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월 레터] 이렇게 또 새해 편지

2017. 1. 4. 11:38Letter

 

▲GUERRILLA GIRLS, 무제(FOR MESSAGES TO THE PUBLIC), 1990

COURTESY: JANE DICKSON (PUBLICARTFUND.ORG(사진캡션)

 

 

 

이렇게 또 새해 편지

 

1

새해라고 비장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새해니까 다른 때엔 할 수 없는 다짐만만한 소리를 하고 싶기도 하고, 어영부영 우물쭈물하다가 1월 1일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2016년 하반기는 말 그대로 쏜살처럼 지나가서 결산도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달력을 갈아치우는 것만으로 기념할 수 있었습니다. 12월 31일에 종소리를 들으려 켠 TV에서는 분할화면에 숫자 카운트다운을 띄워준 뒤 열두 시가 넘자마자 쇼를 재개했습니다. 새해란 건 이렇게 얼렁뚱땅 와도 되는 거구나 생각했고, 곧장 이어진 S.E.S. 무대를 보면서 새해에 보게 될 것들은 무엇일지 잠시 궁금해했습니다.

 

2

지난해 많은 것에 기대를 잃었고, 많은 것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참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이래저래 속이 상해서 울었던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조그맣게 남아있던 마음들이 다치는 것을 바깥에서 보고 안에서 느꼈던 그 시간들을 잊을 수 있을까요? 제가 포함된 그리고 저와 동떨어지지 않은 여러 단위의 세상에 진작부터 있던 균열을 뒤늦게 목도하던 시간들도요.

그러나 힘을 얻었던 시간 또한 있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그다지 외롭지 않았던 건 곁에서 손을 잡고 목소리를 낼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의 기억이 올해의 연대로, 발언으로, 작품으로, 지속되는 운동으로 이어질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고, 상처 주지 않는 언어로 찬란한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믿습니다. 설령 실패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요.

 

3

새해니까 왠지 결심 하나쯤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지를 쓰는 중간에 고등학생 적에 많이 읽었던 글을 찾아다가 읽었습니다. 인터넷을 떠도는, 크레딧에는 부정확한 필명만이 남아있는, 맞춤법이 맞지 않고 거친 말들도 눈에 띄지만, 다 읽고 나서 ‘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생각하게 되는 글이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도 환상도 없지만 (사족 같아 괄호로 두자면, 사실 그 글은 쫀쫀한 짜임에 섬세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놓인 정확함이 백미였고) 다만 누가 쓴 것인지 알지 못하는 글의 힘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해에는 그런 반짝임을 조금 더 열심히 찾고 잔뜩 매만지자고. 골목에서 지하에서 언덕에서, 유튜브에서 트위터에서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자신을 내보이는 것들을 그러모으자고, 질겅질겅 삼키고 꼬물꼬물 기록하고 우다다다 이야기하자고. 그 낱낱의 반짝임은 자글자글한 오팔색 글리터를 닮아도 좋고 휘황찬란한 오색 광휘여도 좋을 것입니다. 좋은 것을 찾다 보면 싫은 것도 보겠지요. 아니 아마 올해에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싫은 것이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순간들이 오겠지요. 하지만 눈길 피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야겠지요.

 

4

올 겨울 접어들고선 매일 같은 인사를 했습니다. ‘몸 건강 마음 건강’ 다짐한다고 잘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은, 말이 가진 기운이라는 것이 또 있으니까요, 새해에도 꾸준히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건강해야 무엇이든 발견하고 또, 만들어내지 않겠어요?

 

 

2017년 새해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