의 선을 가늠하고, 거치대에 꽂힌 구조물을 끄집어다 새로 끼고, 살살 칼싸움과 아코디언 놀이도 하면서 1층을 잘 경험하고 2층에 올라가 헤드셋과 MP3 플레이어를 집었습니다. 13분가량의 MP3 트랙은 이전 전시를 철수하고 새 전시를 준비하는 2월 19일의 갤러리팩토리로 데려가서 해당 트랙을 청취하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날 그곳을 경험하게 하는데, 그 시간과 공간을 구성했던 대화며 차 소리, 자질구레한 소음, 이런저런 지령이 음성으로 전달되면 그것을 가만히 듣고 거기에 반응을 하는 일이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여정의 막바지엔 갤러리팩토리에서 길을 건너 왼쪽으로 조금 걸으면 나오는 북소사이어티에 들어가서, 당시에는 가림막 역할을 했다는데 지금은 걷혀 있는 커튼 속에 유령처럼 몸을 묻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으면 하면서도 거듭 시선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13분이 지나 헤드셋을 원래 자리에 두고 서점에서 책을 한참 보다가 집으로 가면서 말이지요, 어쩌면 고안하고 만드는 사람과 감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서로의 대리인이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상대가 겪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재현하고 상상하면서요.

 

-지난달 말에는 시상식장엘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과 다다음날 그 자리에서 있었던, 퍼포먼스를 겸한 수상소감에 대해 말이 오가는 것을 보았어요.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술을 하면 돈이 없는 건 당연한 것이라서, 돈이 어떻게 왜 없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돈을 갖고 싶다고 말하고 명예와 재미가 그 자리를 갈음해서 밥을 차려줄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게 싫은 것일까요? 부자가 되기엔 지정성별이 여자인 것부터가 어깨의 짐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생경하고 놀라운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왜 그를 비난하기 위해 만든 익명 계정에다 성별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나요? 선의로 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관대한 반응과 적당한 면죄부가 주어지기를 바랄 순 없단 걸, 오히려 선의를 명목으로 착취하며 지켜지는 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걸, 비판에 자기연민으로 대응하는 건 사실 특권일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 당일에는 먹고살기를 고민하게 하던 일이 질문을 지나 점차 어떤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자꾸 말하고 계속 싸워서 성취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밤이 깊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하는 대신, 백주대낮에 서로를 발견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요.

 

 

한국대중음악상 트로피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여성의 날엔 빨간 옷을 입고 빨간 옷을 입은 친구를 만나서 이제부터 어떻게 살 건지 얘기했습니다. 말한다고 뜻대로 되겠냐만서도 말하는 걸 멈추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와 친구는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에서 각자 미술과 영화를 공부했는데, 어찌저찌 계속 배운 것을 쓰면서 살고는 있지만 벌이가 시원치는 않고 그렇습니다. 적당히 위안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애면글면 사는 게 이젠 관성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평생 이렇게 애간장에 불 붙여가며 1도 화상 입은 채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분연해지기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이날 우리는 서점에 가서 잡지에 실린 자기계발 칼럼을 읽으면서 ‘틀을 깨자!’ ‘비논리적이어도 괜찮다!’ ‘일단 도전하자!’ 같은 문구를 장난삼아 소리 내 읊고 결국엔 “뭐라도 쓰긴 쓰고 싶은데”한 다음에 헤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싶기는 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글을 쓰고, 나와 누군가 사이에 길을 닦고, 그러면서 돈도 잘 벌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봄에는 잘 살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어요.

 

 

2017년 3월 13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